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우리에게 스피노자는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철학자라는 걸 알아도 어떤 철학을 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 명언을 스피노자가 남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요즘 이 명언을 누가 처음 말했느냐를 놓고 스피노자 외에 다른 사상가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만약 이 말을 스피노자가 했다면 어떤 이유로 했을까요? 이 문장을 대하는 모든 사람은 가장 먼저 자유와 안락함을 느낍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너무나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사과나무를 심는 자유와 편안함을 그 속에서 찾습니다.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면 자연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지구의 종말이라는 자연법칙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나약함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교의 파문을 받고 유대인과 가까이하지 못했던 철학자입니다. 유대교라는 거대한 조직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약한 한 명의 철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철학자는 너무나 편안합니다. 너무나 자유롭습니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파문을 당한 후 스피노자는 어떤 유대인과도 교류를 할 수 없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도 유대인의 편이었습니다. 유일하게 네덜란드의 법만이 스피노자의 편이었습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바로 아버지의 유산 문제로 여동생과 다투었을 때 스피노자의 손을 들어 준 네덜란드 법정이었습니다. 법이 자신의 편임을 안 스피노자는 법의 판결과 달리 그 유산을 모두 동생에게 양보합니다. 스피노자는 여기서 법을 하나의 자연법칙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자연법칙과 같은 법의 중요성을 안 스피노자는 법 안에서의 자유와 안락함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후로 외적인 모든 활동을 중단합니다. 심지어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철학 교수 초빙도 ‘자유의 침해’라는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서는 『윤리학(에티카)』입니다. 『윤리학』은 전지전능한 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파문당한 스피노자는 이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신을,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스피노자의 자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안 역시 궁극적으로는 자연법칙 안에 존재합니다. 스피노자도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관계를 설정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윤리학』을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스피노자가 이를 수학적 공식처럼 풀어서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공식만 이해하면 수학이 쉬워지듯이, 스피노자의 『윤리학』도 그 체계만 이해하면 아주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윤리학》 읽기』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학적 공식을 말로 쉽게 풀었기 때문에, 보다 편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책과 함께 스피노자처럼, 자연법칙 안에 존재하는 무기력함,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큰 자유와 편안함이 무엇인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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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배재대학교 심리철학상담학과 철학 교수로 재직한 후 현재는 배재대학교 명예교수를 맡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대중을 위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만화 서양철학사』 1, 2, 3권과 『플라톤이 들려주는 이데아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가 들려주는 행복 이야기』 등이 있다. 또한 『소크라테스, 구름 위에 오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소를 타다』로 철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