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정치사회학자 프레드 블록은 1960년대 서구에서 학생운동이 뜨거웠을 당시부터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견지하면서 현대 정치경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왔으며, ‘삶터’를 중심으로 사회와 경제 체계를 재조직해야 한다는 고유한 견해를 설파해왔다. 미국의 한 교수는 이를 “기존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상찬했다.
비교적 사회주의의 풍토가 강한 유럽이 아니라 몇십 년 동안 꾸준히 우경화되어온 미국에서 현대 정치경제의 문제를 계속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확고한 자신만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이 가는 블록은 최신간인 『삶터를 책임지는 사회』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실질적인 사례들을 곁들여 자신의 주장을 조목조목 펼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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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정치사회학자로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캠퍼스 사회학과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대 정치경제의 작동방식과 한계를 설득력 있게 분석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그는 현대 경제의 구조·제도·개념이 여전히 낡은 산업 경제에 집착하고 있으며,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기존 방법이 더는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새로운 시대와도 전혀 맞지 않음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서비스 공급방식과 소비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삶터 경제의 새로운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경제와 사회에 대한 기존의 가정을 다시 돌아보고, 시민들과 지역사회가 좀 더 효과적이고 공정하게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적 틀을 마련해야만 급속히 변화하는 기술혁명 시대에 도태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삶터 경제, 완전히 새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첫걸음 세계적인 정치사회학자 프레드 블록은 1960년대 서구에서 학생운동이 뜨거웠을 당시부터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견지하면서 현대 정치경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왔으며, ‘삶터’를 중심으로 사회와 경제 체계를 재조직해야 한다는 고유한 견해를 설파해왔다. 미국의 한 교수는 이를 “기존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상찬했다. 비교적 사회주의의 풍토가 강한 유럽이 아니라 몇십 년 동안 꾸준히 우경화되어온 미국에서 현대 정치경제의 문제를 계속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확고한 자신만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이 가는 블록은 최신간인 『삶터를 책임지는 사회』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실질적인 사례들을 곁들여 자신의 주장을 조목조목 펼쳐나간다. 그는 이 책에서 지금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산업 경제에서 삶터 경제로 이미 전환되었는데도 여전히 낡은 산업 시대의 제도와 정책으로 경제를 꾸려가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한계에 부딪혀 온갖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민주주의의 현저한 후퇴, 사회 불평등 심화, 저렴한 주택을 포함한 사회적 인프라의 부족, 노동의 불안정성 증가, 기후변화 대응 실패, 허위 정보의 창궐과 사회적 분열 등을 하루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불안정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그는 “실제로 현재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질서가 겪고 있는 위기는 우리가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는 것을 사실상 막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삶터 경제를 이해하는 것이 현재 심해지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전 세계가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가운데 엄청난 사회적 대혼란을 차근차근 수습하면서 바닥으로 추락한 나라의 위상을 굳건히 바로 세울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더없이 시의적절한 제언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더 정의롭고 평등하며 모두 함께 번영하는 국가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많은 영감과 지혜를 안겨줄 것이다. ◆ 삶터 경제란? 삶터는 사회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터전 자체를 의미하며 낚시터, 빨래터, 활터처럼 각별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원제의 ‘habitation’(주거/거주)을 ‘삶터’로 옮긴 이유는 우리가 비록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해도 거대한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만큼 사회적 공동체성에 더 큰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블록은 삶터를 “인간 공동체의 사회적·물리적 기반을 창조하고, 유지하며, 개선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삶터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산업 시대의 도구와 제도적 구조로 삶터 경제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9세기에 현대 경제학이 탄생했을 때는 금, 은, 향신료, 설탕, 섬유, 의류, 강철 등 표준화된 전통적 상품들이 경제적 산출물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지만, 현재의 삶터 경제에서는 대다수가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에서 그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 잣대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꼬집는다. 또한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산업 시대에 효과적이었던 시장 중심의 접근법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있지만, 이러한 믿음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강조한다.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전환할 때 새로운 정책과 제도가 필요했던 것처럼, 삶터 경제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투자’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현대 주류 경제학은 여전히 경제의 주요 동력을 기업의 투자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정부와 가계의 지출이 훨씬 더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완전히 잘못된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2019년 미국 경제분석국의 자료에 따르면 기업 투자는 총투자의 30퍼센트 미만에 불과했다). 블록은 투자를 “미래에 생산적인 인구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금전적·시간적 지출”로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 금융 체계의 개혁으로 중소기업 중심의 협력 네트워크 생산 체제를 구축해야 저자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제도가 산업 시대 대기업의 필요에 맞춰 구축되었다는 점이 바로 현대 경제 문제의 핵심이다. 20세기 전반에는 민간 기업이 주식과 채권을 발행해 거대한 기업 제국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는, 상당수의 기업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했다. 그 결과, 주식시장으로 몰려드는 투자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함에 따라 일부 극소수 초국적 기술기업들이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미국에서 1982년 전에는 불법이었던 자사주 매입이 요즘은 주가를 끌어올린다며 칭송받는 분위기만 봐도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그 밖에 대형 상업은행, 대형 자산운용사 같은 소수의 거대 기업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 또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대출을 받는 기업이 거대 금융기관의 이해관계와 지침에 일방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고, 특히 주주 이익 극대화 압력에 시달리는 기업 경영진이 단기적 주가 상승에 집중하게 되면 장기적 성장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재의 금융 체계는 삶터를 개선할 수 있는 활동을 지원하기보다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체계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삶터 경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금융 체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며 대안 금융제도의 정착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혁신적인 중소기업들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파생상품이나 암호화폐 같은 투기적 투자에 대한 자금 흐름이 줄어들게 만들어 사회의 자본이 기후변화 대응과 인적 역량 강화 같은 더욱 중요한 과제에 투입되도록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 ◆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은 삶터 민주화를 위한 토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날로 심해지는 경제적 양극화에 더해 정치적 양극화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집권 2기를 맞이한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으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미-중 갈등에 가계는 물론 기업과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가 매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취임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트럼프의 과격한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는 미국에 비해 6월 초면 새 대통령이 탄생하게 될 우리나라 상황이 차라리 나아 보일 지경이다. 정치적 양극화의 이면에는 극소수 거대 기업들의 권력 독점 심화와 영향력 확대가 있으며, 다수의 정치인과 정책이 이들의 입김에 휘둘리는 탓에 그 간격이 더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막강한 힘에 비하면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는 ‘개미’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전 세계에 거의 실시간으로 퍼져나간 ‘K-민주주의’를 통해 온전한 공동체, 더 나은 사회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절실한 목소리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생생하게 입증되었다. 바로 여기에 희망이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헌신하는 시민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별로 풀뿌리 민주주의(참여예산제, 숙의적 시민의회, 시민감찰위원회 등)를 정착시켜 불완전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해야 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삶터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한국에 주어진 절체절명의 기회다. 온갖 역경을 딛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우리는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좋은 사회에서 살아갈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로 가는 문은 이미 열렸다. 이제 우리가 새로운 길을 낼 차례다. ‘K-민주주의’의 완성은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 증진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번영이다. “한마디로 삶터 민주화는 수많은 사람이 이 의제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행동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물론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산업 시대의 경제 분석과 해결책만을 반복하는 민주적·평등주의적 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한 탓에 100년 된 구호를 재활용하는 것으로는 정치적으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우리는 우리의 조부모, 그들의 조부모가 살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 역사적 순간의 도전에 맞서려면, 새로운 정치 전략과 담론이 필요하다.” (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