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0자에 고쳐 담은 말
라디오에서 24년 동안 날씨를 예보해 주던 기상캐스터의 마지막 방송 날, 쇼팽의 〈이별의 곡〉이 흘러나온다. ‘깐부’라는 말을 유행시킨 오영수 배우는 59년 동안 200여 편의 연극에 출연했다고 한다. 24년과 59년, 저자의 머릿속에는 ‘일가를 이루기까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조문환 작가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하동, 그중에도 악양에 산다. 박경리 선생의 고향과 같은 곳으로 『토지』의 무대기도 하다. 그 평사리 들판에서 28년간 시골공무원과 면장을 역임했다. 절대적 시간과 절대적 추위를 견뎌내 무채색투성이 겨울에 주황빛을 뽐내는 치자 열매처럼 저자는 지리산과 섬진강, 평사리 들판에서 익어가며 일가를 이루었다.
“춘삼월이 돌아오면 북태평양으로 연어는 새로이 떠나고 독수리들도 시베리아 벌판으로 돌아가지만 그 자리는 강남의 제비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연어처럼, 독수리처럼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곳, 내 마음이 셔틀 운행할 수 있는 곳이 있어준다면 이 난세를 이겨내기가 수월할 것이다. 연어와 독수리의 평사리 백사장처럼. 그대에게 평사리 백사장 하나쯤은 있는가?”
‘아래에서 본 우리’, ‘위에서 본 세상’, ‘안에서 본 나’, ‘밖에서 본 너’ 4부로 나뉜 글은 모두 1250자 내외이다. 코로나19라는 세기적 사건을 견뎌내며 3년 반 동안 고쳐 담으며 쓴 글을 모았다. 시골 공무원으로 일하며 마을을 가꿔나간 경험과 하동 생활에 시적, 인문학적 감수성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작고, 낮고, 느려야 한다’는 깨달음, 경제논리이자 생존원리인 이타심, 중간지대나 회색지대 그 이상의 무언가인 보편성. 분량이 제한된 만큼 불필요한 말은 덜어내고 저자만의 통찰로 채웠다. 섬세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글감을 건져내 많은 질문을 남긴다.
목차없음.
현장에서 일하고 현장에서 내일을 본다. 상상한 만큼
성장한다는 말을 믿는다. 그 상상을 현장으로 가져오는
일을 하는 중이다. 문화기업 놀루와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