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과 별.. 낭만과 과학이라는 두 가지 항목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단풍(丹楓)을 노래한 여러 시들 가운데 고두현 시인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빼놓을 수 없다.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지난 여름 푸른 상처/ 온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리 해안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 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드는 거 좀 보아요”
그러나 이 시는 바다에 노을이 드는 것을 단풍이 드는 것으로 묘사한 시이다. 단풍은 가을에 식물의 잎이 적색, 황색, 갈색으로 물드는 현상이다. 식물의 종류마다 단풍의 색이 다른 것은 안토시안과 공존하는 클로로필(엽록소: 葉綠素)과 황색, 갈색의 색소 성분의 양의 차이에 따른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안토시안이다. 일조량 부족으로 잎이 활동을 멈추면 엽록소가 파괴되고 자가분해가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안토시안이 생성되는 종은 붉은 색이나 갈색 계열의 단풍이 들고, 그렇지 않은 종은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잎 자체의 노란 색 색소들이 나타나게 되어 노란 단풍이 드는 것이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단풍은 왜 드는 거냐는 물음에 남편이 가을에 일조량이 부족해 엽록소가 파괴되면 그때까지 가려져 있던 울긋불긋한 색소들이 나타나는 것이라 답했다며 왜죠?(왜 그렇게 삭막하게 답한 거죠?)라 물어온 청취자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한 과학자가 데이트 중에 “별이 참 예쁘네요”라고 하지 않고 “지금 현재 이 지구상에서 저 별이 불타는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이다.”란 말을 했다고 한다. 다케우치 가오루(물리학자)는 이 사실을 전하며 “별은 여기서 보면 아름답지만 실은 엄청난 핵반응이 일어나 수소가 타고 그것이 헬륨이 되어서...” 식의 말을 하면 데이트에 실패할 확률은 천문학적이라는 말을 한다.(‘이과 바보 문과 바보’ 58 페이지)
그 청취자 남편의 단풍 설명과 그 데이트 과학자의 별 설명 중 어느 경우가 더 삭막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단풍도 그렇고 별도 그렇고 자연의 원리는 낭만과 과학이라는 두 가지 항목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단풍이 붉은 것은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 때문이다.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잎 속의 당분을 사용해 색소를 만든다. 그런데 단풍잎이 떨어지면서 땅에 스며든 안토시아닌은 자신 외의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타감작용(他感作用, allelopathy)을 하는 독소(毒素)로 쓰인다. 이 결과 다른 생물종의 종자보다 상대적으로 잘 크게 된다.
그로 인해 다른 나무들 아래에 잡초가 무성한 것과 달리 단풍나무 아래는 제초제를 뿌린 것처럼 깨끗한 것이다. 생존 전략인 셈이다. 단풍은 이런 식으로 한 그루, 두 그루가 되고 결국 군락(群落)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점령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름 산을 온통 감싸 나무들을 고사시키는 칡넝쿨에 비하면 무해할 뿐 아니라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별 역시 빛을 냄으로써 자체 중력에 의한 수축 즉 내파(內破)를 막는다. 치열한 생존 전략이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덤으로 주는 것이다.
* 타감작용: 한 생물이 다른 생물들의 성장, 생존, 생식에 영향을 주는 하나 이상의 생화학물을 만들어내는 현상. 부정적인 경우와 긍정적인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