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담은 50여 장의 사진과 길 위에서 느낀 따스한 감상을 담은 책이다. 27년 차 방송기자인 저자는 마흔 이후의 삶에서 느끼는 인생의 낭만과 행복을 도보 여행이라는 테마를 통해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다. 마흔, 어찌 보면 숫자에 불과하지만 저자에게는 지나온 생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분기점이 되는 나이다. 또한 비로소 혼자가 아무렇지도 않을 무렵이다. 저자는 국내 도보 여행의 명소 24곳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운동"인 걷기를 통해 마흔 이후의 삶을 헤쳐나갈 용기를 얻는다.
이 책은 사막이나 정글 같은 극한의 오지를 탐험하는 내용도 아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와 같은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지도 않다. 그저 감악산 바위틈에 핀 들꽃을 시작으로 숲길, 바닷길, 둘레길 가리지 않고 걸음을 옮기며 그 옛날 같은 길을 걸었던 이들의 삶을 반추해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기도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혼자 걸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소박하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해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목차없음.
도보여행가…라고 쓰고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는 중년의 사내. 이리저리 흘러온 삶이 못내 아쉬워 자다가 벌떡 이불 킥을 날리면서도,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철없는 남자다.
그래서 걷는다. 흔들리면서, 비틀거리면서도 가야 할 길을 잊지 않고 걸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그 길 위에 책이 있다.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주는 길 위의 도반. 오래된 지혜로운 이의 속삭임은 늘 어깨를 토닥이고 등을 떠민다.
산다는 건 여행이고 여행은 길이다. 길 위로 흩뿌려진 사연들을 주워 담으니 글이 되고, 책이 되는 즐거움에 미소 지으면서도, 부족함은 늘 아프다. 하지만 가시 박힌 손가락의 각성은 자신을 사랑하라 다그치며, 또 껴안는다. 길 위의 사유와 성찰은 인간을 묻고, 나를 물으니 그래서 인문학이 된다.
SBS에서 30년째 방송기자로 일하고 있다.
언젠가는 꽃피는 산골에서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별 헤는 삶을 소망하며 살아간다.
지은 책으로 도보여행 인문 에세이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가 있다.
“마흔, 수천 갈래의 길이 시작되는 곳”
혼자가 아무렇지도 않을 무렵, 어른의 여행이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담은 50여 장의 사진과 길 위에서 느낀 따스한 감상을 담은 책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가 출간되었다. 27년 차 방송기자인 저자는 마흔 이후의 삶에서 느끼는 인생의 낭만과 행복을 도보 여행이라는 테마를 통해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다. 마흔, 어찌 보면 숫자에 불과하지만 저자에게는 지나온 생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분기점이 되는 나이다. 또한 비로소 혼자가 아무렇지도 않을 무렵이다. 저자는 국내 도보 여행의 명소 24곳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운동”인 걷기를 통해 마흔 이후의 삶을 헤쳐나갈 용기를 얻는다.
이 책은 사막이나 정글 같은 극한의 오지를 탐험하는 내용도 아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와 같은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지도 않다. 그저 감악산 바위틈에 핀 들꽃을 시작으로 숲길, 바닷길, 둘레길 가리지 않고 걸음을 옮기며 그 옛날 같은 길을 걸었던 이들의 삶을 반추해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기도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혼자 걸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소박하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해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굳이 무거운 등산화와 화려한 등산복을 입지 않아도 좋다. 일단 걷다 보면 “내 몸을 일으켜 세워 기어이 땀 흘리며 나아간 만큼이 진정한 나의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마흔을 넘기면서 남들보다 빨리, 또 남들만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지름길만을 골라 질주해온 젊은 날의 혈기는 사라졌지만, 빙 둘러가는 길을 차분히 걷는 여유가 생겼다. 저자의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곳곳에 이토록 많은 이야깃거리와 숨은 풍경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느긋한 마음과 섬세한 감성으로 써내려간 문장들은 지름길이 아닌 수많은 길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바위틈에 피어난 들꽃에서
마흔 이후의 삶을 위한 이정표를 찾다
“몸이 전하는 수고스러움을 견디며 그저 두 발을 내딛는다”
자식들은 다 컸고 아내는 바쁘다. 패키지 효도 관광을 가기에는 젊고 요란한 산악회는 부담스럽다.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달렸지만 딱히 결승점이 분명한 인생도 아니었다. 정신없는 시간들을 뒤로한 채 어느덧 마흔을 훌쩍 지나온 지금. 어딘지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다.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 이 싱숭생숭한 기분은 외로움인가 고독인가. 때마침 봄이 온다. 부는 바람 속에 들꽃 향이 나는 어느 날, 일단 걸어보자. 혼자가 아무렇지도 않고, 차라리 혼자라서 좋은 어느 주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나는 것도 좋겠지.
