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살아볼까]헬리콥터가 뜨면 불안하다

걸핏하면 여객선이 끊기는 섬에서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겠지만 가장 힘든건 


노령인구가 많은 섬에서 급환 환자가 발생할 때 일 것이다.


의료기관이라야 약국도 없고 공중보건의가 근무하는 조그만 보건소가 전부인 곳이라 위급한


환자가 발생할 때에는 여수에서 헬리콥터가 날아온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바로 앞에 있는 해군부대안에 헬리콥터장이 있어 헬리콥터가 뜨고 내릴 때는


엄청난 소음이 진동을 한다.


가끔 무척이나 귀한(?) 정부인사가 헬리콥터로 방문하기도 하고 얼마전 타계한 통일교 교주


문선명씨도 가끔 헬리콥터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119소방구급대의 헬리콥터가 가장 자주 들어오게 된다.


 


 


 







 


최근 몇년간 4월에도 이렇게 추운날이 있었을까 싶은 어제에도 헬리콥터가 급하게 오갔다.


마을 사람들은 헬리콥터소리가 들리면 오늘은 또 누가 급하게 실려가는지 확인을 하느라


빠꼼히 문을 열고 내다보거나 헬리콥터가 잘보이는 옥상에 올라가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보곤 한다.


다음날이면 누구 누구가 실려갔다거나 위급하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처음 섬에 들어와서 친부모님처럼 살갑게 지냈던 이웃할머니도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급하게 헬리콥터를 불러 여수에 실려간 적이 있으셨단다.


뇌와 심장에 이상이 있어 치료를 받으시고 다행히 돌아오셨지만 어떤 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기도 한다.


이렇게 헬리콥터가 뜨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헬리콥터가 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배를 몰고 나가야 한다.


주로 일기가 좋지 않은 경우인데 사실 배도 뜰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일이라 어렵게 배를 섭외해서 나간다고 한다.


해경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과 큰비용을 무릅쓰고라도 나가야 하는 섬사람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작년 가을 어느 날 보건소를 방문했다가 위급한 할아버지 한분이 급하게 실려온 것을 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덕촌리에서 가끔 뵈었던 분이신데 진료실에서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리고


보호자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화장실을 다녀오길래 그렇게 위급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짐작했었다.


하지만 조금 진정되어 집에 돌아가셨던 할아버지가 저녁무렵 다시 위급한 상황이 되어 헬리콥터가


들어오고 보건소 의사까지 동행하여 뭍에 나갔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다.


며칠동안 보건소에서 뵈었던 할아버지 모습이 어른거려서 죽음이란 것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던 기억이 있다.


죽음이란 것은 뭍이건 섬이건 바다이든 어디든 거침없이 들이닥치는 불청객이 아니던가.


이렇게 한 번 헬리콥터가 몰고온 바람처럼 한바탕 불안의 회오리가 지나고 나면 섬사람들은 며칠동안


뒤숭숭한 이야기로 걱정스런 맘을 달래곤한다. 예전에는 섬안에서 장례도 치르고 묘지도 썼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망자들이 다시 섬에 돌아오지 못하고 마을사람들이 우르르 여객선을 타고 뭍에 장례식장을


방문한다. 망자들의 몸뚱이는 물을 건너 뭍에서 흩어질 것이고 혼은 다시 물을 건너 그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겨울의 찬바람보다 더 시러운 봄바람이 뼈속까지 스며드는 어느 봄날,


급하게 오갔던 헬리콥터에는 누가 실려갔을지 마음이 착찹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수송을 위해 오간 헬리콥터 비용이 무료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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