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궁궐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의 궁궐 보는 눈을 한 단계 높였던 홍순민 교수가, 그동안 더 깊어진 이해와 공부를 두 권의 책으로 묶어 돌아왔다.
상권은 궁궐을 이해하기 위한 개론에 해당한다. 궁궐이 자리한 서울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해, 궁궐이 어떤 곳이었는지, 어떻게 짜인 공간이었는지를 설명한다. 궁궐의 역사를 따라가며 각 궁궐의 탄생과 운영, 변천까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 한편, 책의 말미에는 궁궐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통관념에 대한 해설을 부록으로 실었다.
궁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판을 500컷 이상 수록하였다. 지금의 궁궐을 색다른 지점에서 보여주는 사진들부터, 조선시대의 궁중기록화를 비롯한 옛 그림들은 물론 근대 이후 궁궐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들도 적극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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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조선 후기 정치사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조선 후기 국가경영의 실상을 밝혀보려 공부하고 있다. 정치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꼴, 곧 문화로 탐구의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도성과 궁궐에 대한 책을 쓴 데 이어 종묘, 그리고 조선시대 서울을 쓸 궁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조, 임금이 되기까지》, 《홍순민의 한양읽기: 도성》, 《한양도성, 서울 육백년을 담다》, 《조선시대사 1》(공저), 《서울 풍광》, 《우리 궁궐 이야기》등이 있다. 2017년 현재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에서 문화자원을 가르치고 있다.
궁궐에서 무엇을 보고, 읽어내야 하는가?
화려한 건물, 옛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다
조선왕조의 핵심, 궁궐의 진면목을 마주한다!
바야흐로 궁궐의 전성시대다. 궁궐은 외국인 단체 관광객, 색색 한복을 입은 연인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로 매일같이 인산인해다. 하지만 궁궐을 제대로 보려면 그저 가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임금이 살면서 나라를 다스리던 때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어야 진짜 궁궐을 보았다고, 궁궐의 더 깊은 매력을 마주했다고 할 수 있다. 1999년 《우리 궁궐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의 궁궐 보는 눈을 한 단계 높였던 홍순민 교수가, 그동안 더 깊어진 이해와 공부를 두 권의 책으로 묶어 돌아왔다.
상권은 궁궐을 이해하기 위한 개론에 해당한다. 궁궐이 자리한 서울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해, 궁궐이 어떤 곳이었는지, 어떻게 짜인 공간이었는지를 설명한다. 궁궐의 역사를 따라가며 각 궁궐의 탄생과 운영, 변천까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 한편, 책의 말미에는 궁궐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통관념에 대한 해설을 부록으로 실었다.
하권은 서울의 다섯 궁궐을 돌아보는 답사를 위한 안내다. 저자의 눈길은 임금과 신하들이 머물렀을 위엄 있고 화려한 전각들뿐만 아니라 궁궐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배어 있는 우물과 담장에도 미치고, 이미 건물이 사라진 빈터에서도 궁궐이 본래 기능을 하던 때의 모습을 그려낸다. 왜곡과 파괴의 상처에는 날카로운 비평을, 옛 모습을 잘 지키고 있는 곳들에는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책에는 궁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판을 500컷 이상 수록하였다. 지금의 궁궐을 색다른 지점에서 보여주는 사진들부터, 조선시대의 궁중기록화를 비롯한 옛 그림들은 물론 근대 이후 궁궐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들도 적극 활용하였다. 하권에는 각 궁궐의 현황 지도, 〈동궐도형〉과 〈북궐도형〉을 바탕으로 경술국치 이전 궁궐들의 전각 배치와 현재의 현황을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지도를 실었다.
상권 - 왕조국가의 중심, 임금이 사는 곳
궁궐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바로 궁궐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한양, 즉 옛 서울을 알아야 궁궐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먼 곳에서부터 점차 한양으로 향하는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자. 백두산에서부터 뻗어내려 온 산줄기, 한반도의 복부를 흐르는 한강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한양이 있다. 그 한양을 감싼 도성을 한 바퀴 휘돌아본 뒤 도성문을 들어서 운종가, 남대문로 큰길을 따라 걸어보자. 종루(혹은 종각)와 기념비전과 같은 중요한 랜드마크들을 지나치면, 비로소 궁궐을 만나게 된다. 멀리 돌아온 듯하지만, 자연스럽게 한양이라는 도시의 구조를, 궁궐이 앉은 자리를 머릿속에 새기는 지름길이다.
