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교수의 ‘천리포 수목원의 사계’를 보며...




고규홍 교수의 ‘천리포 수목원의 사계’가 나왔다. 봄, 여름 편과 가을, 겨울편으로 구성된 두권 짜리 책이다. 언젠가 이 분이 김강하 음악 칼럼니스트가 진행하는 KBS 1 FM의 ‘FM 음반 가이드’에 나와 자신의 베스트(favorite) 음반을 소개하던 기억이 새삼 스친다.(검색해 보니 2012년 12월 8, 9일이다.) 그때 혹시 나무와 관계있는 곡이 추천되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천리포 수목원은 우리나라에서 식물종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식물종이 가장 많은 곳은 광릉 수목원도 아니고 아침고요 수목원도 아니다.) 나무 관련 책을 많이 쓴 고규홍 교수는 나무 인문학자라는 이름을 얻고 있다. 나무 칼럼니스트에서 나무 인문학자로 정착(?)한 것이다.






이분의 이전 작인 ‘천리포에서 보낸 편지’는 천리포와 나무가 두루 관련된 책이다. 이분의 저서 목록 가운데에서 고전 음악 관련 책들로 ‘베토벤의 가계부’가 있다. 베토벤, 모차르트, 파가니니, 로시니,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멘델스존, 쇼팽, 슈만, 리스트, 바그너, 베르디, 스메타나, 브람스, 생상스,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 푸치니, 말러, 드뷔시, 슈트라우스, 쇼스타코비치 등 유명 작곡가들의 생계를 추적한 책이다. 이 ‘베토벤의 가계부’와, 나무 칼럼니스트에서 나무 인문학자로의 개칭(改稱)이 갖는 의미를 연결하면 답을 얻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전음악 애호가이기에 ‘베토벤의 가계부’를 쓴 것이지만 그것이 나무 칼럼니스트에서 나무 인문학자로의 개칭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무 인문학자라는 이름은 나무 칼럼니스트에 비해 경제와 거리를 둔 이름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게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민간 아카데미 등을 중심으로 인문학 열풍이 부는 것과 달리 인문학자들(주로 교수들)은 열악한 환경을 감수하고 있고 인문학과 출신 학생들은 취업 등에서의 불이익을 겪는 것을 감안하면 나무 칼럼니스트에서 나무 인문학자로의 개칭은 인문학(국어국문학) 전공자로서 스스로 창업에 준하는 길을 마련한 노고로 보인다. 물론 기자로 활약하던 이 분이 생계를 위해 나무 인문학자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오랜 시간 나무를 연구하고 수목원을 찾으며 글을 써서 오늘에까지 이른 것이 먼저이기에 개칭은 상징적인 것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인간과 경제의 관계는 절대적이다. 굳이 恒産이 있어야 恒心이 있다는 맹자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다. ‘베토벤의 가계부’에 수록되지 않은 작곡가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바흐가 있다. 바흐가 쾨텐을 떠나 라이프치히로 자리를 옮긴 것은 더 나은 수입을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바흐는 장례식에 사용되는 음악을 작곡해 돈을 벌었는데 “이곳 공기가 너무 좋아 (장례식이 별로 없어) 예상했던 만큼 수입이 좋지 않았다.”고 썼다.






요아힘 라트카우가 ‘나무 시대’란 책에서 지속성이란 개념이 경제적인 것이었음을 인상적으로 밝힌 부분을 보자. “전반적으로 숲과 인간의 관계는 평범하고 합리적이었던 때가 한 번도 없었다. 현대의 산림전문가들 역시 겉보기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듯 하지만 냉정한 계산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경제적 관점에서의 효율적인 임업은 정확히 계산할 수 없고 지금도 그렇다.”(343, 344 페이지) 역사학을 전공한 라트카우는 서문을 통해 나무를 낭만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자신과 공저자인 잉그리드 쉐퍼를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나무와 숲의 역사에서 자신들이 발견한 핵심 모티브를 요약하는 단어는 막스 베버식의 합리화라고 말한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베버 전기’에서는 합리화의 편집광과는 전혀 다른 베버를 발견하도로 했다는 사실이다. 숲과의 접촉을 시종일관 합리화의 관점에서만 언급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는 언제 낭만에도 치우치지 않고 합리화에도 강박적이지 않는 라트카우 같은 학자를 만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균형이다.... 라트카우를 보며 바흐를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바흐란 소프트한 곡들 위주로 소비되는(어디 바흐 뿐이겠냐만) 바흐이다. 나무도 균형 있게 보아야 하듯 평균율, 인벤션, 신포니아, 영국 모음곡,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등 잘 선호되지 않는 바흐의 곡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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