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고래클래식 8권. 조지 맥도널드의 시를 그림책으로 엮었다. 밤이면 높이 떠올라 하늘을 밝히는 달을 시샘하는 바람의 이야기이다. 바람은 늘 자신을 지켜보는 달이 못마땅했다. 꼭 감시를 당하는 것 같았다.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했다. \"너를 날려 버릴 거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있는 힘껏 불어도 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정말 달이 모습을 감춘다. 바람은 신이 나서 자신이 달을 사라지게 했다고 떠들어 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달이 나타났다. 전보다 더욱더 환한 빛으로 세상을 비추었지요. 바람이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이지숙 작가는 맥도널드의 \'시\'를 읽으면서 어떻게 그림책을 떠올렸을까? 아마도 환환 달을 보며 큰소리 치고, 툴툴대는 바람의 마음을 읽어 냈을 것이다. 이지숙 작가는 먼저 원작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글을 다듬었다. 그리고 전작 <노인과 바다>와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시의 운율을 표현했다.
현악기 연주 장면으로 바람의 모습과 소리를 그림 안으로 데려왔다. 여러 번 겹쳐 작업해야만 하는 석판화 기법으로 바람의 미묘한 마음의 변화, 성을 내며 몰아치는 장면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전한다. 마치 그림이 움직이는 듯 역동성이 느껴진다. 단지 글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넓고 깊게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목차 없음
자신만만한 바람, 달에게 맞서다
때로는 별것 아닌 말,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건넨 말이 오히려 상처를 주기도 하고, 기분을 풀어 주려고 한 장난에 상대가 불쾌해질 수도 있어요. 같은 의미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때가 있습니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니까요.
《바람과 달》 속 바람도 달에 대해서 단단히 오해를 했던 모양이에요. 늘 하늘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감시하고 있다고 투덜거리거든요. 급기야는 “후우- 불어서 너를 날려 버릴 거야.”라고 하지요. 바람이 소리치는데도 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했어요.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어요. 그러자 샘이 난 바람이 더욱더 세게 불었어요. 바람의 소원이 이루어진 걸까요? 바람이 불고 또 불자 달은 점점 가늘어졌어요. 우쭐해진 바람이 말했지요. “내 입김 한 번이면, 저 빛도 사그라뜨릴 수 있어.”라고요.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자, 달빛은 서서히 흩어졌습니다. 이윽고 정말 달이 하늘에서 사라졌어요. 수줍은 별빛만 반짝이고 있었지요. 그때였어요. 저 멀리서 작은 빛이 깜빡이기 시작했어요. 바로 달빛이었어요! 바람은 분에 못 이겨 마구 날뛰었어요. 펄쩍펄쩍 뛰며 마을을 돌아다녔어요. 전보다 더 세게 불어댔지만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답니다. 달은 점점 여물어 갔고, 빛은 더욱더 환해졌어요. 마침내 달이 밤을 밝히며 천천히 차올랐어요. 하늘 위에서 홀로 환히 빛났지요. 그때도 바람은 허세를 부리며 말하지요. “내 힘으로 달을 하늘 밖으로 날려 보냈어. 그리고 다시 돌아오게 한 거야.”라고요. 하지만 달은 바람의 말을 듣지 못했어요. 바람이 아무리 요란하게 불어도 전혀 들리지 않았거든요. 그저 까마득히 높은 하늘 위에서, 아름다운 빛을 비출 뿐이었지요.
하늘을 비추는 달빛처럼
세상을 지지하는 불변의 가치
원작자인 조지 맥도널드는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입니다. 1853년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처음에는 시와 소설을 썼어요.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동화와 아동소설을 쓰게 되었지요. 풍부한 상상력으로 빚어 낸 조지 맥도널드의 작품들은 루이스 캐럴이나 C. S. 루이스, J. R. R. 톨킨 등 다른 많은 판타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어요.
《바람과 달》에서 달은 바람의 위협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바람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빛나는 고귀한 존재로 그려지지요.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달빛처럼 불변하는 가치들이 있습니다. ‘사랑, 우정, 믿음’처럼 말이에요.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어도 여전히 이러한 가치는 세상을 지지하는 힘이지요. 다만 복잡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제 빛을 잃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쫓아야 할 것도, 얻어야 할 것도 많아졌으니까요. 하지만 달이 잠시 모습을 감추었던 것처럼, 그 가치들이 가진 의미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날이 흐리다고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 게 아닌 것처럼요.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 교훈을 전합니다. 《바람과 달》 속 ‘바람’과 ‘달’도 늘 같은 의미로 읽히지는 않을 거예요. 내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생각이 나아가는 방향도 달라집니다. 명작과 고전을 두고두고 읽어야 하는 까닭이지요. 책고래클래식 여덟 번째 이야기 《바람과 달》이 우리에게 그렇게 또 다른 고전으로 자리하길 소망해 봅니다.
◎광주광역시립도서관 권장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