궁궐은? ‘임금이 사는 곳’이다
그렇게 도착한 궁궐, 그곳은 어떤 곳인가?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궁궐은 ‘임금이 사는 곳’이다. ‘임금이 산다’는 말은 물론 임금이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임금이 공적인 통치행위를 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궁궐은 그저 임금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기 위한 집이 아니었다. 왕조국가의 정점인 임금이 정책을 결정하고 법령을 발하는 등 국정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궁궐은 왕권의 발원지인 만큼 위엄 있는 모양새와 격식을 갖추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왕조가 처음 한양을 도읍으로 삼고, 그러려면 꼭 필요한 세 건조물 종묘, 궁궐, 도성에 대해 말할 때 궁궐은 “정령(政令)을 내고 존엄을 보이는 곳”이라 표현되었다. 여기에 궁궐의 본질이 있다.
죽은 궁궐 고궁. 그곳을 되살려 읽어내려면
그런 뜻에서, 궁궐은 죽었다. 더 이상 임금이 살지 않으며, 국정을 운영하는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고궁(古宮)이란 말이 이를 대변한다. 궁궐은 여전히 조선왕조를, 더 나아가 우리 역사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지금 남아 있는 궁궐을 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궁궐에 임금이 살던 때, 실제로 궁궐이 본래의 기능을 하던 때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궁궐의 짜임새 역시 같은 눈으로 살펴야 한다. 오문삼조와 같은 중국의 옛 고사를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실제 궁궐의 기능이 무엇이었으며, 어떤 식으로 짜여 있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그렇게 보았을 때 궁궐은 크게 여섯 공간으로 나뉜다. 공식적인 행사와 의례를 위한 외전, 임금의 일상생활 공간이자 실질적인 업무 공간인 내전, 차기 왕위 계승자인 왕세자가 활동하는 곳인 동궁, 궁궐 안에 들어와 있는 관서들을 가리키는 궐내각사, 왕실 가족과 궁궐을 유지하는 이들의 공간인 생활기거공간, 휴식 공간이면서 동시에 과거 시험이나 군사 훈련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던 후원이 바로 그것이다.
궁궐의 전반적인 짜임새만큼이나, 궁궐을 구성하는 각 건물들을 읽어내는 눈도 중요하다. 건물의 각 구성 요소를 살펴보면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어떤 용도로 건물을 지었는지를 알 수 있다. 각 건물에 매달려 있는 편액의 마지막 자를 모은 여덟 글자, “전당합각재헌루정”에 담긴 위계질서를 파악한다면 건물의 이름만 들어도 이 건물이 궁궐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궁궐의 역사를 보면 조선의 역사가 보인다
공간 다음에는 시간을 읽을 차례, 이번에는 궁궐의 역사를 알아본다. 경복궁이 처음 지어지고, 대한제국이 멸망하기까지 500여 년간 궁궐은 지어지고, 없어지고, 다시 지어지기를 반복하였다. 그 결과 지금 서울에는 다섯 개의 궁궐이 남아 있다. 하지만 한 시기에 이 궁궐들이 모두 쓰였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으뜸이 되는 궁궐을 법궁이라 하고,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궁궐을 이궁이라 하여 동시에 활용하였다. 그러한 궁궐 활용 방식을 가리켜 양궐체제라 하며, 이는 궁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이다. 또한 궁궐의 역사는 그 자체로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기도 하다. 숙종은 왜 환국 시기에 맞춰 본래 머물던 궁궐을 떠나 이어하였을까. 영조와 사도세자가 각각 다른 궁궐(경희궁과 동궐)을 쓴 것이 사도세자의 죽음의 한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아관파천 이전까지의 격변기에 고종이 잦은 이어를 한 것은 당시의 혼란한 정국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러한 논점들을 두루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