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이야기...

 

전쟁을 치르듯 앓은 감기의 흔적 때문에 몸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 어느 때는 리뷰 쓰기가 편하고 어느 때는 자유 글쓰기가 쉬운데 이런 때는 솔직히 자유로운 글을 쓰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세상에는 비판적 시각으로 새롭고 체계적인 지식들을 길어올리는 데 관심을 접은 지 오래이면서도 세상에 대해 아집(我執)에 가까운 관심을 유지한 채 옛 시절의 상투적인 사실들과 주장들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나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하는 것은 아닌가, 자문하면서 하는 생각이다.




과거에 기댄다는 말을 했지만 사실 이는 기억에 기댄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영양 공급이 없으면 하루만 지나도 몸은 스스로를 가누기도 어려울 만큼 심각한 damage를 입지만 인식은 기억이라는 존재로 인해 과거의 잔재들을 동어반복식으로 되풀이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인식이 가능한 것은 몸에 공급된 영양에 힘입어서이다. 그렇다고 나는 인식을 몸의 문제로 환원해 보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요즘 내 관심은 오에 겐자부로가 한 말에 가 닿아 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의 걸작인 ‘익사(원제: 수사水死)’가 번역, 출간되었다. 2009년 일본에서 출간된 ‘익사’는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우익 사상가나 군인보다 더 우익적이며 전통적인 천황 중심의 전체주의 국가사상에 빠져 있는 인물인 소설 속 아버지는 일본 우익 정권에 대한 비판을 유발하는 인사이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인 큰 아버지에게 강간당해 임신하는 ‘우나이코’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주인공 조코 고기토의 소설 집필을 돕던 우나이코는 17살 때 큰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깨닫는다. 큰아버지는 일본의 지도자급 인물로 작가는 이 모든 상황을 '국가의 강간'이라고 표현한다.





작가는 소설 번역에 즈음해 “일본의 천황과 남성을 중심으로 한 폭력적 사고방식은 여성 차별에서 기인한다. 근대 이후에도 줄곧 이어져 왔고, 지금도 여성들은 폭력에 노출돼 있다. 위안부를 부정하는 건 여성을 경시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며 “위안부는 존재했다.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했고, 범죄적인 수단도 동반됐다. 위안부는 전체주의 일본이 군인을 위한 여성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 존재다. 일본은 이 문제를 사죄해야 한다. 일본 역사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 구조를 만든 일본의 후진성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 의식 구조도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작가는 ‘익사’에 대해 “나로서는 본격적으로 논픽션적인 고백을 한 첫 작품”이라는 설명을 했다. 작가 스스로 분류한 오에의 문학 인생은 세 시기로 나뉜다. 1) 1957년 20대 초반에 등단해 서른이 되기 전까지, 2) 20대 후반 장남 히카리가 장애를 안고 태어났을 때, 3) 40대 이후 지금까지로 여전히 사소설 색깔이 남아 있고 아이에 대해 쓰는 경우도 많지만 다시 소설의 객관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한 시기가 그것이다.




작가는 1)에 대해 전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로 “타고난 감각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해 객관적인 작품을” 쓴 시기로 표현했다. 3)은 국가주의 성향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을 비판하며 천황제 문제에 대한 글을 쓰는 등 현재 오에 겐자부로의 모습이 또렷해진 시기이다.





노 작가는 소설적인 색채가 강한 사소설적인 에세이를 한둘 정도 더 쓸 수는 있지만 이제 60년 가까이 쓴 소설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독자로서는 개인적인 체험(1964년), 히로시마 노트(1965년), 만엔원년의 풋볼(1967년), 체인지링(2000년)ㆍ우울한 얼굴의 아이(2002년)ㆍ책이여, 안녕!(2005년), 만년양식집(2013년) 등 대표 작품들의 계보를 그려내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이제 소설보다 좀 더 명쾌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작품을 써내려가겠다는 말을 했다. 나로서는 인문 에세이인 ‘말의 정의’, 개인적 에세이인 ‘회복하는 인간’, 창작론인 ‘소설의 방법’ 등도 함께 관심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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