일본과 한국을 바라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시선...


[ 1 ]
「나는 한국인 소녀에게 기대를 걸고 있어.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리라는 느낌이 들어.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야. 게다가 나는 그 나라를 좋아해. 한국 말이야…….」
「아 그래? 그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은가 봐?」
「한국은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가 만나는 문명의 교차로에 자리 잡고 있어. 여러 차례 이웃 나라들의 침략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용감하게 저항했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인들은 아주 경이롭고 섬세한 문화를 가꿔 왔어. 그들의 음악이며 회화며 문자는 독창적이야.」
「한국에 가봤어?」
「그럼. 수도인 서울에도 가 봤고, 제1의 항구 도시인 부산에도 가봤지. 대학생 시절에는 한국 여자랑 함께 지냈던 적도 있어. 그녀와 함께 부산에 가서 그녀 가족을 만났어.」
「놀랍군. 자네가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의 국적과 자네가 좋아하는 나라가 맞아떨어지다니 말이야. 어쩌면 한국을 좋아하니까 그 소녀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 나는 폴리네시아나 파키스탄이나 라플란드에 가본 적이 없어. 한국 얘기 좀 더 해봐. 그 나라의 역사를 알아?」
「한국은 오랫동안 독립적인 문명을 이루고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 일본인들은 한국을 경제적으로 수탈하고 한국인들의 문화를 말살하려고 했어. 사원을 파괴하고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 한국은 해방되었고, 한국인들은 뿌리를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그랬구나. 그 세월이 아주 혹독했겠는걸.」
「그런데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한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내전의 아픔을 겪기도 했어. 그 상처는 아직도 와전히 치유되지 않았고, 남한과 북한은 여전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어. 북한이 세습적인 독재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지.」


