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투구행(鬪狗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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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개에게 뼈다귀 던져 주었나.
群狗鬪方狠(군구투방한)
개떼 지어 사납게 싸우네.
小者必死大者傷(소자필사대자상)
작은 놈은 죽고 큰 놈은 다치니
有盜窺窬欲乘釁(유도규유욕승흔)
도둑놈이 작은 문으로 엿보고 그 틈을 노리네.
主人抱膝中夜泣(주인포슬중야읍)
주인은 무릎 껴안고 한밤에 흐느끼나니
天雨墻壞百憂集(천우장괴백우집)
비 내려 담장 무너지며 온갖 근심 모이네.
『석주집(石洲集)』권 2에 보이는 대목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세자루 쥔 이들 곁에는 늘 비인소배(非人少輩)들이 알랑방귀를 뀌며 나부대는가 보다. 이를 보다 못한 권필(權韠, 1569-1618)이 위와 같이 입찬말로 읊어대고 있다. 뼈다귀를 던져주어 개싸움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뼈다귀라는 이문이 남고 영양가 있는 물건을 던져주면 죽자 살자 싸우는 게 개나 사람이나 매일반인가 보다. 힘없는 놈은 자빠져 깨지고 잘못하면 죽어나가기 십상이고 같이 싸우던 힘 있는 놈도 상처입기는 마찬가지다. 기는 몸 위에 나는 놈 있다고, 그 틈을 보아 어디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어떤 놈이 달려들어 뼈다귀를 통째로 가져간다. 개를 잃은 주인은 슬퍼하고 거기에 더하여 때마침 비가 내려 허물어져가던 담장마저 무너지니 집안에 도둑놈의 발을 들여놓기에 안성맞춤이다. 지금이나 예나 이런 일이 횡행하는 것은 왜 일까? 그놈의 게염(욕심)에 게걸스러운 혀를 날름대는 인간들 때문이다. 남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눈이 뒤집히는 형국이니 꼭 개싸움을 보는, 아니 개싸움보다 더한 추한 몰골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부판(蝜蝂)이라는 놈이 있다. 이놈은 쇠똥구리라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등짐을 잘 지는 놈인데 다니다가 무엇을 보면 양 날개 껍데기로 긁어모은 다음 머리 숙여 굴려서 등에 진다. 등이 점차 무거워 쩔쩔매더라도 그치는 일이 없다. 등은 아주 까칠까칠해서 등에 진 물건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끝내 엎어지고 뒤집어져 일어나지 못하면 사람들이 가엾이 여겨 등짐을 내려주면 곧 길을 가면서 예전처럼 다시 등짐을 진다. 높은 곳에 오르기를 좋아해 힘이 부쳐도 그만두지 않아 급기야 땅에 떨어져 죽는다. 지금 세상에는 재물을 긁어모으기를 좋아해 재물이 눈앞에 보이면 이를 피하지 않고 집안 살림을 더욱 불리려고 한다. 자신에게 해가 됨을 모르고 재물을 모으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일에 게으르게 굴다가 순조롭지 못하면 파면되거나 쫓겨나니 이게 고통이 아닌가. 날마다 직위를 높이고 봉록이 오를 것을 생각하고 욕심이 더욱 심해져 거의 추락할 지경에 이른다. 예전에 죽은 것을 보면서도 경계할 줄 모른다. 비록 허우대가 큼지막하여 사람이라고 불리지만 지혜는 작은 곤충의 지혜와 같다. 어찌 슬퍼하지 않을 것인가! 당나라 때 유종원(柳宗元, 773~819)이 지은 「부판전(蝜蝂傳)」에 보이는 대목이다.
쇠똥구리는 눈앞에 보이는 쇠똥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이놈은 아예 태산(泰山)이라도 짊어질 기세다. 무거운 짐을 지고 끙끙거리다 엎어지고 뒤집어진다. 사람들이 그의 등짐을 덜어내자 예전처럼 다시 등짐을 진다. 이런 미련한 벌레가 있나 싶다. 사람을 쇠똥구리에 비유한 허구(虛構)의 창작물이나 우리에게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공자가 참새 잡는 이가 잡은 참새를 보니 모두 어린 새끼 참새만 다래끼에 들어있었다. 공자가 묻기를 “어찌 어미 참새는 잡지 못하였는가?”하니 참새 잡는 이가 말하기를 “어미 참새는 잘 놀라 날아가기에 잡기가 어렵지요. 하지만 새끼 참새는 먹이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잡기가 쉽지요. 어미 참새를 따라다니는 새끼 참새는 잡기 어렵고 또 새끼 참새를 따라다니는 어미 참새 또한 잡기 어려운 것이오.” 공자가 제자들을 돌아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잘 놀라 달아나는 게 해로움을 멀리할 수 있고, 모이를 쪼아 먹는데 골몰하면 동티(재앙)가 다가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어떤 것을 따르느냐에 화와 복이 갈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가 따르는 바를 삼가는 것이니 지혜 있는 이의 생각을 따르면 몸을 온전히 보존하지만 빙충맞은(똘똘하지 못하고 어리석고 미련하다) 소인의 지혜를 따르면 위험을 당하여 죽거나 해를 당하기 마련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육본(六本)」에 보이는 대목이다.
필자는 위의 예를 모조리 번역 풀이를 하면서 개싸움에 정신이 팔려 집을 지키는 본분을 잊은 개나 이를 틈타 도둑질을 하려는 도둑놈을 작금의 상황을 보며 쓴웃음이 난다. 욕심으로 무거운 등짐을 져 나르는 쇠똥구리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과 흡사함을 보았으며, 큰 도둑은 잡히지 않고 송사리와 같은 좀도둑만 잡히는 이 누리의 자화상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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