-걷는 행위를 재발견하는 여정,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
흔히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면 일생 동안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뇌리를 스쳐간다고 한다. 그 후에 ‘나’라는 존재는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먼지가 되는지, 이집트의 신화처럼 육체를 벗어난 영혼으로서 긴 여행을 떠나는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있음 그 자체로 더욱 소중해진다.
그런데 가장 최후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인생에는 각 시기마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일종의 작은 죽음들이 찾아온다. 유년 시절의 끝 무렵, 놀이터에서 마지막으로 그네를 타던 날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분명 존재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점점 인생에 찾아오는 작은 죽음들을 분명하게 의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성년이 되고 30살을 지나면서 슬슬 ‘나이’를 자각하다가 마흔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지나온 시간을 두고 ‘세월’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한 소회에 젖는다. 마흔 이후를 두고 인생 2막, 인생 후반전 등으로 표현하는 이유도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른 분기점과는 다른 특별한 감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신간 에세이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가 주목하는 것 역시 마흔 이후의 삶이다. 27년 차 방송기자인 저자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과 추억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풀어내고 스스로를 달래어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걷기’라는 행위를 선택했다. 저자에게 걷는다는 것은 “몸이 전하는 수고스러움을 견디며 그저 두 발을 내딛기만 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일이며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일이자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이기도 하다. 그러니 목적지는 어디라도 좋고 가는 그 길이 굳이 지름길이 아니어도 좋다.
-최단 거리를 계산하는 일을 멈추고 과감히 지름길을 벗어나다
자동차 네비게이션, 스마트폰 길 찾기 기능 등을 통해서 우리는 아주 손쉽게 목적지로 가는 최단 거리를 알아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속도는 곧 경쟁력이다. 보다 빠르게 시장을 선점해야 하고, 얼리어답터들은 최신 휴대폰과 전자기기를 먼저 쓰는 것으로 자존감을 느낀다. 그러나 속도에 의한 경쟁은 끝이 있다. 제아무리 빠른 말이라 해도 나이가 들면 이제 갓 경주마가 된 혈기 왕성한 젊은 말에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별 수 없이 천천히 걷게 된다. 어쩌면 ‘느림의 미학’이란 피할 수 없는 육체와 정신의 노화 현상을 맞게 된 이들이 스스로 위안을 삼기 위해 만든 말인지도 모른다.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에서 저자는 돌아서 가는 먼 길을 택한다. 그러나 ‘돌아서 걷는다’는 행위는 속도나 시간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그것들을 초월한 상태라서 가능한 일이다. 또한 지름길을 알아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 시간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고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지름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수백, 수천 갈래의 새로운 길이 열린다.
호젓하게 길을 걸으며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위틈에서 자라는 들꽃과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이다. 내가 아닌 다른 생명들을 돌아보고, 언제나 거기 있었을 풍경들을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차분히 주위를 관찰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혼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시기라고 표현했다. 스스로 온전하고 여유롭기에 길이 들려주는 풍성한 이야깃거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더욱이 저자가 선택한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사막 횡단 같은 거창한 의미를 담은 이국의 공간이 아니라 국내 도보 여행의 명소들이다.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모습의 뿌리를 더듬어가는 여행이기도 하다. 빨치산이 숨어들었던 지리산,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가 걸었던 함양 선비문화 탐방로, 정조의 꿈이 그대로 담겨 있는 수원화성 성곽길 등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 속 명장면들이 소환된다.
-철이 든다는 것은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
한 무리의 여행객들이 고운 등산복 차림으로 지나간다. 때로는 개울물 저편으로 통하는 징검다리 위에서 폴짝거리며, 때로는 핏빛으로 물든 선연한 단풍을 보며 탄성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 책에는 풍경과 하나가 된 그들의 모습과 이곳저곳에 숨겨진 평범하지만 진귀한 풍경들을 담은 50여 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완벽한 구도로 철저히 계산된 순간이 아니라, 조금 투박하지만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이기에, 맑게 갠 어느 날 스스로를 다독여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훌쩍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풍경에도 철이 있다. 철이 든다는 것은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저자는 기막힌 제철 과일처럼 상큼하고 속이 탁 트이는 순간들을 모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에 정성을 담았다. 또한 인적이 드문 오솔길에서 곰을 만나지는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던 순간이나 길 아닌 길에서 조난을 당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덤이다.
봄이 와도 봄이 왔음을 실감하기 어려운 시기다. 그러나 기어이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봄 햇살은 어느 결에 마스크 쓴 얼굴에도 살랑살랑 내려앉아 만물의 소생을 알리게 될 것이다. “세계는 어느 한순간, 어느 풍경 하나에도 담겨 있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마음의 눈과 귀가 열리면 동네 뒷산의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인생과 시간을 음미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의 꾸미지 않은 모습 그대로의 멋을 느낄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어른의 여행, 어른의 방랑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