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에 미치고, 어딘가에 지치고, 누군가에게 홀린,
영화를 보는 그 순간을 포착하다
시인 강정이 직접 그린 30편의 드로잉 수록
92년 등단 이래 8권의 시집과 5권의 에세이를 내며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해온 시인 강정이 영화 에세이를 펴냈다. 숨 쉬듯 영화를 보는 자타공인 영화광 강정이 인간, 사랑, 예술, 역사, 영화 등 다섯 가지 키워드로 30편의 영화를 꼽고, 각 영화의 한 장면을 직접 그린 드로잉을 수록했다. 내가 영화 속에 들어왔거나, 영화가 내 속에 들어온 듯한, 이 책의 제목 그대로 “미치고, 지치고, 홀린” 듯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린 드로잉들은 그 자체로 영화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이자 증거가 된다. 아무도 모르는 영화를 발견해 취향의 지평을 넓히고, 동시에 누구나 아는 영화를 일상적이지 않은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 책은 시인의 남다른 시선과 미려한 문장으로 가능했다. 영상 속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발견하는 강정의 섬려한 영화 독법이 펼쳐진다.
프롤로그
1. 나 혹은 인간
오늘 나는 나를 버리기로 한다! _〈여행자〉
나는 왜 여자(남자)가 아니고 남자(여자)인가 _〈광란자〉
내 몸엔 내가 하나도 없어! _〈내가 사는 피부〉
‘다른 존재’를 ‘다르게’ 보기 _〈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개’라고 쓰고 ‘신’이라 읽는다? _〈도그맨〉
소년은 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나 _〈한니발 라이징〉
2. 사랑 혹은 관계
사랑하지만, 당신을 찌를 것 같아 떠나오 _〈드라이브〉
두 눈 속에 담긴 한 사람 _〈북극의 연인들〉
공중전화 시대의 사랑 _〈라빠르망〉
사랑도 시도, 죽음으로 정복된다 _〈실비아〉
우리는 모두 우주에서 가장 작은 원 _〈탱고 레슨〉
3. 예술 혹은 예술가
이 사람아, 예술에 완성이 어디 있나! _〈파이널 포트레이트〉
미치고, 지치고, 홀린 _〈고흐, 영원의 문에서〉
우린 모두 잘못 듣고, 잘못 소리 내고 있다 _〈불멸의 연인〉
시인의 영화에 왜 시가 없을까 _〈토탈 이클립스〉
망하거나 죽지 않고 그저 변화할 뿐이야! _〈벨벳 골드마인〉
두 개 이상의 세계에서 _〈늑대의 시간〉 187
이 도저한 격동은 내 안의 충동인가, 당신으로 인한 도발인가 _〈카르멘〉
4. 광기 혹은 역사
누구나, 누구에게든 악마가 될 수 있다 _〈다운폴〉
선을 위한 파괴는 존재하는가 _〈오펜하이머〉
반전되는 꿈, 다시 반전되는 삶 _〈버디〉
검을 쓸 수 없는 사무라이는 무얼 먹고 사는가 _〈할복〉
암살자는 아직 죽지 않았다 _〈자칼의 날〉
AI와 사랑할 수 있을까 _〈엑스 마키나〉
5. 영화란 무엇인가
“누구한테 한 말이야?” “관객들한테!” _〈미치광이 피에로〉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모습 _〈당나귀 발타자르〉
세상에서 가장 ‘정신 나간’ 영화 _〈위대한 피츠카랄도〉
날 못 믿겠어? 내가 영화야! _〈로스트 하이웨이〉
‘영화’라는 흡혈귀 _〈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기적은 ‘지금, 여기’ 진짜로 일어난다 _〈오데트〉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했다. 시집 《커다란 하양으로》 외 7권, 산문집 《파충류 심장》 외 4권을 냈다. 시로여는세상작품상, 현대시작품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프로젝트 록밴드 ‘엘리펀트 슬리브’ 보컬로 〈맴도는 나무〉라는 전무후무 저주받은 앨범을 냈다. 〈제네시스〉 등 4편의 연극에 배우로 출연했다. 장차 그림 유망자(?)가 되거나 무대를 불사르는 노인 말고 할 게 없는 철없는 중년을 지나고 있다.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었어?”
장 뤼크 고다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까지,
영화광에 의한, 영화광을 위한 영화 이야기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었어?’ 시인 강정이 이 책에 담은 30편의 영화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시인이자 뮤지션, 연극 무대까지 진출한 ‘캐릭터’ 강정이 꼽은 영화답다.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여행자〉로 시작해, 명배우 알 파치노가 이제 막 “알(?)에서 깬 직후” 촬영한 〈광란자〉에 이어, 장 뤼크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 등을 거쳐, 카를 드레이어의 〈오데트〉로 끝을 맺는다. ‘영화란 무엇인가’란 주제에 한 장을 할애할 만큼 영화에 대해 다각도로 사색해온 시인은 영화를 일상의 오락거리로 받아들이는 관점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라는 매체를 의심하고 낯설게 보게 하는 작가주의 영화까지 두루 섭렵한다. 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선뜻 즐겁게(?) 감상하기는 힘든 장 뤼크 고다르나 로베르 브레송, 베르너 헤어초크의 영화들이 영화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주며 영화의 세계로 한 단계 깊숙이 빠져들게 한다. 그럴 때 영화는 오락이자 예술이 되며, 삶의 위안인 동시에 각성의 통로가 된다.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영화광들에게 이 책은 희소식이다.
“영화를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시와 소설, 음악과 미술, 철학과 역사…
한 편의 영화에서 발굴해낸 다채로운 코드와 메시지
시인이 쓰고 그린 영화들을 보면서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영화를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세상의 모든 예술문화를 섭렵한 듯한 시인의 폭넓은 스펙트럼은 한 편의 영화에서도 다채로운 코드와 메시지를 발굴해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 〈오펜하이머〉에서는 불교의 교리와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며 영화가 우주 발생의 원리를 한 인간의 영고성쇠를 통해 반추함을 짚어낸다. 글램록을 소재로 한 영화 〈벨벳 골드마인〉을 이야기할 때는 문학계의 ‘록스타’ 오스카 와일드와 전천후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의 삶을 교차하며 음악 영화가 가진 함의를 풍부하게 펼쳐낸다. 시인을 다룬 영화 〈실비아〉(실비아 플라스)와 〈토탈 이클립스〉(랭보와 베를렌)를 다룰 때, 시인의 기준은 더욱 첨예해진다. 〈실비아〉를 “적어도 이 영화는 시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높이 사는 반면, 〈토탈 이클립스〉에 대해서는 “시인의 삶을 다룬 영화에 시의 정수가 안 느껴진다”고 날카롭게 평가한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시와 소설, 음악과 미술, 철학과 역사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이 책은 영화 자체의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영화 너머의 세계로까지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한 권의 풍요로운 교양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