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단편 미학을 구경하기란 여간한 행운”이라는 평을 받은 『네모 돼지』, “그간 응모된 모든 단편들 중에 감히 최고라고 할 만하다.”는 평을 받으며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거머쥔 『제후의 선택』으로 단편소설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 바 있는 김태호 작가의 단편집 『신의 알바』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신의 알바』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모두 인생의 가장 푸른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십 대들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서, 우정과 사랑의 경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어느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십 대들이 각자의 성장통을 오롯이 겪어 내고 끝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여섯 편의 이야기.
목차없음.
1972년 충남 대천에서 태어났다. 세종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한겨레 SI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서 그림책을 공부했다. 동화 「기다려!」로 제5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림책 『아빠 놀이터』를 쓰고 그렸으며, 단편동화집 『네모 돼지』, 『제후의 선택』 중편동화 『신호등 특공대』, 『파리 신부』 그림책 『아빠 놀이터』, 『삐딱이를찾아라』, 『엉덩이 학교』, 청소년 소설 『별을 지키는 아이들』, 『일 퍼센트』 등을 썼다. 단편동화집 『제후의 선택』으로 2016년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동화 『산을 엎는 비틀거인』으로 2017년 열린아동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작품 활동을 하면서 초중고등학교 강연을 통해 많은 독자들을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장통’은 바로 변장한 ‘축복’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모두가 이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신의 알바』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모두 삶의 어느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십 대들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독자 개개인의 이야기와 조우해 새롭게 탄생하는 서사는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고, 기존의 보편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작가의 사유는 전작들을 갱신한다. 작가의 깊은 사유는 저절로 넓고도 선명한 이야기가 되는 법이다. 오랜만에 청소년 소설로 돌아온 김태호 작가의 사유는 어디쯤 와 있고, 또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까. 허망하게 사라져 간 아이들에게 묻지 못했던 삶의 선택을 「선녀 콤플렉스」 속 해라의 간절한 외침으로 답해 본다. “엄마, 나 살고 싶어!”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에 실린 여섯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살아야 한다’이다. 작가는 인생의 가장 푸른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십 대들에게 살아가면서 「유학생 고준하」처럼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처음’도 경험해 보고, 「콩」처럼 갑자기 찾아온 첫사랑과 빈자리만 남기고 떠난 이별의 쓰라림도 느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신의 알바」와 「지박령 열차」에서처럼 때론 뜻하지 않은 고난을 만날 수도 있는데, 그땐 지지 않고 맞서서 버티어 낼 용기도 배워 나갔으면 좋겠다고도. 미래를 계획하고, 목표를 하나씩 이뤄 나가는 삶도 좋고, 하루하루 생각 없이 즐겁게 지내는 삶도 가치 있다. 어떻게 살든 그건 내 삶이다. 내 인생은 오직 나의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인데,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군자의 비현실적인 말은 아닐 것이다. 과정에서 결과가 나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괴로운 과정에서 최선의 올바름, 아름다운 삶, 소중한 가치를 찾게 되는 십 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는 지금의 고민과 방황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맞닥뜨린 현실에 물러서지 않고 한 번 더 용기를 내게 될 것이다. “이건 너한테 받은 만큼 돌려주라는 신의 알바였어!” 피해자에게 ’용서라는 고통’을 강요하지 않는 새로운 학폭 서사 단편집의 첫 문을 여는 표제작 「신의 알바」는 고등학생이 된 영지가 중학교 때 자기를 괴롭히던 수민이를 다시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이 학폭 가해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수민이는 영지에게 “어릴 때 친구끼리 장난 좀 친 걸 가지고 그러냐?”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하지만, 그런 수민이에게 영지는 “너한테는 장난이었지? 당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이라고 억울한 듯 쏘아붙인다. 수민이는 정말 몰랐을까? 수민이는 사실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 사회가 그리고 또래 그룹이 자기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학폭 가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수민이가 알고 있든 없든 영지는 나름의 방식으로 수민이가 알 수밖에 없게 만든다. 자기가 겪은 고통을 수민이도 똑같이 경험하게 한 것. 가해자 수민의 사유는 피해자 영지가 겪은 아픔이 자기에게 찾아왔을 때, 영지와 똑같이 피해를 당하고 억울함으로 가슴이 미어터질 때, 그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건 너한테 받은 만큼 돌려주라는 신의 알바였어!”라고 차갑게 말하며 끝내 수민이로부터 벗어나고야 마는 영지. 자기 힘으로 다시 삶의 주도권을 야무지게 움켜쥔 영지의 승리가 뭉클하다. 이렇듯 표제작 「신의 알바」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느 학폭 서사와 다르다. 작가는 피해자 영지의 ‘분노’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펼친다. 영지의 분노는 억울함에서 시작된다. 가해자의 피해의식이나 강자의 분노는 규범이고 약자의 억울한 감정은 분노로 간주되곤 하는 현실에서, 피해자는 분노를 표출해도 되는지부터 고민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용서마저 강요당한다. 마치 약자의 유일한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의 알바」의 영지는 우리가 흔히 접하던 피해자 캐릭터와 다르다. 영지는 너무나 당연하게 용서를 구하는 수민이를 용서하는 대신 자기가 당한 만큼 똑같이 되갚아 주는 쪽을 선택한다. 피해자에게 용서라는 또다른 고통을 강요하지 않고, 처벌로 정의를 구현하는 서사가 무척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