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살아볼까]거문도도 슬픔에 잠겼다

어제부터 내린 비는 새벽녘이 되어 그치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부쩍 물이 모자라 단수가 잦아지기 시작해서인지 내리는 비가 반갑기만 하다.


일주일 전 텃밭에 고추를 심어놓고 하루 하루 모종이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는것이 즐거움이다.


한달 여전 심어놓은 감자는 마치 지진이 일어나듯 땅을 가르고 힘차게 싹을 틔웠다.


 


지난번 병원진료를 위해 서울에 갔을 때 대기의자에 앉아있다가 TV로 세월호 침몰소식을 보았다.


학생들 전원구조란 말에 일단 안심을 하고 첫보도를 하고도 한참동안 물위에 배가 떠있길래 설마 수백명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비극이 일어나리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


아주 오래전 서해페리호의 참극을 겪었는데..설마 대한민국이 해상사고구조메뉴얼이 지금쯤이면 완벽하게


구축이 되었겠지..했던 기대는 너무 참담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들녀석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이런 무대비, 무대책, 무관심속에 숨져가고 있었다.


어느새 열흘이 넘었는데도 물속에 잠긴 사람들을 다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TV만 보면 자꾸 눈물이 나고 가슴이


미어져서 TV를 켜놓지도 못하겠다. 아무리 우주를 왔다갔다하고 IT의 강국이면 뭐하겠나. 불과 30여미터 물속에 잠긴


아이들도 꺼내지 못하는 미개국인것을...애초에 초등대응만 빨랐더라도 전원 구조될 수 있는 사고였는데..


참담하기만 하다.


 




 


그래도 살아남은 우리들은 또 이렇게 한 해 농사를 위해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새 생명을 키운다.


그게 삶이거니..


 


진도 앞바다는 이곳 거문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창밖에 보이는 저 바닷물이 어쩌면 그 앞바다를 거쳐 온 바닷물이 아닐까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그저 헤프닝으로


끝날수도 있었던 사고가 비극적인 참사가 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면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한계가 바로


이것이구나 싶다. 분명 뭔가가 되어 찬란한 삶을 살았을 아이들의 삶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사를 가던 한 가족도 동창회여행을 나섰던 회갑의 친구들도 그렇게 어이없이 삶을 놓고 말았다.


 


하필이면 이번에 사고를 낸 청해진해운은 백령도와 거문도에도 노선이 있다. 이 청해진 해운의 전신이 '세모'였고 '구원파'라는


것을 얼마전에서야 알았다. 거문도 여객노선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청해진해운(구원파)이고 하나는 통일교계열의 오션스(줄리아호)이다.


모든 종교의 최종적인 목적은 '구원' 즉 생명을 구하고 영혼을 구제한다는 것은 안다.


왜 두 종파가 해운업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사건이후 청해진해운의 여객선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이다.


3월까지 청해진해운의 '오가고호'가 다녔지만 그 배를 팔고 조금 더 작고 속도가 늦은 '데모크라시호'가 4월부터 운행되고 있었다.


거문도노선이 황금노선이라 다른 해운회사에서 눈독을 들인다는 말도 들리고 아마도 청해진해운은 이 사건이후 제주노선뿐 아니라


회사자체가 붕괴되지 않을까싶다.


그러다보니 3월 성수기가 시작되고 겨우내 발길이 끊겼던 관광객이 막 들어오기 시작한 요즘 거문도는 슬픔에 잠겨있다.


금쪽같은 아이들이 수장되는 참사도 가슴아프지만 예약했던 관광객들의 예약취소가 이어지고 오전 오후 번갈아 들어오던 배가


줄리아호 하나만 운행되면서 주말에도 관광객들이 모습이 많지 않다.


6개월을 벌어 1년을 살아야 하는 민박과 횟집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거문도의 특산품인 삼치잡이도 시원치않아 어부들의 시름이 깊던 차였다.


 


며칠 전에는 거문도에서 유일하게 가스와 휘발유등을 공급하던 가게가 더 이상 가스와 기름을 들여오지 않는다고 해서 깜작 놀랐다.


이번 사고로 운송방법이 더 까다로와지고 취급방침도 강화되면서 섬에 들여오기가 힘들어진 모양인데..아무 대책도 없이 일단 사고가


나면 중구난방 땜질로 막아놓기만 하는 행정은 여전하다.


거문도안에는 자체 발전소가 있어 전기가 생산되지만 그 것도 모자라는지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이면 자주 정전사태가 발생한다.


주민들은 기름보일러를 떼는 가정이 많았는데 비싸고 운반이 쉽지 않아 전기보일러나 패널로 교체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그래도 섬의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에 기름도 넣어야 하고 밥을 지어먹기 위해 가스도 필요하다.


안전한 운송과 취급을 위해 일단 중단이 되었다는데 머리 좋으신 윗분들이 설마 아무 대책없이 법률만 들이대고 있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는 그저 내 위안일 뿐이다.


시에서 특별선을 이용해서라도 공급해주겠지..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중이다.


 


이래저래 섬사람들은 마음이 복잡하다. 수시로 얼굴이 바뀌는 바다에 둘러쌓여 사는 일도 버겁고 이렇게 인재가 발생되어 관광객이


끊기고 물자도 끊기는 현실도 암담하다. 조금만 더 안전하게 메뉴얼대로 해왔더라면...우리는 이런 슬픔과 절망에 빠지지 않았을텐데.


능력도 안되는 선장 한 사람의 판단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너무 기가 막히다.


내가 섬에 들어온 이후 계속되는 불황으로 시름이 깊었던 섬에 또 다시 먹구름이 뒤덮인 것같아 밤새 요동치다가 어느새 여우처럼


변한 바다가 요즘은 무섭기만 하다. 하긴 바다가 무슨 죄가 있으랴. 사람이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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