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문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대표 산문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그늘에 대하여'를 비롯하여, 일본 전통문화와 근대문학에 대한 성찰과 남녀관계에 대한 철학을 담은 '연애와 색정', 화장실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문학작품의 효시격인 '뒷간', 이 밖에 '게으름은 말한다', '손님을 싫어함', '여행' 등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화들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묘사한 6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수록된 산문들이 씌어진 시기는 주로 1930년대. 일본에 서구의 문물을 도입되면서 근대의 변화가 이루어지던 때로, 한지를 바른 장지문에 유리창이 끼워지고 전통 의상에서 양복으로 갈아입었으며, 서양식 건물이 속속 들어서던 시대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글 전반에 걸쳐, 당시 일본의 풍토와 문화를 외면한 채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구의 외래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결과를 이중생활이라 칭하며 신랄하게 꾸짖는다.
공사할 때의 발생하는 문제들, 교토나 나라의 사원들의 변화, 전등이 가져다주는 득과 실, 종이의 효용성, 일본의 건축과 다다미방, 어둠 속에 있는 황금박과 금빛이 발하는 아름다움, 노 무대의 어두움과 옛 여인의 생활상 그리고 그늘(음예)의 세계 등 일본을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알기 쉽게 서술하는 동시에, 변화의 과정에서 전통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표제작 '그늘에 대하여'는 1996년 <음예공간 예찬>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작품집에 실려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다. 사물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견해 속에 작가 자신의 미학을 감성과 이론과 행동으로 관철시킨 작품으로 미국과 영국, 일본의 대학에서 건축과 관련한 텍스트로 즐겨 읽힌다.
목차없음.
1886년 도쿄 니혼바시에서 태어났다. 제일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 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퇴학당했다. 1910년 『신사조(新思潮)』를 재창간하여 「문신」, 「기린」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고, 소설가 나가이 가후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1915년 열 살 어린 이시카와 치요코와 결혼했는데, 시인인 친구 사토 하루오가 그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자 아내를 양도하겠다는 합의문을 써 『아사히신문』에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화 예술 운동에도 관심을 가진 그는 시나리오를 써 영화화하고 희곡 『오쿠니와 고헤이』를 발표한 뒤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24년 『치인의 사랑』을 신문에 연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검열로 중단되었다.
1942년 그는 세 번째 부인이자 그가 희구하던 여성인 마쓰코와 그 자매들을 모델로 『세설』을 쓰기 시작했다. 간사이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세설』은 몰락한 오사카 상류 계츨의 네 자매 이야기,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전하는 풍속 소설이다. 1943년 『중앙공론』 신년호와 4월호에 게재되었고 7월호에도 실릴 예정이었으나 <시국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표가 금지되어 전후에야 비로소 작품 전체가 발표되었다. 훗날 마이니치 출판문화상과 아사히 문화상을 받았다. 1948년에는 제8회 문화 훈장을 받았고 1941년 일본 예술원 회원, 1964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에 뽑혔다. 1958년 펄 벅에 의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이래 매년 후보에 올랐으며 1965년에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치인의 사랑』, 『만』, 『킨쇼』, 『열쇠』, 『장님 이야기』, 『미친 노인의 일기』 등이 있고,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