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전장터에 선 마음으로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작가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나를 부른다.
"잠깐 얘기좀 합시다."
당사자가 아닌 내게 말을 하자는 뜻은 내가 이리저리 올린 글들이 부담스럽다는 뜻일게다
"여기저기 내 얘기를 하고 다니는 모양인데 그래봐야 당사자도 나도 좋을 일이 뭐 있겠소."
"당사자를 나보다 더 많이 알아왔으면서 그렇게 아무런 배려없이..."
말을 꺼내려는데 그가 내 말을 자른다.
"아 지나간 일들은 말할 필요없고..."
그는 단지 내 입을 막고 싶을 뿐이다.
자신의 글이 누구에겐가 비수가 되어 꽂혔다는 것보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자신에게
치명상이 되는 일이 경계될 뿐이다.
나는 그가 그런 말을 해주길 바랬었다.
"당사자가 그렇게 힘들어 할줄은 나도 몰랐다. 작가로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책을 발행한 출판사를 교보문고의 행사장에서 만났었다.
그후 독자 기자라는 타이틀로 취재를 하게 된 '김훈'작가의 사인회에서.
'칼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김작가는 내게 깊이 각인 되었었다.
홀리듯이 따라간 그 곳에서 작가를 만나고 그 후 그의 다음 작품 몇 편이 나올 때까지
독자기자가 되어 그를 따랐었다.
그 때 나를 그 사인회 현장으로 안내했던 출판사의 직원은 그 후 지금까지 나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 섬에 내려올 때 그녀도 함께 했었다.

일단 출판사와 이야기를 해봐야 겠다고 판단한 나는 그녀와 통화를 했다.
물론 그녀는 '그 남자의 연애사'에 나오는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같이 앉아 술을 마시고
섬에서 나간 후로도 작가의 열렬한 독자들에 의해 남자의 소식이 전해졌으므로.
당연히 그 소설이 소설이 아님도 알고 있었다.

출판사의 사장과 통화하고 싶었으나 부재중이었다.
내 전화번호를 남기고 기다렸지만 그녀의 우려대로..그 사장은 그런 메시지에는 무심한 편이라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요즘 내 블로그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어제인가는 천 명을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암튼 다녀간 블로거중에 출판사의 그녀도 있었다.
그녀의 글에 답글을 달았다.
'다녀갔네..마음이 많이 힘들어.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뿐이야.
직원의 입장에서 판단하기가 힘들었을거라고 짐작했어. 암튼 중간에서 애써줘고 고마워.'

'저도 왕눈이님과 통화하고 아무래도 그냥 있을 수가 없어 그 책을 담당했던 편집차장님한테
얘기를 했어요. 차장님도 그냥 있을 수가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국장님하고 얘기하시고...
그리고 작가님한테 전화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어떤 결과가 될지는 모르지만 힘내세요.
왕눈이님의 진심이 느껴졌어요.'

아마 그는 출판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현실은 비루해도 자존감만은 다락같이 높은 그에게 나의 실랄한 글은 치명상이 될 것이었다.
오다가다 지나치면 서로 눈길을 피할 정도로 피차 증오감이 많았던 사이기에
그가 나를 불러 세운 건 파격적인 일이다.
그만큼 자신에게 덧 씌워질 오점들이 두려웠겠지..
그리고 내가 엄청나게 미웠겠지.

우리 둘과 소설속에 등장한 남자를 모두 다 아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님 그 사람 자신을 포장하는데 뛰어난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을 누님이 상처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에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래 나는 대단하다. 바른 소리를 할 줄아니까.
그리고 나는 다칠 것이 없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은 그 이름이 오염되는 걸 참지 못한다.
아마 이 책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옷자락을 살짝 비틀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진정으로 그의 가슴에 꽂히는 타격은 절대 되지 못할 아주 조그만 흔적정도.
그 정도로도 부르르 떨만한 사람인 건 알고 있었다.

그 날 나를 불러세워 은근히 타협의 의지를 내 비친건..내가 들을 얘기는 아니었다.
당사자에게 진심을 보여준다면.
아마 문학에..세상에 조금은 무지한 남자를 잠시 가라 앉히기 위해 그는 진심을 가장한
설득을 할 것이다.
내게도 그랬었다.
"출판사와 얘기중인데..그게 그렇게 빨리 진행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겼다.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이다.
정말 그가 자신의 양심을 걸고 순수 창작의 글을 썼다면 다락같은 자존심을 접고 내게
출판사와 협의중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자신의 글이 부끄러움을.
그래서 조금 기뻤다. 그 자만한 사람에게 그런 정도의 인정도 나는 강력한 서어브를 넣어
포인트를 획득한 것같았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에게도 자식이 있다. 자신의 글로 밥을 벌어 먹어야 하는 자식이 있다.
아비로서 자식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겠지.
일단 나도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오늘 얘기는 내가 들어야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 그 남자에게 전화하세요."
"그 남자에게 전화하라고 하십시오."
하긴 나를 불러 세웠다고 해서 그가 다시 인간의 선함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보여준다.
"왜 그 남자가 전화를 해야하죠? 당신이 하세요."

돌아서 오는데 조금은 덜어 낸 것같은 후련함과 여전히 진심이 보이지 않는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여전히 온라인 서점을 클릭하면 그의 신간이 반짝 반짝 교태를 부리고 있다.
정말 출판사와 협의가 되긴 할걸까.
가장 먼저 그 되지도 않을 마케팅을 접어야 하는게 아닌가.
나는 이틀동안의 망설임을 떨쳐내고 그의 책 리뷰란에 내 글을 올렸다.
글쎄 '명예홰손죄'에 해당이 될지.
'홀로고군분투죄'에 해당될지는 두고 봐야겠지.
그의 다음 행보에 따라 그가 글을 무기처럼 써서 누군가를 상처냈던 것처럼
나도 내 유일한 무기인 글로 그를 무찌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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