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살아볼까]서울 나들이(2)

제법 많이 말렸다고 생각했던 미역을 나누려고 보니 얼마 되지도 않는것 같다.


섬에 내려가 살면서 친구노릇 언니노릇 한 것이 없어 이것으로나마 면피를 하려고 했더니 밟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처음에는 다섯봉지로 나누어 놓았다가 결국 다시 풀어 또 반씩 나누고 말았다.


많이 먹어야 맛인가 그저 남해의 바닷바람이 담긴 정성을 먹는다고 생각해주면 더 고마운 일이지.


기껏 몸이나 축내고 올라왔나 걱정스러워 할까봐 미리연락도 없이 올라왔었다.


손가락의 마비가 우선은 걱정이라 원인부터 찾고나서 연락을 하기로 하고 예약된 병원을 방문했다.


혼자 가도 충분하건만 기어이 따라나서는 딸을보니 제딴에도 걱정스런 모양이다.


신경외과에서는 인정을 받았다는 부원장에게 특진 진료서를 들이밀고 예약시간보다 한참이 지난후에야 겨우


진찰이 시작되었다.  섬에서의 의료기관이라야 공중보건의가 근무하는 보건소가 전부인지라 도시에 우후죽순처럼


솟아있는 병원을 보니 얼마나 아픈 사람이 많으면 이리 병워이 많나 싶었는데 막상 내가 병원을 찾으니 여전히


병원수가 적은것 같다.


 


낚시에 따라 나섰다가 흔들리는 배에서 넘어져 왼쪽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있는 허리부터 왼쪽 


손가락마비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목디스크를 체크하기위해 MRI를 찍기로 하였다.


심전도 검사에 근전도검사까지 하려면 이틀이 걸린다해서 왔다갔다 하느니 입원이 나을것 같아 의사에게 멀리 


섬에서 온사람이라 입원하여 검사받고 싶다고 했다.


말투는 서울사람인데 섬사람이라는 말에 어디서 왔는지 물으신다.


거문도라는 말에 그래도 섬 이름을 아셨는지 어떻게 그리 먼곳에 사는지 궁금해 하신다.


'거문도'라고 말하면 열에 일곱은 '거제도'로 알아듣는다.


그래도 사회공부좀 했다면 '거문도 사건'을 들어봤음직도 하건만 여수와 제주도에 중간쯤에 자리잡은 거문도에


대하여 홍보대사수준으로 열변을 토해야한다.


 


 


여수에서 2시간 10분이 걸리지만 나로도로 들어와 여객선을 타면 1시간이면 될만큼 가까운 곳이라든가


동백꽃이 지는 봄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등 서울내기인 내가 닻을 내린 것에 대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변명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린다.


책읽고 글쓰고 낚시하러 내려갔다고 하니 의사의 표정이 갑자기 멍해진다.


'하 참, 평생의 로망을 이루고 계시니 부럽습니다.'한다.


하긴 내가 섬에 살러 간다고 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이런 반응이었다.


물론 나도 여행으로 다니러 갔던 섬에 반해 집짓고 살기로 결심했을때는 이런 마음이었다.


풍경이었을 때의 섬과 삶의 터전이었을 때의 섬이 다른 얼굴임은 그 뒤 얼마되지않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저 섬은 섬일뿐이고 느끼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변덕스런 마음일 뿐 몇천년전부터 섬은 고고하게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고 누가 뭐라든 한심한 인간들을 측은하게 내려다보고 있았을 것이다.


 


 


존경받는 의사도 돈 잘버는 사업가들도 내가 부럽다는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것만큼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되묻게된다.


바다위에 떠있는 섬이든 도시속에 떠있는 고층건물에 살든 장소보다는 마음이 문제이지 않을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갇혀있으면 어디에 있든 '섬' 이 된다.


그래서일까. 섬에 산지 2년이 넘으면서 도시와 섬의 거리감은 문제가 되지 못했다.


문제는 마음의 거리일 뿐이다.


섬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멀리 바다를 건너 세상과 잠시 떨어져 있고 싶다는 갈망은 기대했던 여행이


즐겁다가도 막상 집에 돌아오면 안도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짐작될 것이다.


여행이란 늘 떠나기전에 더 설레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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