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살아볼까]막둥이의 일기 3-살려주세요!
막둥이가 내집에 온지도 어언 넉 달이 지났다. 개의 나이는 사람과 달라 태어난지 5개월이면 8살 정도의
나이가 아닐까 싶다.
요렇게 귀여웠던 녀석이 석 달만에 엄청 커버렸다.
처음에는 사료를 먹였는데 아무래도 생선이 흔한지라 줘 버릇했더니 요즘은 사료를 잘 먹지 않으려고 한다.
안채에서 제 밥을 만들고 있으면 마당 한가운데 서서 입맛을 다시면서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본다.
일단 밥을 주면 그 때부터는 아무리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고 먹는 일에 사활을 건다.
한 번은 어떻하나 보려고 밥통을 뺏어 보았더니 으르렁거려서 역시 먹는 것 앞에서는 어쩔수 없구나 싶었다.
아마 속으로 이러지 않았을까.
'먹을 땐 개도 안 건들린다는데...'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저 털을 뒤집어쓰고 평생 처음 더위를 겪고 있으니 안쓰럽기가 이를데 없다.
처음 집에 와서는 목욕도 자주 시켰는데 물이라면 질겁을 해서 곁에 사람이 꼭 붙들어야만 겨우 목욕을 시켰었다.
하지만 저도 이 더위만큼은 어쩌지 못하는지 이제 마당에서 목욕을 시켜도 시원하다는 듯 가만히 있는다.
집 곁에 골목길은 불탄봉에 오르는 관광객이 가끔 지나다니는 길목이라 낯선 사람들이 보일라 치면
제법 큰 목소리로 짖어 제가 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뚱이는 호기심이 많고 겁이 많아서 가끔 뜬금없이 짖어대서 나가보면 조그만 개미나 날아다니는
종이조각을 보고 질겁을 해서 짖고 있거나 해서 도대체 저 녀석이 진돗개 종자가 맞는지 의아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물도 별로 겁을 안내고 해서 유림해수욕장으로 나들이를 나가 보았다.
골프에서도 머리를 올린다는 말이 있는데 뚱이 녀석 본격적인 해수욕으로 머리를 올려주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많은 물은 처음인지라 덜컥 겁이 나는 모양이다.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버둥거리다가..
결국은 끌려 들어가 본격적인 해수욕을 즐기는데...사실 해수욕을 즐긴다기 보다 어떻게든 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유전자에 들어가 있는 수영능력을 끄집어내고 있는 중이다.
소설가 이상은 '날자 날자 날아보자꾸나'라고 외쳤다지만
우리 뚱이는 '살자 살자 살아 나가보자꾸나'를 속으로 외쳤을 것이다.
"제발 살려주세요"
꼭 붙들고 떨어질 생각을 안한다.
나는 생전 수영을 해 본적 없는 뚱이에 멋진 개헤험을 보면서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지울 수없었다.
'우리 뚱이 멋져!'
이렇게 가끔 바닷물에 담가주면 피부병도 안생기고 벌레도 끼질 않는단다.
다음에 데리고 오면 덜 무서워 할란가.
텃밭에 들어가 헤집어 놓는게 싫어서 목줄을 묶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하루종일 고작 몇 미터 반경만 빙빙 돌아야 하니 얼마나 갑갑할까.
텃밭에 울타리를 치고 요즘은 가끔 이렇게 목줄을 풀어준다.
부리나케 옥상으로 올라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면서 뚱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뚱이는 바로 거문도 가두리에 있는 이 녀석들의 자식이다.
원래는 하얀 털을 가졌다는 백구녀석이 아빠고 아래 황구가 엄마인데..
아빠인 백구는 20년이 넘게 살고있는 그야말로 장수개인셈인데..
사람 나이로 치면 100살이 넘은 셈이라고 한다.
황구는 아직 젊은 편인데...말하자면 손주뻘인 아내와 사는 격이다.
그런데 이 백구녀석 가두리에서 뭘 먹고 살았는지 늘그막에 힘을 내서 아들 둘과 딸 셋을 봤단다.
백구 만세!
그중에 한 녀석이 바로 우리 뚱이다. 씨도둑은 못한다고 우리 뚱이는 제 아빠를 쏙 빼 닮았다.
녀석...자신이 늦둥이라는걸 알기나 할까.
이제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백구는 털도 빠지고 저렇게 몰골이 흉흉해졌다.
가두리에 낚시를 갈때마다 뚱이의 아빠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사람이나 개나 늙으면 서러운 법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어떻게 새끼를 가진 것인지 신기할 정도다.
하긴..사람도 문지방만 넘어 다닐 힘만 있어도....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백구야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