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살아볼까]뱀이다 뱀이다!!
예전에 제주도 어느 절에 가다가 칠성당쪽으로 오르는 계단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보고 혼비백산을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동물원에서 비단 구렁이 정도는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바로 눈앞에 아무 방책없이 턱허니 앉아있는 뱀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나고-그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바람이 불고 비가 흩뿌리는 날이었음에도-정신이 반쯤 나갔던
기억이 있다. 섬에 들어오고 또 한번 그런 경험을 했다.
살고 있는 집에서 내려가는 계단초입에 비단구렁이보다는 조금 작지만 엄청 큰 뱀이 턱허니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녀석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워낙 눈매가 날카로운데다 마침 인기척이 나니 그저 무심히 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눈에 녀석은 자기 영역을 침범한 도둑을 쏘아보는 느낌이었다.
제주도에서 본 녀석은 이 녀석에 비하면 오합지졸의 모양새였는데...
그야말로 발이 딱 바닥에 붙어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설속에서나 나왔던 그 표현 그대로 발이 땅에 붙어서 머리는 어서
도망가라고 외치고 있는데 발은 그야말로 요지부동이었다.
한참을 서로 마주보다가 -그래봐야 30초나 되었을까-조금 정신을 차린 내가 가까스로 발을 떼어놓긴 했는데 뛰는 것은 고사하고
굼벵이 모드로 덜덜 떨면서 슬로우모션으로 겨우 뒷걸음질을 치는 정도였다.
그 모습이 하도 가관이었던지 녀석은 슬그머니 제 갈길을 가겠다는 듯 돌담사이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흰빛바탕에 연두색 무늬가 연하게 있던 녀석이었는데 나중에 동네어른들께 물으니 독사는 아니고 집을 지키는 터줏뱀이라고
하신다. 그 뒤로도 몇 번 뱀을 마주치다 보니 이제 내성이 붙었는가 처음보다는 덜 놀라지만 그래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 들어서면 돌담 사이를 유심히 보면서 지나다니게 된다.
섬의 집들은 대부분 돌담을 두르고 있는데-바람을 막아주는데 이만한 담이 없다. 시멘트 벽돌로 쌓은 벽은 태풍으로 무너지지만
돌담은 여간한 바람으로도 넘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사이사이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가 있어 바람의 저항을
덜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산에서 겨울잠을 자고 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아예 돌담 사이에 제 집이 있었는지 집 근처의 뱀들은
주로 돌담사이에서 나타나고 사라진다. 특히 집 주변과 돌담 주변에 풀이 많으면 더 많이 나타나곤 해서 풀이 무성해지는 계절이면
제초제를 뿌리기도 한다.
서울에서는 바퀴벌레가 제일 무섭더니 섬에 와서 제일 무서운 것이 처음에는 쥐였다.
집을 짓기전 세를 얻어 들었던 집은 슬라브지붕에 흙집이었는데 겉에 시멘트를 발라 보기에 그리 낡은 줄도 몰랐었다.
하지만 부지런한 쥐 녀석들이 시멘트사이에 흙을 갉아내고 집안으로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거실이라고 하기에는 그런
부엌과 툇마루 사이를 제 놀이터인양 오가는 것이 아닌가.
상을 차려 밥을 먹고 있는데 등 뒤로 쥐가 후다닥 지나가고 낮이나 밤이나 천정에서는 쥐들의 마라톤대회가 끊이지를 않아서
곳곳에 쥐덫을 놓아 봤지만 늘 허탕이었다. 그나마 조금 효과를 본 것이 끈끈이였는데 마루밑 으슥한 곳에 놓아두면 녀석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발이 붙는 것이다. 결국 두 어 마리 포획을 하긴 했는데 그걸 꺼내서 치우는게 더 큰 숙제가 되었다.
도무지 쥐를 어떻게 떼어내고 어떻게 없애야 하는지 엄두가 나질 않아 몇 번 이웃분들의 도움을 받다가 그마저도 치워버리고
결국 그 집을 사서 수리를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흙집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슬라브를 걷어내 지붕을 얹는 것으로는 리모델링을 효과도 떨어지는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업자의 말에 결국 죄 허물고 집을 짓게 되었다. 쥐란 녀석때문에 결국 집을 지었다는 결론이다.
꼭 쥐란 녀석때문만은 아니고 또 다른 녀석들의 활약도 한 몫 하긴 했다.
