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살아볼까]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락호라!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논어에 나오는 이 귀절이 지금 나에게 딱 맞는 말이다. 


성격이 호탕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나는 친구나 지인이 많은 편이다.


서울에 있을 적에도 초등학교동창부터 학교별 동창모임은 물론 등산회에 동호인모임까지


그야말로 심심할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섬에 내려가 산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누구나 의아했다고 한다.


'저 극성쟁이가 심심한 섬에 내려가 산다고? 친구결핍증내지는 수다를 못떠니 입에 가시가


돋을텐데'


그저 잠깐 쉬다가 올라오겠지 했던 친구들은 작년에 내가 집을 짓고 나서야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서울내기인 내가 과연 섬에서 잘 살고 있을지 모이기만 하면 걱정스럽게 내소식을 묻곤했단다.


 


"얘들아 호는 잘 살고 있을까?"


"무슨 섬에서 산다고 들었는데..거제도라던가."


 


친구들 대부분은 거문도를 잘 모른다. '거'자가 들어가니까 '거제도'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거문도'라면 그게 어디에 있는 섬인지 되묻기가 일쑤였다.


"그 섬 흑산도 옆에 있는거 아냐?"


 


같은 전남이긴 한데 흑산도와 거문도의 거리는 엄청나다.


아마 거문도에서 흑산도까지 배를타고 간다면 4시간은 족히 걸리지 않을까.


 


지난 겨울 왼팔에 마비가 와서 수술을 하러 서울 병원에 입원을 해있는 동안 고맙게도 친구들이


많이 찾아와 주었다. 번잡스러운게 싫어 살짝 갔다가 내려오려고 했는데 어떻게들 알았는지


나이들면 건강이 최고라고 모두들 제일처럼 걱정을 해준 친구들의 존재에 새삼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지난달 열 살 차이가 나는 막내동생이 먼저 세상을 버리고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위로차 오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한편으로 당분간은 번잡스러운 일을 피하고 삭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연이어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에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마음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거문도는 동백이 지기 시작하는 초봄부터 장마가 오기 전까지와 9월중순이 지나고 겨울이 오기전까지가


가장 좋은 계절인지라 이 때를 놓치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같아 흔쾌히 오라고 했다.


 


여자동창들만의 모임은 대략 스무명이 넘는데 그중 7명이 일정에 맞춰 올 수 있다고 한다.


막상 친구들을 초대해놓고 보니 마음이 더 바빠서 뭐부터 준비를 해야할지 조급하기만 하다.


살림살이야 제대로 해본적도 없고 음식솜씨도 없는데 가뜩이나 먼길을 힘들게 내려와준 친구들이


편하게 쉬고 가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선다.


 


퇴원 후 섬에 돌아와 병원에 와주었던 친구들에게 미역과 달래를 조금 보내긴 했지만 고마운 내마음이


다 전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능하면 섬에서 나는 섬음식으로 대접하고 싶은데 나도 아직 접하지 못한 음식도 많고 만들 재주도 없으니


이웃 할머니들에게 부탁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항각구(엉겅퀴)를 넣은 갈치국이 이 섬에 명물인데 항각구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갈치 역시 흉작이라 아마 지난 겨울 잡아 둔 냉동갈치를 구해야 할 것같고.


군소라고 부르는 해삼 비슷한 연체동물이 있는데 이건 갯바위 근처에 가면 많다고 한다.


맛보다는 식감이 좋아서 미나리같은 야채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쳐 놓으면 먹을만하다.


 


1박2일에 소개되었던 거문도등대도 좋지만 반대편에 있는 '녹산 등대'가 더 멋진 곳이라고 여기는 나는


친구들이 오는 첫날 그 곳부터 소개해주고 싶다.


 


고기가 흉년이고 삼치철도 끝나는 시기라 서울에서 먹어보기 힘든 삼치를 준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다낚시도 해볼 수 있도록 해주고 싶고 아직 들판에 있을지도 모를 달래며 쑥, 미나리도 캐어갈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


변변한 이부자리도 없지만 깨끗하게 빨아서 깔아주고 싶어 이불빨래부터 해본다.


구석 구석 쌓인 먼지는 또 어떻게 털어낼지.


"뭘 사갈까. 필요한거 있음 얘기해"


하면서 연신 전화를 해대는 친구들이 이렇게 멀리 유배처럼 떠나온 친구를 보러 내려온다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마음은 바쁜데 재주는 없고 괜히 안절부절 못하고 이리 저리 부탁만 하고 있다.


"홍합 잡으시거든 저한테 좀 파세요"


"어디가야 항각구좀 캘수 있을까요? 좀 가르쳐 주세요"


'보광초등학교 여친들 살아있네 왕창 환영한다'라는 플랭카드라도 만들어 반가운 마음을 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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