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살아볼까]동물이랑 친해지기-고양이
생전 부뚜막 구들장에 불을 때본적이 없던 내가 저녁 해가 으스름 해질 무렵이면 장작을 들고
아랫방 부뚜막을 향한다. 어제밤부터 내리던 비는 새벽이 되어서야 그쳤지만 바람을 몰고와서
문을 여는 순간 맹렬히 옷속을 파고든다. 남녘이라 윗녘보다 따뜻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한 겨울에도 내복을 멀리했던 내가 끼어입기의 달인이 되었다.
부뚜막에 물을 지피려고 보니 어젯밤비에 나무가 젖었는지 연기만 나고 불이 일어나질 않는다.
아직 부뚜막근처의 공사가 덜 끝나 바람막이가 없는터라 사방에서 몰려오는 바람에 손을 들고
잠시 방으로 피해들어오고 말았다.
근처의 고양이 녀석들도 추운지 불을 땔 무렵이면 부뚜막 근처로 어슬렁 거리기 시작한다.
몇 년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고양이를 대대적으로 소탕을 했다는데 고양이란 녀석들이
어찌나 금슬이 좋은지 내가 온 이후로도 계속 번식중이라 곳곳에서 이 녀석들의 영역표시 소리에
귀가 시끄러울 지경이다.

이 녀석들이 그냥 마구 돌아다니는 것 같아도 나름 자기 구역이 있다고 한다.
아랫집 언니네는 낚시꾼들이 많이 들어와서 생선 다듬는 일이 잦다. 그래서인지 이 집 근처에는
고양이들중에 제법 힘좀 쓰는 녀석이 제 집 마냥 터를 잡고 산다. 허나 생선냄새에 정신이 취해
어쩌다 낯선 고양이라도 들라치면 여지없이 꼬리를 세우고 눈을 치켜뜬 터주 고양이에게 공격을
당하고 만다. 그 소리가 어찌나 처절하고 끔찍한지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기도 한다.
섬이다 보니 생선이 흔하고 흔한 생선은 말려야 보관이 용이한데 이녀석들 등쌀에 생선말리기가
쉽지 않다. 빨랫대보다 더 높이 기둥을 세우고 밧줄을 걸어 널대를 올려야 겨우 녀석들에게 생선을
빼앗기지 않는다. 아쉬운 대로 빨랫줄에 널기도 하지만 가끔은 늘어진 꼬리부분을 빼앗길 때도 있다.
어쨋든 그 녀석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날렵한 몸매에 점프력이 좋은 녀석들에게 생선을
보호하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라 나도 고도에 있는 민박집 옥상을 빌어 생선을 말린 적이 있었다.

낮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녀석들이 밤에는 활동을 많이 하는 모양인지 밤에 이곳 저곳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배가 고파 우는건지 추워서 우는건지 기가 막힌 짝을 만나 하룻밤 정을 나누는
소리인지 애매하지만 바람소리에 실린 '야옹 야옹'소리가 심란할 적이 많다.
야생으로 버려진 고양이들의 번식력이 어찌나 놀라운지 우리 집에 자주 오던 고양이가 어느 날
배가 불룩한 것 같았다.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어디선가 몸을 풀었던 모양이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무 조각을 모아들고 가시길래 물어보니 새끼 고양이가 들어와서 집을 만들어
주시려고 주워가시는 중이란다.
혼자 사시다 보니 어린 고양이가 귀엽고 더욱 안쓰럽게 느껴지셨던 모양이다.
바람 불고 추워지면 온 동네에 사람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비싼 기름을 아끼느라 전기장판에 웅크리고 있었던 노인네들은 아침이면 따뜻한 경로당에 모여앉아
노시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집에 들어 서다가 귀여운 새끼 고양이라도 맞아주면 덜 외롭지 않겠나 싶어
다행이다 싶다가도 동물과 친하지 않은 나는 혹시라도 새끼 고양이가 동글 동글한 눈망울을
들이대며 '나 좀 거두어서 살아줄래요?'하고 들어 닥칠까봐 경계 태세중이다.
일단 난 살아있는 동물들이 모두 무섭다. 그 녀석들은 내가 더 무섭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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