하루는 잠을 자려는데 어디선가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소리를 따라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분명 방 기둥사이에서
들려오는데..뭔가 보이는 것이 없었다. 결국 그 밤에는 찾지를 못하고 다음날 다시 기둥을 살펴보니 기둥벽지 사이에 굼벵이같은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겁을 하고 방을 뛰쳐나와 이웃분의 도움으로 겨우 녀석을 처리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야 기껏 바퀴벌레와 개미만 보고도 기겁을 하곤 했는데 그 마저도 어찌나 소독이 철저한지 집안에서는 거의 만날일이 없었는데
섬에오는 온통 살아있는 것들 천지였다. 바퀴벌레도 엄청나게 크다. 개미들이 단체로 소풍가는 풍경은 일상이고 모기보다 독하고
봄이 끝날무렵이면 일찍 나타나 겨울초입까지 위용을 자랑하는 시커먼 깔따구 때문에 섬에 온 초기에는 여수에 있는 피부과에 나가
치료를 받기도 했다. 어느새 봄이 끝나가는 이즘이면 이놈의 깔따구를 어떻게 처리할 지 걱정부터 앞선다.
에프킬라를 박스채 사다놓고 아예 휴대용 박멸기를 구입하여 일주일에 한번 정도 자체 방역을 할 지경이다.
섬에 사시던 분들에게는 그다지 깔따구를 타지 않는다는데 놈들이 서울내기를 기가막히게 알아보는 모양이다.
모기들은 주로 야행성이라 밤에 조심하면 되지만 이놈의 깔따구는 낮밤이 없다. 특히 내가 애지중지 키우는 텃밭에 고추밭에 숨어
있다가 고추를 따려고 들어가면 맹렬히 달려든다. 어찌나 독한지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아주 오랫동안 가려움증으로 고생하게 된다.
전자 모기향으론 어림도 없다.
이렇듯 섬에는 사방에 애완동물(?)이 섬사람들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길냥이들은 큰 문제이다. 몇 해전에 일제히 포획하여 잠시 개체가 줄었다가 다시 왕성한 번식력을 발휘하여 지금은 곳곳에서
길고양이들이 보인다. 개체수가 많다보니 먹이가 부족하여 쓰레기를 뒤지고, 가장 큰 피해는 주민들이 말리는 생선을 냉큼 집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집집마다 따로 생선건조를 위한 기둥을 만들 정도이다.
특히 길냥이들은 가을이 깊어가는 밤이면 아기소리를 내며 울어대서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한다.
한창 번식기에는 그런 소리를 낸다는데 영락없는 아기 울음소리같아서 '전설의 고향'이 떠오르기도하고 가뜩이나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내 집은 주변이 떼죽나무가 잔뜩 있어 바람이 불면 엄청 으스스한 소리에 휩싸이는데 정말 그런 날은 잠이 못이루기도 한다.
바로 어제 이틀동안 내리던 비도 그치고 날이 살짝 밝아져서 우리 막뚱이 녀석과 집 뒤 산을 오르다가 뱀과 마주치고 말았다.
아마 처음이었다면 역시 혼비백산하여 사진 찍을 겨를도 없이 도망쳐 왔겠지만 이제 슬슬 이력이 붙었는지 잠시 두근거리던
맘을 다잡고 사진을 찍었다.


독사인지 어쩐지 모르겠다. 혹시 뱀을 좀 아신다는 분 있음 댓글로 알려주시길...
새벽이면 집 옆 나무위에 와서 예쁜 목소리로 울어주는 새도 찍어야겠고 가끔 가두리에 나타나 생선을 훔쳐간다는 수달도
찍어야겠는데 쉬운 일은 아닌듯 싶다. 녀석들이 워낙 재빨라 미처 찍을 새도 없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혹시 겨우내 짓눌렸던 몸 보신좀 하면 딱이었을텐데 하시는 분들이라면 거문도로 오시라.
불탄봉을 거쳐 거문도를 휘감은 산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마주칠테니.
다만 이곳은 국립공원지역이라 아마 뱀을 잡는 것이 불법이 아니가 싶다.-뱀을 잡는 것이 어디에서나 불법인지 그건 모르겠다-
꼭 먹어야 맛인가. 좋은 공기 마시고 산을 오르다 보면 찌뿌듯 했던 몸이 날아갈만큼 가벼워질텐데..
싱싱한 회 한접시하고 회포를 풀다보면 그게 바로 보신이 아니고 뭐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