達牙를 지나다 - 박진성
나올 것만 같았다 내 病이 천 년쯤 구석구석 물결에 몸을
내어주면 몇 개 섬들로 태어나는가
알약처럼 떠있는 작은 섬들은 쉽게 수평선을 허락하
지 않는다 태평양의 심장에 닿기 위해서는 몇 개의 섬들
을 지나야 하리 가늘게 떨고 있는 실핏줄처럼 達牙는 반
도의 끝자락까지 길을 내어주는데 오장육부 모세혈관 팽
팽한 신경, 동공까지 물맛으로 드러내 보여주는데 저 섬
들의 솔숲, 꿈틀거리는 송충이 발바닥까지 담기에는
아직 멀었구나 달아, 달아
저물면서 南海의 어금니가 되는 달아, 무서운 사랑을
잘근잘근 씹어서 피톨 같은 섬들을 환하게 비추이고 싶
었다
달아(達牙)는 경남 통영의 해상 공원이다.‘達牙를 지나다’는 투병중인 시인의 염원이 담긴 시이지만“내 病이 천 년쯤 구석구석 물결에 몸을/ 내어주면 몇 개 섬들로 태어나는가”라는 절망이 드러나는 시이기도 하다.‘달아, 닿고 싶었다‘는 구절을 보면 달達이 ’통할 달, 보낼 달’자이니 단지 달아의 한문을 풀이해 놓은 듯도 싶지만 이루지 못한 소망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저물면서 남해의 어금니가”된다는 구절의 주체도 달아(達牙)의 아(牙)가 어금니를 말하는 것이니 달아 공원이겠지만 저무는 달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닿고 싶었다”,“비추이고 싶었다”는 과거형의 문장들이 투병중인 시인의 절망을 잘 대변해 주는 시! 시인은 1978년생이니 올해 서른 여섯 살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達牙를 지나다’를 처음 접한 것이 지난 2007년이니 그 이후 6년의 흘렀으니 시인은 어떻게 변했을까? 검색 해보니 시인은 지난 해‘청춘착란’이라는 첫 산문집을 냈다.
시인은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한다. 그 병은 대학 진학을 앞둔 지난 1996년에 시작된 것으로 이미 17년 전의 일이다. 그의 다른 시인'이명(耳鳴)'은‘귓속으로 기차가 들어왔다/ 기차는 며칠째 철로를 달리고 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귀,/ 해안선이 일제히 내 안으로 휘어진다/ 기차는 귓속을 뚫고 관자놀이 지나/심장까지 온다 바퀴 소리가 온 몸의 혈관을 달군다.’는 구절을 담고 있다. 산문집‘청춘착란’을 통해 본 결과 시인에게 약간의 희망이 보이는 듯 하다.“내가 앓았던 병은...”이라는 구절,“박진성의 첫 산문집‘청춘착란’(2012년 출간)은 그동안 그가 탐닉해왔던‘정신질환’의 세계에 대한 탐사의 보고서이자 결별의 인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공황장애라는 병으로 투신해서 병과 함께 살아온 시인이, 이제 막, 그 병과 결별하는 현장을 우리는 이 책에서 목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출판사(열림원) 제공 책 소개가 그런 짐작을 하게 한다. 시인은 그리고 여러 시인들과 함께 쓴‘시인의 책상’(2013년 4월 8일 출간)으로 건재를 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