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살아볼까]해줄 것이 이것밖에 없어 미안하다

섬에 정착하기로 마음 먹을 무렵 나는 벼랑끝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쉰 살이 넘어가는 동안 거의 쉼없이 일하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이란 생각지도 않는 복병이 어디에나 숨어있는 법.


늦둥이 아들녀석에게 닥친 질풍노도의 시간들이 내게는 태풍이 되어 거의 KO패를 당한 꼴이었다.


내가 그 녀석에게 붙여준 '보물단지'라는 별명이 '애물단지'가 되어 무척이나 견고해 보이던


내 마음이 그야말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참으로 잘 생기고 착하던 녀석이었는데 자신에게 닥친 이상 야릇한 호르몬의 침략에 저 역시도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토록 잘하던 공부도 내려놓고 댄스가수가 되겠다고 학원을 다니겠다니 지 인생 지가 사는 거


말려도 소용없을 것이고 덩치가 산만해진 녀석에게 회초리는 이미 무용지물이었다.


 


더구나 가장에 장남역할까지 도맡아 해야하는 내처지가 어느 날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는 동생들을 지켜봐야 하는 것도 내게는 크나 큰 고통이었다.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적은 없지만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아마 갱년기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힘들고 어디론가 나를 기억해주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애지중지 키워 놓았던 아들녀석에게도 엄마의 부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이 들면 조용한 산골에 가서 막걸리 빚고 파전부쳐 지나가는 과객에게 먹이고


살겠다는 꿈도 작용했다.


우연한 여행에서 만난 섬은 그 무렵 나에게 아주 적당한 유배지처럼 보였다.


전생의 죄업이든 현생의 죄업이든 죄인인 내가 죄값을 치르는 유배지로 섬만한 곳이 있었을까.


 


그렇게 시작된 섬살이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으니 오래전 섬에 유배 되었던 죄인들의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 세를 얻어 살다가 굳이 집을 지은 이유는 아마도 나를 묶어두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돌아갈 곳을 없애고 스스로 닻줄을 내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구실이 아니었을까.


집을 짓는 내내 마음 고생이야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예쁘게 지어진


이 보금자리는 지치고 쉬고 싶은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아랫목같은 역할을 해 줄것 같아 잘했다 싶다.


 


 


 


 


 


집을 다 짓고 나니 이제서야 정신이 들어 미처 섬에 내려온다는 말도 못하고 온 친구들과


지인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말같이 온 세상을 뛰어다니던 내가 이런 섬에 조신하게 갇혀 산다는 것은 그들에게 이해불가의


일일 것이다.


2년여를 살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이방인이고 섬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제 겨우 미역을 따서 말리고 냉이며 달래는 캐는 것이 고작이다.


 


 


 


지난번 수술을 위해 서울을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었다.


언젠든지 시간만 나면 만나던 친구들도 마음껏 보지 못하고 전화도 제대로 못했건만 입원했다는


소식에 득달같이 달려와 주는 친구들을 보니 내 인생 그래도 대충 산편은 아니구나 싶다.


팔꿈치 수술이라 큰 수술을 한 다른 환자들처럼 걷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얼핏 나이롱 환자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2인실 병실에 한쪽 환자는 매일 가족들이며 친지들이 문안을 오는데


아무도 들여다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조금 섭섭한 마음이 생길 법도 했다.


카톡으로 서울방문을 알리고 수술을 했다고 올리니 역시 의리파 친구들이 달려와 주었다.


너무 고맙고 반가웠지만 대접할 것도 없고 그저 받기만 하고 돌려보낸 일이 내려와서도 마음에 걸렸다.


사이사이 비가 내려 노심초사하면서 겨우 말린 미역 몇 올과 나물을 챙겨 택배로 부치고 나니


이제서야 빚을 갚은 것같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뭐 일일이 보낼 수가 없어 그중 제일 공평할 것같은 친구에게 알아서 나눠 먹으라고 보냈지만 혹여


부족하여 섭섭한 친구가 생길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친구들아 해 줄것이 이것밖에 없어 미안하다.


대문은 열어 놓았으니 지치고 힘들 때, 그리고 가족들과 행복한 여행을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려무나. 이렇게 멀리 섬에 사는 친구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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