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산문집. 산문에 시가 어우러져 두 배의 읽는 재미를 준다. 책에는 촌부(村婦)로서, 한 문중의 종부로서의 삶이 따듯하게 담겨있다. 지난하던 시절의 가족사와 집성촌에서의 이웃, 소소한 생에 대한 참견, 조상을 숭상하는 마음은 읽는 이를 경건하게 한다. 특히 장애를 타고난 손녀를 여덟 살까지 키우다 하늘로 보낸 후의 심정을 담은 글에서는 사랑과 뼈를 깎는 아픔이 녹아있다.
목차없음.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바람이 해독한 세상의 연대기』, 『아기별과 할미꽃』, 『울음소리가 희망이다』, 『우리 집 마당은 누가 주인일까』, 『벌열미 사람들』이 있으며, 산문집 『왜 불러』, 『그곳에 그리움이 있었다』 등이 있다.
“얼치기로 견뎌온 세월이 시인이란 명사를 붙여주긴 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흙과 노는 농부 아낙 혹은 할미라는 호칭이 그중 편하다.”
허정분 시인의 산문집 『그곳에 그리움이 있었다』에는 시인의 생각과 경험의 파편을 산문에 담아 다섯 편의 시집(『벌열미 사람들』(1998), 『우리 집 마당은 누가 주인일까』(2005), 『울음소리가 희망이다』(2014), 『아기별과 할미꽃』(2019), 『바람이 해독한 세상의 연대기』(2021))에서 건져낸 시를 더했다.
1부 ‘첫눈이 내렸다’에서는 아무 상식 없이 문학 판에 뛰어든 숫배기 아낙 때의 기억, 폭설이 내리던 날 어머니와 동생과 산골 어느 농가 사랑채로 피신 갔던 일, 나물꾼으로 산과 들을 넘나들던 나날 등을 회상한다. ‘2부 그 소년이 온다’에서는 학교 폭력, 가정 폭력, 장애와 가난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보듬고 있다.
‘3부 이름이 낯설다’에서는 시어머니의 빈자리, 오빠의 파란만장한 생애보, 나무꾼 아버지 이야기, 약혼사진 등 가족과의 추억을 돌아본다. ‘4부 하룻밤 꿈에라도’에서는 벌열미 마을과 종부 할머니,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손녀 이야기 등 사랑과 이별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삶의 원천이며 글의 배경이 되어 준 가족들, 거친 호미가 몽당이 되도록 살아온 고단한 삶, 봄이면 나물 뜯고 감자밭 매고 옥수수 따서 쪄 먹던 희열, 조상님의 청백리 영화榮華와 동행하는 아름다운 계보인 한마을 600년 문중 산하, 아기별이 된 손녀. 허정분 시인은 이번 산문집으로 시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는 긴장의 연속에서 낙관도 방관도 금물인 인생을 사느라 온 심신이 다 피폐하지만 그 와중에 시를 쓰고 글을 쓰는 호사가 가장 즐거웠다고 말한다. 시도, 글도 결국 삶임을 기억과 순간에서 글감을 건져 올리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시인이라는 호칭, 흙과 노는 농부 아낙 혹은 할미라는 호칭, 어느 하나 아쉽지 않은 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