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불어나는 책들 앞에서...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 따위를 짐작으로 미루어 미리 계산함. 견적(見積)의 사전적 의미이다. 아침 책 서핑(대개 구경만 하거나 구경하다 한 두 권 사는 것에 그치지만)을 하다가 이 단어를 보았다. 문제(?)는 출처가 어디이고 무엇에 쓰였느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 말에서 흥미 그리고 신선함까지는 아니지만 새로운 자극(刺戟)을 받았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견적이 불어난다는 말이고 쓰인 곳은 책을 사는 데 있어서이다. 이런 경우, 너무나 공감된다. 사연인 즉 쉬잔 엠 드 라코트의 ‘들뢰즈: 철학과 영화’로부터 비롯된 서핑의 끝에서 이 단어를 만난 것이다. ‘들뢰즈와 시네마’에 대해 로쟈가 (저자인 보그가) “시간에 관한 베르그송의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지 않으면 <시네마1>과 <시네마2>의 많은 부분이 애매하게 된다."(11쪽)고 협박해놓고 있으니 견적은 더 불어난다.”고 쓴 것이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났다. 2007년 2월의 일이니. 이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난 1월에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을 읽고 또 들뢰즈의 <푸코>까지 읽어보겠다던 계획이 입에 침만 묻히고 무산돼 버렸는데, 어느새 스테이지는 '들뢰즈'로 바뀌었다. 이 숨가쁘게 반복되는 차이 속에서 잠시 넋을 놓는다...”는 말 때문이다. 어려운 것은 나만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다. 바이런이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을 했지만 나의 경우 자고 일어나면 쏟아져 나오는 탐나는 책들 앞에서 넋을 잃는다. 과장하면 “내가 이렇게 소리친들, 천사의 계열 중 대체 그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줄까?”란 릴케의 탄식이 내 것인 듯 하다. 읽어야 할 책은 많은데 시간은 한정적이고 독해(讀解) 내공(內攻)은 태부족(太不足)하기 때문이다. 구매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다. 바이런이 저절로(노력 없이) 유명해졌을 리 없듯 책이 나오는 것도 그럴 것이다. 느슨해진 고삐를 다시 꽉 쥐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