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부심(丈夫心)을 지닌 벼루







 

필자는 붓을 들어 붓질을 할 때 쓰는 서진(書鎭), 또는 문진을 지니고 있다. 십장생이 돋을새김으로 되어 있다. 서진의 빛깔은 아주 그윽한 자색(紫色)이다. 팥죽 색깔과 같이 은은하고도 짙은 질감으로 눈이 호사를 한다. 약 15년 전에 선물 받은 자색 벼루와 한 질로 되어 있다. 늘 아끼며 쓰고 있다. 서진이란 책장이나 종이쪽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누르는 물건. 곧 문진(文鎭)이라고도 한다. 

소소리바람(회오리바람) 이는 늦가을 밤이나 겨울밤에 화선지 위를 누르는 품이 자못 겅중 뜨지 않아 미쁘다. 들떠있는 마음을 지긋이 눌러주고 삭풍이 문 사래에 걸려 넘어져 문 틈새로 허겁지겁 들어오는 기운을 장(늘) 잡아주니 그 너름새야말로 짜장(정말) 으뜸이다.

걸싸게 놀리는 붓질에도 덩그마니 장중한 틀거지를 지키고 있으니 아흐, 장부심(丈夫心)이고녀! 늘 떠나되 머무르고 늘 머무르되 떠나는 게 삶이 아니던가. 진중한 서진의 품새는 이끗에 휘둘리지 않는 장부심이 아니던가! 어느 가을 무서리 내리던 날 어린 외손자는 외조부를 그리며 붓질을 하였다. 글씨와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으셨던 외조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었으리라! 그때가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으니 필자가 『천자문』을 보며 임서(臨書)를 하던 때였다. 임서라기보다는 개칠(改漆)을 하였던 모양이다. 보리곱살미(꽁보리밥)를 먹던 고향의 서산으로 해가 너울너울 넘어가는 때였지. 겨울밤 건너편 산마루를 타고 흘러내리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어린 가슴에 물너울처럼 파고들었던 것이다. 시방 생각해도 달빛 괴괴한 우금을 타고 흘러내리는 부엉이 소리는 수수깡과 잡살뱅이 나뭇가지로 엮은 외얽이에 스며드는 그 무엇이었나 보네. 문 사래에 걸린 서낙한(무성하다) 달빛에 격자무늬 창살의 그림자가 방안에 그득히 쏟아지고 있었지. 상기도 붓질을 하지만 붓끝이 여전히 버럭버럭 뼛성을 부리며 언죽번죽(뻔뻔스러운) 마뜩찮은 얼굴이다. 시방도 시르죽은 몰골의 글씨를 괴발개발 그려대니 이런 낭패가 있단 말인가! 

집안에 벼루 두 점이 고요히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검은 빛깔의 벼루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 빛깔의 자석(紫石) 벼루인데, 그중 자석벼루는 문양이 미르(龍)로 돋을새김이 되어 있다. 필자는 문방사우(文房四友) 가운데 벼루를 으뜸으로 여긴다. 덩그마니 작은 옷장 위에 걸쳐있는 것만 보아도 장중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송나라 때 당경(唐庚, 1071~1121)은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後集) 권 10의 「가장고연명(家藏古硯銘)」에서 벼루와 붓 그리고 먹에 대하여 각각의 장단점을 그려내고 있다. 붓은 움직임이 제일 많으며 끝이 뾰족하여 날로 헤아려 수명이 제일 짧고, 먹은 움직임이 그 다음이며 그 수명은 달로 헤아린다고 하였다. 벼루는 움직이지 아니하고 고요하며 그 수명은 여러 세대를 지나며 노둔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필자가 지닌 붓은 큰 붓, 작은 붓, 아주 가는 붓을 비롯하여 한 10여 자루는 된다. 대부분 뾰족하던 것이 이제는 뭉툭한 몸체를 보여주고 있다. 먹은 지난 십 수 년 간 몇 개를 썼는지 모르며, 지금도 먹이 거의 다 닳아 조만간 사야 한다.

벼루 두 점은 모두 남에게서 선물 받은 것이다. 육중한 몸체에서 나오는 중후함과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는 정중동(靜中動)의 틀거지(위엄)를 갖춘 점이 부럽고도 시샘이 난다. 아니 시샘보다는 고임(총애-寵愛)을 더하고자 하는 마음이 인다. 벼루 하나의 뚜껑에는 미르 무늬가 돋을새김 되어있고, 다른 하나의 벼루에는 십장생(十長生)을 치레하여 그 무늬가 매우 아름다우니 문방사우 가운데 제일 미인인 셈이다. 둔함으로 몸을 삼고 고요함으로 쓰임새를 삼으니 붓과 먹 그리고 화선지보다는 그 격조가 더욱 높아 보인다. 붓과 먹이 와서 그 깊지 않은 연못에 물결을 일으키고 휘저어대도 그 몸체를 고요히 하니 벼루는 가히 그 둔중함이 산과 같다고 할 것이다. 붓의 현란한 몸짓과 먹(墨)이 내는 생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어도 게정(불평을 품고 떠드는 말)과 삿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세파에 흔들리고 찌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노둔함으로 그 몸체와 마음을 오롯이 하는 덕을 지녔다. 

「가장고연명(家藏古硯銘)」에서 벼루는 그 수명이 오래감을 이렇게 적고 있다. 

不能銳(불능예)
예리하지 못하여
因以鈍爲體(인이둔위체)
무딘 것으로 몸통을 삼고,
不能動(불능동)
움직일 수 없는지라
因以靜爲用(인이정위용)
고요함으로 쓰임을 삼는다.
惟其然(유기연)
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是以能永年(시이능영년)
수명을 길게 할 수 있다.

벼루와 서진은 이같이 장중함과 노둔함이 있으니 바라만 보아도 그 틀거지를 알 수 있다. 무디고 고요하며 날래고 약삭빠르지 않으니 수명을 오랫동안 지니는 양생(養生)의 법도 익힐 수 있지 않은가. 한마디로 벼루는 인자요산(仁者樂山)으로 풀이될 수 있다. 어진 이의 마음을 지녔고 뫼와 같은 부동본(不動本)이 서려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장중함과 중후함에서 장부심(丈夫心)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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