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살아볼까]서울 나들이(1)

갱년기에 접어들어 그런가 섬의 환경이 버거워 그런가 남들은 바닷가에 오면 건강해 진다는데 2년여 


사는동안 컨디션이 영 시원치가 못하다. 여름은 습기 머금은 열풍에 강렬한 자외선 때문에 겨울에는 코가 떨어져 


나갈만큼 차가운 바람 때문에 문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않아 칩거를 하다보니 운동부족의 영향이 끔찍하게 나타났다.


가뜩이나 풍만했던(?) 몸은 더욱 비대해지고 언덕 중간에 위치한 집에 오르기 위해 계단을 몇개 오르다 보면 숨이 턱에


차오르곤 하니 한심하기가 이를데 없다.


좋은 안주에 술 한잔이 일상이니 술살만 잔뜩 붙었다.


이러 저러 섬에 적응하느라 맘고생도 했는지라 몸과 마음이 예전같지 않아 결국 병원에 가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왼쪽 손가락이 저리기 시작하더니 문 손잡이도 돌리지 못하겠고 남비하나도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할만큼 마비가 심해졌다.


며칠 그러다 말겠거니 하다가 컴퓨터 자판도 제대로 치지 못하겠고 병은 소문내란  말에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다보니


뇌졸중의 전조라느니 목디스크 증상일거라느니 의견이분분하여 이러다가 집앞 해군기지내  헬리콥터 신세를 질까


은근히 겁이나 결국 거문도를 나오게 되었다.


인간은 확실히 환경의 동물인지 어느새 섬생활이 몸에 배어 복잡한 도시에 나가면 조금은 어리버리가 되어 버린다.


마침 아래 다이버 청년도 서울에 간다하여 잘 됐다 싶다. 


아무래도 한번 서울집에 간다하면 말려둔 미역이며 생선을 챙겨야 하니 어느새 짐이 한가득이라 짐이나 좀 거들어줄까 


싶었건만 한달여전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친 청년은 절뚝거리는 발걸음 부터가 영 도움이 되기는 틀렸다 싶다.


여수에서 강남터미널까지 4시간 10 분이 소요되니 6시간 이상 걸렸던 예전에 비해 오가는 일이 편리해졌다.


여수와 거문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두회사가 번갈아 운행을 하고 있는데 오가고호는 2층 구조로 되어있고 파도에 덜 


출렁거리는데 조금 작은 줄리아호는 빠른 대신에 멀미를 각오해야한다.   


 


 


여수에서 출발하는 고속버스는 한시간여 간격으로 출발하는데 기다리지않고 바로 출발하는 버스로 예약을 


하다보니 파도가 높은 날이나 관광객이 많은 날이면 놓치기 십상이다.


이번에도 평일이라 큰걱정없이 12시 50 분 차를 예약했는데 배가 12시 30분에 여수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데다 


잡은 택시가 승차를 거부하는 바람에 실강이를 하느라 가까스로 터미날에 도착하고보니 출발 3분전이었다.


미리 배안에서 용변을 해결했기망정이지  중간 휴게실까지 방광을 움켜쥐고 식은땀 꽤나 흘릴뻔 했다.


그래도 터미널에서 한시간 기다려야 했다면 서울에 6시가 다되어 도착해야하니 러시아워에 딱 걸려 길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을 것이다.


막힘없이 서울에 도착하니  사랑스런 딸내미가 마중을 나와주어 얼마나 기특하고 든든한지 모르겠다.


1월 30일이 스물 일곱 녀석 생일인데  내가 딱 저나이때 저를 낳았으니 결코 적지않은 나이가 된 딸내미를 보니 세월이 


무상함을 절로 느끼게 된다.  


어느새 자라 이제 늙어가는 에미의 손을 붙잡아주니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작년 겨울 끝무렵에 겨우 채취한 미역 몇오랭이에도 감격했던 엄마에게 이번에는 부드럽고 맛있는 첫물 미역을 정성껏 


말려 가져왔으니 먼저 도봉산 산자락에 사시는 엄마에게 가기로 했다.


 


말린 뽈락과 소라, 귀한 홍삼에 홍합살까지 바라바리한 보따리를 본 엄마는 입이 귀에 걸려 어쩔줄을 모르신다.


늙어가는 첫딸이 어느날 갑자기 섬에 간다고하니 서운한 마음에 몇날 며칠을 우셨다고 한다.


늦게까지 사회생활을 한 딸을 대신하여 막내아들도 키워주고 살림까지 도맡으셨던 분이었으니 섭섭함이야 오죽했을까.


만나자마자 외국사람들처럼 힘껏 껴안아 주시니 그동안의 그리움이 얼마나 크셨는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랜만에 엄마표 밥상을 받고보니 서울에 왔음이 실감이 난다.


'그저 아프지마라 건강이제일이다. 돈많다고 자랑하던 이웃형님네 딸들이 하나는 암으로 죽고 다른 딸도 암이란다.'


팔순을 바라보시는 노모의 눈에 나는 여전히 어린 딸이고 물가에 내어놓은 걱정거리 자식인 셈이다.


물가 맞지. 섬에 내려갔으니.


이런 노모에게 몸이 아파 병원 다니러 왔다는 소리는 꺼내 놓을 수가 없다.


그저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먼저 앞섰던 남동생처럼 당신 가슴에 못박지말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효도가 될것이다.


내손에 들린 보따리보다 건강한 내모습이 더 큰 선물일텐데 시원치 못한 몸으로 왔으니 이미 큰 불효인 셈이고


혼자욕심에 먼 섬으로 떠나 자주 보여드리지 못하고 태풍소식이면 잠못들어 하시니  불효를 넘어 큰죄를 지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어떤 자식들은 불편하신 부모를 모시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돌봐드리기도 하건만 멀리 도망간 나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건강한 척 웃는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죄송한 맘을 숨기는 못난 자식이 되고 만다.


오랜만의 서울나들이의 첫날은 이렇게 그립고 아쉬운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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