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어 단어는 어원까지 외워가며 공부하는데, 우리말 어원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걸까? 그래서 평생을 우리말 어원 연구에 바쳐온 국어학자 조항범 교수가 대중 독자를 위해 작심하고 이 책을 썼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어휘들은 어떻게 생겨 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말들은 지난 수십, 수백 년 동안 어떻게 변해왔을까? 우리 ‘말’들의 탄생과 소멸, 그 다채로운 히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엮어낸 책.
이 책은 우리 말글살이를 10개의 범주로 나눠, 200개의 낱말을 가려 뽑아 엮었다. 각 낱말의 어원뿐 아니라, 그와 유사한 친족 낱말의 어원까지 이해를 확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시대상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근거 없는 어원설을 바로잡는 데도 공을 들였다.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우리말 어원의 그 신비롭고 무한한 세계로 들어가 보자.
목차없음.
1958년 청주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2023년까지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같은 대학교 명예교수다.
주요 저서로 《국어의미론》(1993), 《국어 친족어휘의 통시적 연구》(1996), 《주해 순천김씨묘출토간찰》(1998), 《예문으로 익히는 우리말 어휘》(2003), 《좋은 글, 좋은 말을 위한 우리말 활용 사전》(2005), 《지명어원사전》(2005), 《국어 어원론》(2009),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2009), 《말이 인격이다》(2009), 《우리말 어원 이야기》(2016), 《우리말 ‘비어’, ‘속어’, ‘욕설’의 어원 연구》(2019), 《말과 글의 달인이 되는 법: 우리말 어원 사전》(2022) 등이 있다.
“영어 단어는 어원까지 외워가며 공부하는데…” 국어학자 조항범 교수가 작심하고 쓴 우리말 어원 이야기 ‘근본 없는’ 낱말은 없다!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말’들의 히스토리 왜 영어 단어는 어원까지 외워가며 공부하는데, 우리말 어원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걸까? 그래서 평생을 우리말 어원 연구에 바쳐온 국어학자 조항범 교수가 대중 독자를 위해 작심하고 이 책을 썼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어휘들은 어떻게 생겨 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말들은 지난 수십, 수백 년 동안 어떻게 변해왔을까? 우리 ‘말’들의 탄생과 소멸, 그 다채로운 히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엮어낸 책. 이 책은 우리 말글살이를 10개의 범주로 나눠, 200개의 낱말을 가려 뽑아 엮었다. 각 낱말의 어원뿐 아니라, 그와 유사한 친족 낱말의 어원까지 이해를 확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시대상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근거 없는 어원설을 바로잡는 데도 공을 들였다.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우리말 어원의 그 신비롭고 무한한 세계로 들어가 보자. 아주 색다른 우리말 공부! 에세이처럼 읽고, 사전처럼 활용하는 200가지 어원 이야기 ‘말’이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이 탄생과 소멸, 변천의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시대상이 자연스럽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가족 호칭 중 ‘누나’라는 말은 19세기 이후 문헌에나 나타나는 새 낱말인데, 초기에는 지금과 달리 손위는 물론이고 손아래 누이(여동생)도 모두 ‘누나’라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호칭법은 20세기 초까지도 이어졌으나 현재는 적용 범위가 축소된 것인데, 손아랫사람에 대한 예법이 퇴색하면서 ‘누나’라는 말에도 의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또한 ‘동생’과 ‘아우’도 원래는 서로 다른 개념이었는데, ‘동생’(同生)은 16세기에는 한자 뜻 그대로 ‘함께 태어난’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동생아우’라 하면 ‘한배에서 태어난 아우’ 곧 ‘친아우’를 가리켰고, ‘동생형’이라 하면 ‘한배에서 태어난 형’ 곧 ‘친형’을 가리켰다. 