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중심지, 중앙아시아 역사·예술기행. 중앙아시아는 튀르크와 몽골의 유목문화, 페르시아와 아랍의 이슬람 문화,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체제의 문화유산을 거치며 다층적인 문화의 층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중앙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만난 12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개별적인 중앙아시아의 나라, 혹은 특정 작가나 작품만을 평면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거대한 정신적 공동체로서 중앙아시아에 면면히 이어져 온 위대한 이야기의 유산들을 다양한 도시와 작가들의 이야기와 함께 엮어서 들려준다. 12개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중앙아시아라는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신비한 이야기의 땅이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목차없음.
대학과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공연예술전문지인 월간 『객석』에서 6년간 연극 기자로 일했다. 이후 연극학으로 박사학위를 마치고, 남산예술센터에서 국내 최초의 극장 드라마터그를 역임했다. 현재 연극평론가와 드라마터그, 연극연구자로 활동 중이며, 공연예술과 문화에 대한 다양한 글쓰기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저서로 『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 『슬라브, 막이 오른다』(2022년 세종도서 교양도서), 공저로 『러시아를 이해하는 아홉 가지 키워드』(2024)가 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카라칼파크스탄, 우리에겐 여전히 낯설기만 한 중앙아시아의 나라 이름이다. 페르시아어로 ‘~의 땅’이라는 뜻의 ‘스탄’, 저자는 망막한 이 땅을 직접 찾아간다. 보고 듣고 부딪히면서 알게 된 것들과 깨달은 것들을 기록하고 정리해 이야기와 함께 풀어놓는다. 카자흐스탄의 도시 알마티에서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 오시, 타지키스탄의 두샨베, 우즈베키스탄의 동쪽 코칸트와 타슈켄트로부터 사마르칸트를 지나 서쪽으로 부하라, 히바, 누쿠스까지,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에 놓인 광활한 사막과 고원을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택시에 모르는 사람과 짐에 끼여 달리고, 깜깜한 터널을 지나고, 16시간 기차를 타고, 영문도 모른 채 국경 철조망 사이에 코를 박고 안달하며 10시간씩 발이 묶여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뺨을 때리는 매서운 모래바람과 성마른 산처럼 휩쓸고 지나간 역사적 고난과 소용돌이, 장대한 이곳을 호령한 영웅들과 위대한 작가들을 처음 알게 되면서, 문학과 연극을 전공하고 세계문학을 사랑하던 저자는 ‘각성’하고 ‘반성’하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 이슬람 건축이 발하는 색과 아름다움에, 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는 위치에서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를 바탕으로 유구한 세월 다채로운 예술을 꽃피운 그 문명에, 무엇보다 유럽 르네상스의 토대가 되는 학자와 과학자들의 업적에 새삼 놀라워한다.
‘뜨거운 호수’라는 뜻을 지닌 이식쿨 물빛처럼 시린, 소비에트 체제 아래 다양한 약자들의 삶과 그 연대를 이야기하고,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국인인 고려인들의 길고 슬픈 디아스포라 사를 전할 때는 특별한 감동이 있다. 저자는 말한다, “삭막한 사막과 같은 인생을 버티게 해주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친절한 호의뿐”이라고. “우리의 지혜는 얼음처럼 차갑지만 뜨거운 심장은 언제나 그걸 녹여주었다” 하는 카자흐 대표 지성, 아바이 쿠난바이울리의 노래가 가슴에 여울진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니, 저자가 건네받았다는 그 달콤한 멜론의 맛과 색은 어떤지, 기차에서 만난 아이들 눈동자는 얼마나 반짝이는지, 그냥 놔두면 시도 외울 기세라는 운전기사와 대걸레질을 하면서 문학박물관을 안내하고 설명해 주는 아주머니 목소리까지, 이제 그곳이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