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자콥의 타계를 보며...


자콥(1920년 6월17일 - 2013년 4월 20일)의 타계가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 나이로 94세를 살다가 간 전설이 되었네요. 지난 1994년에 나온 그의 책‘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의 번역자인 이정우 교수를 통해 철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기에 잊혀지지 않는 책이지요. 물론 철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해준 책은 이정우 교수의‘가로지르기’와‘담론의 공간’입니다.‘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를 산 것은 2002년 무렵 지금은 없어진 창덕궁 인근 원서동 정신세계사의 지하 서점에서였는데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아마도 이 교수께서 이 책을 번역한 것만 보아도, 실제 내용을 보아도 인문학적 소양(素養)이 넘치는 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자콥이‘주역’을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는 역자 서문이 눈에 띄는데 그 이후 어떤 성과가 있었을까요?‘주역‘에 대한 자콥의 관심은 주역 이론을 응용한 가설을 세우고 실험에 몰두한 닐스 보어의 사례와 함께 신선하게 들립니다. 검색해 보니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는 책의 리뷰에 인간을 핵산과 기억, 단백질과 욕망의 가공할 혼합물로 본 프랑수아 자콥의 생각도 단백질과 핵산의 중요성을 배경으로 해서 나온 생각일 것이라는 글을 쓴 기록이 있네요...


자콥은 2차 대전 중 대 독일 저항에 참여했는데 당시 입은 부상으로 외과 의사가 되는 것을 포기해야 했지요...오페론... 어떤 형질이 나타나는 단위가 되는 유전자의 작동 단위...자콥과 모노, 르보프 세 사람은 오페론을 해명함으로써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지요. 자콥과 자주 비교되는 모노는 ’우연과 필연‘으로 인상적으로 각인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예컨대“인간은 마침내 그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그가 이 우주 속에서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그 어디에도 그의 운명이나 의무는 쓰여 있지 않다.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마지막 구절이 깊은 울림을 주는 ’우연과 필연‘..


하지만 이 책은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지요. 지금 다시 보니‘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에 못지 않게 ’우연과 필연‘도 인문학적 분위기가 나네요. 특히 베르그송이란 철학자가 두 책에 공히 등장하는 것도 눈에 띕니다. 모노의 ’우연과 필연‘의 마지막 구절 만큼 인상적인 자콥의 글은 “진화의 가능성 자체에 필수적인 또 하나의 조건은 죽음이다.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사고의 결과로서의 죽음이 아닌, 내부로부터 부과된, 유전프로그램 자체에 의해 알의 상태에 이미 규정되어 있는 필요성으로서의 죽음, 왜냐하면 진화란 존재하는 것들과 존재할 것 사이의, 보존하려는 것과 개혁하려는 것 사이의, 재생산의 동일성과 변이의 새로움 사이의 투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란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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