이 외에도 몇 가지 흥미로운 대목들을 소개한다. ★ 사람 형상의 신, ‘등신’은 어리석지 않다 ‘等(등)’이 ‘같다’의 뜻이므로 ‘等神(등신)’은 ‘신과 같음’의 뜻을 함축한다. 실제 ‘등신’은 사람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놓은 신상(神像)을 가리킨다. 이를 ‘등상(等像)’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등신’은 처음에는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귀신’과 비슷한 뜻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광목이 처음 나타났을 때, 너무 넓어서 어머니가 「이건 사람이 못 짜. 등신이 짜지」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문익환, 《죽음을 살자》, 1986)에서 보듯 실제 그와 같은 의미로 쓰인 ‘등신’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 “이건 사람이 못 짜. 등신이 짜지”는 문익환 목사의 모친인 김신묵(1895~1990) 여사의 육성 진술인데, 그렇다면 적어도 이분의 고향인 함경북도에서는 20세기의 얼마간까지도 ‘등신’이 긍정적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김신묵 여사의 육성에 섞여 있는 ‘등신’은 그 어원을 밝혀줄 수 있는 아주 진귀한 예다. 그런데 현재 ‘등신’은 본래의 긍정적 의미를 잃고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부정적 의미로만 쓰인다. 그 사이에 심각한 의미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 아마도 ‘등신’이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들어진, 실체가 없는 사람의 형상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이해된다. 실체가 없는 우상(偶像)에는 감정이나 생각, 의지, 능력이 없다. 이는 사람으로 치면 ‘어리석은 사람’에 해당한다. “당신이 그것을 모른다고 하면 그야말로 등신이지요”(민태원, 《무쇠탈》, 1923)에 쓰인 ‘등신’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등신’은 “등신 같은 놈!”에서 보듯 욕을 만드는 데도 이용된다. 또한 “야, 이 등신아!”에서 보듯 직접 욕으로도 쓰인다. ‘비어(卑語)’가 ‘욕설’로 바뀐 예다. (본문 58쪽: 등신) ★ 깡통, ‘캔(can)’이 ‘깡’이 된 연유 ‘깡통’은 외국에서 들어온 물품이다. 깡통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일보》 1926년 7월 14일 자의 “트레머리만 하여도 신녀성이오 깡통치마만 입어도 신녀성이라”에 나오는 ‘깡통치마(개화기에 입던, 깡통 모양의 일자형 한복 통치마)’를 참고하면, 이것이 적어도 1920년대에는 국내에 들어와 있었고, 또 같은 시기에 ‘깡통’이라는 말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깡통’이라는 말이 광복 이후 쓰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1926년의 ‘깡통치마’로써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난다. (…) ‘깡통’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빈 양철통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인 ‘깡’과 한자어 ‘통(桶, 물 같은 것을 담는 나무 그릇)’이 결합된 어형으로 보는 것이다. (…) 둘째는 영어 ‘캔(can)’에서 변한 ‘깡’과 한자어 ‘통(筒, 둥글고 긴 동강으로서 속이 빈 물건)’이 결합된 어형으로 보는 것이다. (…) 셋째는 영어 ‘캔(can)’에 대한 일본어 ‘간(かん)’을 국어가 ‘깡’으로 받아들인 뒤 그것과 ‘통(筒)’을 결합한 어형으로 보는 것이다. (본문 142쪽: 깡통) ★ 헹가래, 축하할 때도 벌 줄 때도 헤엄치듯 가래질 ‘헹가래’를 치는 모습은 운동 경기장에서 흔히 목격된다. 