[ 2 ]
열 살이 된 은비는 학교 운동장에서 반 친구들이 줄넘기를 하며 노는 동안 혼자서 몽상에 잠겨 있다. 여자아이 하나가 은비 앞에 서더니 느닷없이 <더러운 조센징> 하고 소리친다.
은비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어설프게 종주먹을 들이댄다. 욕을 한 아이는 깔깔거리면서 달아난다. 반 아이들이 모두 은비를 놀린다. 어떤 아이들은 <더러운 조센징>이라는 말을 연이어 외친다. 휴식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이로써 그 장면도 끝난다.
은비는 울면서 교실로 들어간다. 여자 담임 선생이 왜 우느냐고 묻자, 은비 짝꿍이 대신 대답한다.
「아이들이 더러운 조센징이라고 놀렸어요.」
담임 선생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하다가 입을 다물어 버린다. 하지만 은비가 더 크게 흐느끼자 조용히 타이른다.
「진정해. 아니면 나가서 울든지.」
은비는 울음을 삼키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담임 선생이 목청을 높인다.
「자꾸 수업 방해하지 말고 나가. 울음이 가라앉거든 다시 들어와.」
은비는 교실 밖으로 나가더니 곧장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더니 자기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엎드려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어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아냐, 아무것도. 그냥 혼자 있고 싶어.」
은비는 점심도 싫다 하고 간식을 주겠다 해도 도리질을 친다. 그러다가 해거름에 어머니가 물 한 잔을 가져다주자 비로소 말문을 연다.
「어떤 여자애가 나보고 더러운 조센징이라고 했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애야.」
「그랬구나. 그래서 넌 어떻게 했어?」
「한 대 때려 주고 싶었는데, 잽싸게 도망치는 바람에 못 했어. 그러고 나서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내가 자꾸 우니까 선생님이 방해하지 말고 나가라고 했어.」
「내가 미리 얘기를 해줬어야 하는 건데……. 일본인들 중에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그런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왜 그러는 건데?」
「우리는 일본 사람들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어.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때가 되면 해줄게. 그들은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어. 우리의 신성한 장소들을 더럽히고 파괴했는가 하면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잊어버리도록 강요하기도 했어.」
「그런데 왜 우리는 한국에서 살지 않고 여기에서 살아?」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 아주 오래전에 일본인들이 네 할머니를 납치했어. 할머니뿐만 아니라 조선의 많은 여자들이 여기로 끌려왔어. 이제 그들은…… 너는 아직 너무 어려서 이해를 못할 거야. 때가
되면 다 알게 돼.」
「내일 학교를 어떻게 가지? 모든 애들이 나를 놀렸는데.」
「그래도 가야 돼. 안 그러면 걔들이 이기는 거야. 당당하게 맞서는 법을 배워야 해. 엄마가 꿋꿋하게 맞섰던 것처럼 말이야. 굴복하지마. 할머니는 훨씬 더 나쁜 일을 당하셨지만, 굴복하지 않으셨어. 어떤 시련이든 우리를 죽일 정도가 아니라면 그것을 겪으면서 우리는 더욱 강해지는 거야. 공부를 잘하면 돼. 그게 가장 훌륭한 복수야.」
「엄마, 일본 사람들이 왜 우리를 미워하는 거야?」
「가해자들은 언제나 피해자들을 미워하기 마련이야. 피해자들이 너그럽게 굴면, 더더욱 고약하게 나오지.」
「엄마, 할머니가 무슨 일을 당하셨는지 얘기해 줘. 나도 알고 싶어.」
「앞서 말했듯이, 조선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지배를 받았어. 그 36년 동안 일본인들은 우리 민족이 누구인지를 잊게 하려고 애썼어. 그들은 조선의 가장 고운 여자들을 붙잡아다가 야수 같은 일본군 병사들의 노리개로 삼았어. 일본군의 막강한 행렬 뒤에는 언제나 그들을 <위안>하기 위해 동원된 수많은 조선 여인들이 있었어.
할머니도 그런 여자들 가운데 하나였어. 일본인들은 할머니 마을의 남자들을 몰살하고 여자들을 일본으로 납치했어. 끌려간 여자들은 여기 일본에서 계속 하찮은 노예 대접을 받았지.」
「일본이 패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 나쁜 짓을 벌인 일본인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어?」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숨기려고 했어. 일본군에게 끌려갔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일부 할머니들이 몇 해 전에 용감하게 나섰어.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들을 위해 배상을 하라고 요구했지. 일본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 지금도 할머니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집회를 열어. 하지만 일본인들은 배상을 하기는커녕 자기들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려고 들지 않아.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차별하는 것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은비야, 이걸 알아야 해. 일본에 사는 우리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될 거야. 이를 악물고 괴로움을 참아야 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을 오히려 기쁘게 하는 거야. 내일 학교에 가거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 누가 너에게 욕을 하더라도 울지 마. 우는 건 걔들에게 선물을 주는 거나 다름없어. 결국은 제 풀에 지쳐서 너를 괴롭히지 않게 될거야. 공부 열심히 하고, 언제나 의연하게 굴어. 그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야.」
이튿날부터 은비는 아이들의 놀림에 무덤덤한 얼굴로 맞선다. <더러운 조센징>이라고 욕을 해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침이 날아오면 얼굴을 돌려 버리고 만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는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시험을 볼때마다 1등을 놓치지 않는다.
한국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에게는 방금 알게 된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종군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는 내가 읽은 어떤 역사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막연하게 알고 있기는 했는데, 일본에 사는 한국인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듣고 나니 그 감춰진 역사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인간으로 살던 시절에 한국을 여행했던 일이 떠오른다. 아, 고요한 아침의 나라.
나는 은비의 슬픈 목소리를 가슴에 담은 채 잠자리에 든다. 그 열살짜리 소녀의 슬픔 앞에서 내가 신의 후보생으로 느끼는 모든 감정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한 소녀가 신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은비 어머니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가해자들은 우리 피해자들 때문에 불편해하지. 우리는 그것조차 우리 잘못으로 떠안고 용서를 구해야 해.」


출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이란 작품 속에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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