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살아볼까]마늘장사
거문도의 먹거리는 아무래도 바다에서 나는 것이 가장 흔하겠지만 해풍을 맞고 자란
쑥이나 마늘도 꽤나 유명하다.
마늘은 서산이나 단양, 의성같은 곳이 유명하지만 이 곳 거문도의 마늘도
그에 못지 않은 특산품이라 하겠다.
지난 2년여동안은 마늘이 흉작이었으나 올해는 거문도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마늘이 풍년이라고 한다.
작년 가을 고추를 뽑아내고 심은 마늘은 겨우내 해풍을 맞고 잘 자라 주었다.
조금 늦게 심은 편이라 씨알이 적긴 했지만 이 정도면 한 일년 충분히 먹을 수 있겠다.
알량한 텃밭 농사이긴 하지만 생명을 키워내는 일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경이로운 감동에 빠지곤 한다.
작년 가을 바짝 마른 마늘을 물에 이틀동안 담갔다가 밭에 심으면서도 도무지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던
마늘 한쪽이 과연 이렇게 굵은 마늘 한 통을 만들어 냈으니 어찌 신기하지 않겠는가.
마늘은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작물로 가을 무렵 아침 저녁으로 물이나 주고 특별히 약을 친다거나 하지
않았건만 유독 지독했던 지난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이렇게 당당하게 제 몸을 불렸으니 기특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그 지독한 추위를 견딘 것들이라 더 단단하고 매운맛도 당당할 것이라 여겨진다.
모두가 어렵다는 이 시절에 뭐든 풍년이 들었으면 좋겠지만 너무 흔해지면 값이 떨어지니
돈으로 바꿔야 하는 마늘 재배 농부들은 또 한숨이 깊어질지도 모르겠다.
거문도의 마늘은 팔려고 재배하기 보다는 그저 일 년동안 갈무리해두고 양념으로 쓰고
자식들이나 친척들에게 보내주는 정도로만 재배된다.
개중에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일부 팔기도 하지만 많은 양은 아니다.
거문도의 마늘이 유명하다고 친구들에게 소문을 냈더니 몇몇 친구들이 부탁을 해온다.
이웃할머니들에게 부탁하여 서너접을 구해 택배로 부쳐주려고 시세를 알아보니 아직
시세를 잘 모르신단다.
이제 나도 천상 섬여자가 되고보니 육지의 시세를 알 수가 없다.
씨알이 굵은 것들만 골라 손수 들고 오신 할머니에게 얼마를 드리면 되겠냐고 물으니
수줍게 웃으시면 말씀하신다.
"글쎄 나도 잘 몰러, 얼마를 달라하면 나중에 욕 먹을깨배 그냥 나중에 시세 나오면 줘'"
마늘 한 접에도 뒷소리가 따라 붙는 곳이 시골이다.
비싸니 싸니, 좋니 안좋니..하는 뒷말이 나올까봐 할머니는 주면서도 걱정이시다.
팔려고 키운건 아니지만 부탁으로 조금 내놓으면 나중에 이런 뒷말들이 나오곤 했던 모양이다.
하긴 나도 택배로 부치고 나서도 혹시나 받아먹는 친구들이 비싸다느니 안좋다느니 할까봐
마음이 쓰였다. 항상 말이지만 '다정도 병'이고 '입이 방정'이다.
그저 가만히 있었으면 몸도 마음도 편하련만 그놈의 오지랖은 바다를 건너와도 어김없이 따라붙어서
심부름값도 없는 마늘장사를 하고 눈치만 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