우승을 축하하는 표시로 선수들이 감독이나 후원자를 번쩍 들어 위로 던져 올렸다 받았다 하기를 반복한다. 이는 전형적인 서구식 헹가래 방식이다. 우리의 전통적 헹가래는 이와 달랐다.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잘못이 있을 때 벌을 주기 위해서도 헹가래를 쳤는데, 위로 던져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아니라 네 활개를 번쩍 들어 앞뒤로 내밀었다 들이켰다 했다. 헹가래를 치는 의도나 방식이 서구식 헹가래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 ‘헹가래’는 근대국어 ‘헤염가래’가 ‘헴가래’를 거쳐 나온 어형이다. ‘헤염가래’의 ‘헤염’은 지금의 ‘헤엄’이며, ‘가래’는 지금의 ‘가래(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기구)’다. ‘헹가래’를 지시하는 단어를 만드는 데 ‘가래’를 이용한 것은 앞뒤로 내밀었다 들이켰다 하는 ‘헹가래’ 행위가 밀었다 들였다를 반복하는 ‘가래질’ 동작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염(헤엄)’을 이용한 것은 네 활개를 잡힌 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행위가 손발을 이용하여 물속을 헤집는 행위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본문 180쪽: 헹가래) ★ 외로운 섬이 아니라, 돌로 된 섬 ‘독도’ 개개의 사람마다 이름이 있듯, 각각의 땅에도 이름이 있다. 이것이 바로 ‘땅이름(지명)’이다. 그리고 사람의 이름을 짓는 데 어떤 원칙이 있듯, 땅의 이름을 짓는 데도 어떤 근거가 있다. 그 근거를 찾으면 특정 지명의 유래는 쉽게 드러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오리무중이 된다. 그럼 울릉도 동남쪽에 위치한 ‘독도’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섬이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기에 ‘홀로 獨(독)’ 자를 써서 ‘獨島(독도)’라 명명(命名)한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으나, 외롭게 떠 있다는 점이 명명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지명은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시적(詩的)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울릉도 현지 주민들은 ‘독섬, 돌섬’이라는 고유어 이름에 익숙하다. ‘독섬’의 ‘독’은 ‘石(석)’의 뜻이어서 ‘독섬’은 ‘돌섬’과 같이 ‘돌로 된 섬’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전남과 경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돌’을 ‘독’이라 하고, ‘돌로 된 섬’을 ‘독섬’이라 부른다. 일설에 조선조 말 울릉도로 이주한 호남 사람들이 울릉도와 인접한 돌로 된 이 섬을 자기 지역 말로 ‘독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獨島(독도)’는 ‘독섬’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차적 지명이다. ‘독’이 ‘石(석)’을 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음이 같은 한자 ‘獨(독)’을 대응하여 ‘獨島(독도)’라 한 것이다. ‘獨島’는 1904년 문헌에 처음 보인다. 한편 ‘독’에 대한 어원 정보를 유지한 상태에서 ‘독섬’을 한자화하면 ‘石島(석도)’가 된다. ‘石島’는 대한제국 〈관보(官 報)〉(1900)에 실려 있어 그 권위가 느껴진다. 고유어 지명 ‘독섬’이 ‘石島(석도)’를 거쳐 ‘獨島(독도)’로 한자화하는 과정은 고유어 지명 ‘한여울(큰 여울)’이 ‘大灘(대탄)’을 거쳐 ‘漢灘(한탄)’으로 한자화하는 과정과 일치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로 보면 적어도 2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는 섬의 이름으로 ‘독섬, 석도(石島), 독도(獨島)’가 함께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독도(獨島)’가 세력을 잡아 공식 명칭이 된 것이다. (본문 194쪽: 독도) ★ 말미잘, 말[馬]의 항문(미주알)을 닮은 생물 ‘말미잘’의 외양은 어떠한가? 