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진 전문 포토그래퍼 차경이 이야기하는 ‘본다는 것’의 의미. 어릴 적 우연한 사고로 눈에 이상이 생기며 사시를 진단받은 작가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왼쪽 눈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접어든 사진작가의 길 위에서 더욱 피사체의 본질에 가까이 가닿으려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촬영 작업에 몰두해왔다. 2014년부터 약 10년간 ‘영정사진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오늘 하루의 얼굴이 내가 남기길 바라는 삶의 마지막 얼굴을 만든다는 것, 그렇기에 삶과 죽음은 결코 분리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삶에서 맞닥뜨린 우연한 좌절과 성장에 관해 담담히 이야기하는 작가 차경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해준다.
Prologue | 지금 나를 보고 있나요
Part 1 | 나는 외눈의 포토그래퍼입니다
Part 2 | 죽음을 곁에 두고 삶을 보자고 말해도 될까요
Part 3 | 나로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Epilogue | 볼 수 있는 동안에
인물사진 전문 포토그래퍼. 어릴 적 우연한 사고로 인해 왼쪽 눈에 이상이 생기며 사시를 진단받았다. 시력이 거의 없는 한쪽 눈으로 보는 세상은 여전히 수직 수평도 맞지 않고 온통 뿌옇기만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피사체의 본질과 마음을 보고 느끼기 위한 촬영 작업에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다. 2014년부터 약 10년간 영정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오늘 하루의 얼굴이 내가 남기길 바라는 삶의 마지막 얼굴을 만든다는 것, 그렇기에 삶과 죽음은 결코 분리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저마다의 고유한 얼굴에 새겨진 본질, 고유한 빛과 색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세상의 명암, 보이는 것 너머로 숨 쉬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hakyung/
17년 차 포토그래퍼인 작가 차경은 남다른 눈을 가졌다. 어느 날 시작된 사시로 인해, 왼쪽 눈이 조금씩 자리를 이탈해 시력을 거의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세상의 잣대로는 미달한 자격”을 가졌다고 말한다. 어렸을 적 친구에게 ‘사팔뜨기’라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 뒤로 그의 삶은 한동안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신과의 싸움과도 같았다. 마치 그림자처럼 빛 속에 모습을 숨기고, 뜻대로 되지 않는 왼쪽 눈을 감시하고 원망하며, 사람들에게 눈의 이상을 숨기려 발버둥 쳤다. 태양 아래 서면 자동으로 흐르는 눈물이 혹여 남들 눈에 슬퍼서 우는 눈물처럼 보일까 봐 일부러 인상을 써서 주름을 더 깊이 만들어 감추었고, 마주 앉아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워 사람을 경계하고 가려 사귀는 버릇이 들었다. 그때의 불안은 우울보다 깊었고,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지독하고 날카로웠다.
세상을 똑바로 보고 싶지만 똑바로 볼 수 없었던 작가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연한 계기로 남들보다 똑바로 보아야만 가능한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을 선택한다. 온통 뿌옇게만 보이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이 그를 이 길로 이끌었다. 부정적인 자아에 이리저리 휘둘리기를 멈추고 이제는 얼굴에 은근한 웃음을 띠며 살고 싶었다. 화면 가득 웃고 있는 사람들 틈에 슬쩍 끼어 웃다 보면 자신도 그들처럼 행복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뷰파인더 너머로 그려진 세상을 보던 작가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포착한 찰나의 웃음이 수천 마디의 말을 가슴에 숨긴 이야기임을. 저마다의 얼굴 속에 각자가 자신의 렌즈로 보아낸 삶이라는 또 다른 무늬가 새겨져 있음을.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결점이 알게 모르게 오히려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심을 더욱 정성껏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어준 것이다. 이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영향을 주었고, 과연 삶의 마지막 순간 나는 어떤 얼굴을 남기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가닿으며 영정사진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언젠가 갑작스럽게 이별하는 날이 찾아왔을 때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기를 바랐다. 죽음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지 감히 알 수는 없지만, 마지막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사진만은 밝고 따뜻한 웃음과 함께 남겨두면 좋을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도움과 노력 덕분에 10년 넘게 이어진 영정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작가가 깨달은 것은, 결국 죽음이란 오늘을 잘 살아내는 데 필요한 선물이라는 사실이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진심이 깃들 듯이, 삶과 죽음은 결코 서로 다른 곳에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작가는 점점 더 과거의 불화했던 나 자신과 화해를 시도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나 단점 혹은 결핍 같은 것들도 용기 내어 안아줄 마음이 시나브로 생겨났다. 자신도 자각하지 못했지만 포토그래퍼로서 눈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본질에 가닿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시력이 거의 없는 한쪽 눈으로 보는 세상은 여전히 수직 수평도 맞지 않고 온통 뿌옇기만 하지만, 그렇기에 작가는 더욱 촬영 작업에 진지하게 몰두한다. 고유한 빛과 색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세상의 명암, 그 너머에 숨 쉬고 있는 수많은 진심에 가까이 다가가려 애쓴다. 사진은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기록하는 작업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 작업을 위해 글을 마무리하던 즈음, 작가는 단발적으로 두 눈이 아예 보이지 않는 현상을 경험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명백한 원인은 어디에서도 밝혀내지 못했다. 무섭고 두려운 한편으로, 어쨌든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라는 자각이 찾아왔다.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일은 몇 차례 더 이어졌고, 그 경험을 통해 작가는 비로소 죽음을 앞둔 삶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한때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현실 앞에 주저앉아 암울해하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쪽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이어질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동안 품고 있던 사소한 오해와 선입견, 고집스러운 취향 따위가 점점 덜 중요해졌다. 죽음과 같은 시간을 피부에 새기면서 바야흐로 지금 살아 있는 삶이 얼마나 귀한지 농밀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 작가는 눈으로 맞이한 시간 이상으로 선명하게 다가올 다음 삶의 숨결을 느끼며 마음으로 존재를 바라보는 연습을 이어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눈으로든 마음으로든 계속 읽어내고 기록하며 살고 싶다고, 적어도 볼 수 있는 동안은 자신의 삶을 농밀하게 채워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꼭 보아야 할 것만 보는 데도 부족한 시간, 마지막이 예정된 이 세상의 여정엔 놀라우리만치 감사할 것투성이니까. 우연한 좌절을 딛고 선, 그리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숱한 좌절로 자신의 삶을 부정당하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