몸은 원통이고, 몸 끝에 왕관 모양의 화려한 촉수가 뻗어 있으며, 입과 항문이 하나로 되어 있다. 곧 몸의 구조가 단순하고 원시적이어서 몹시 흉측한 모습이다. 그래서 붕장어를 잡으려고 바다에 던져둔 주낙에 걸려 올라오면 재수 없다고 걸리는 족족 버렸다. (…) ‘말미잘’이라는 말은 1950년대 이후 문헌에서야 발견되나 일찍부터 쓰였을 것이다. 사전으로는 《국어대사전》(1961)에 처음 올라 있다. ‘말미잘’은 ‘말미주알’에서 줄어든 어형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미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을 가리킨다. 이를 ‘밑살’이라고도 하는데, 그저 ‘항문’으로 이해하면 된다. ‘미주알고주알’의 ‘미주알’도 그와 같은 것이다. ‘말미주알’의 ‘말’은 동물 ‘말(馬)’을 가리킨다. (…) 그렇다면 ‘말미주알’은 ‘말의 항문’으로 해석되며, ‘말미주알’에서 줄어든 ‘말미잘’ 또한 그러하다. ‘말미잘’의 구반(口盤) 가운데 있는 입(또는 항문)이 마치 ‘말의 항문’과 같은 모습이어서 ‘말’과 ‘미주알’을 이용하여 그 명칭을 만든 것이다. 방언형 ‘말똥구녁(전남), 말똥구먹(전남)’은 이러한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사물을 얼마나 예리하게 관찰했으면 바다에 사는 자포동물(刺胞動物)의 명칭을 ‘말의 항문’을 끌어들여 만들었을까 감탄할 뿐이다. (본문 272쪽: 말미잘) ★ 염병할,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혐오 ‘염병’은 한자어 ‘染病’이다. ‘染病(염병)’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전염성이 있는 병’이다. 곧 ‘돌림병, 전염병’과 같은 말이다. 요즘 창궐하는 코로나19는 현대판 염병이라 할 만하다. 염병은 특별히 장티푸스를 가리키기도 한다. 예전에 가장 흔하고 무서운 돌림병이 장티푸스였기 때문에 ‘돌림병’을 지시하는 ‘염병’이 그러한 특수한 의미를 덤으로 얻은 것이다. 장티푸스를 앓는 사람을 낮잡아 ‘염병쟁이’라고 한다. 장티푸스는 티푸스균이 창자에 들어가 일으키는 급성 감염병이다. 치료약이 없던 시절에는 이 병에 한번 걸리면 고열과 설사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었다. 그리고 이 병은 전염성이 강하여 삽시간에 주변 사람들에게 옮겨가 마을 전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러므로 이 병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 혐오감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간다. ‘몹시 심하게 쓰는 떼’를 ‘염병떼’라 하는데, 이로써도 ‘염병’이 얼마나 무섭고 치명적인 병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병에 대한 혐오감이 ‘염병’을 이용한 ‘염병할 놈’, ‘염병에 땀을 못 낼 놈’, ‘염병할’ 등과 같은 심한 욕까지 만들어냈다. (…) ‘염병할’은 좀 특별하다. 특정 상대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욕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아 매우 못마땅한 상황을 한탄하는 넋두리 같은 욕이기 때문이다. “염병할, 왜 이렇게 무거워!”에서 ‘염병할’의 욕으로서의 기능이 잘 드러난다. ‘염병할’은 ‘염병할 놈’에서 후행하는 ‘놈’이 생략되어 만들어진 욕이다. ‘오라질 놈’, ‘오사랄 놈’, ‘육시랄 놈’, ‘떡을 할 놈’에서 후행 요소 ‘놈’이 생략되어 ‘오라질’, ‘오사랄’, ‘육시랄’, ‘떡을할’이라는 욕이 만들어지듯, ‘염병할 놈’에서 ‘놈’이 생략되어 ‘염병할’이라는 욕이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여기서 대단히 흥미로운 점은 특정 상대를 저주하는 욕에서 후행 요소 ‘놈’이 생략되면 특정 상황을 한탄하는 욕으로 기능이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말 욕의 생성도 규칙적이라 할 만하다. 이런 규칙을 찾아내는 것도 우리말을 공부하는 작은 즐거움이 아닌가 한다. (본문 374쪽: 염병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