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구순을 훌쩍 넘긴 서정심(마리아·92세) 전 한국외방선교회·한국외방선교수녀회 후원회장의 자전적 신앙 에세이다. 지은이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았지만, 고 최재선 주교를 만나 봉사하며 살아온 세월이 참으로 행복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었던 삶의 궤적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들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한국외방선교회와 한국외방선교수녀회의 미션인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코 16, 15)를 구현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살아온 생생한 경험담과 에피소드가 가득 담겨 있다.
그뿐 아니라 구도자적 삶을 살아왔던 목자 최재선 주교가 성인품에 오르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선교회 태동 과정 등을 반추하며 집필했다고 한다. 『사랑의 열매』는 가톨릭 신자는 물론 가톨릭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신앙 안내서이기도 하다.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성정이 온유했던 최 주교님 이 책을 통해 부활하신 것 같다”고 평했고,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재홍 교수는 “이 책을 읽으며 세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며 “이런 삶도 있구나, 이렇게 거룩한 ‘낮음’도 있구나.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라고 고백한다.
추천사1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로마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추천사2 정두영 보나벤투라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총장)
추천사3 고정란 마리휘앗 수녀(한국외방선교수녀회 총장)
제1부 한국외방선교수녀회 후원회 초석을 놓으며
제2부 최재선 주교님과 한국외방선교회
제3부 나의 삶 나의 신앙
저자 후기
부록 1 한국 천주교회 해외 선교 현황
부록 2 성경 로사리오에 따른 15 신비의 묵상
1933년 서울 종로 창신동에서 출생. 1956년 이문섭과 결혼 후 시동생 이만섭 요셉(전 국회의장)의 권유로 1966년 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천주교신자가 되었다. 1973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최재선 주교를 도와 한국외방선교회·외방선교수녀회 후원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청담동성당, 잠실성당, 둔촌동성당 등에서 두루 봉사했고 현재 하남 미사강변성당에서 신앙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 ‘기도하며 일하라’를 평생의 모토로 삼았던 부산교구 초대교장 역임한 고 최재선 주교의 삶의 궤적을 반추하는 이야기 - 한국외방선교회·한국외방선교수녀회 창설자 최재선 주교 협력자였던 서정심 전 후원회 회장의 신앙고백이자 회고록! - 한국외방선교회와 선교수녀회의 태동과정과 활약상이 흥미롭다. 최재선 주교 약사 1912년 경북 울주군 언양산골 마을 구교우 집안의 8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1926년 당시 소신학교였던 대구 성 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했다. 전 서정길 대구대교구장 대주교와 장병화 전 마산교구장 주교가 신학교 동기생이다. 1938년 대구대교구 사제 서품을 받았고 같은 해 전북 수류본당 주임신부로 사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경북 영천본당, 경북 김천 지좌본당, 김천 황금본당, 대구 계산본당 주임을 두루 역임했으며, 1945년 김천 성의중·고등학교장, 대구 대건중·고등학교장을 역임했다. 1957년 1월 부산대목구가 대구대목구로부터 분할·설립되자 최재선 신부는 초대 부산대목구장으로 임명됐고 그해 5월 정식으로 주교 서품을 받았다. 사제 서품 19년 되던 해였다. 1962년에는 초대 부산교구장과 재단법인 천주교 부산교구 유지재단의 이사장을 역임하며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부산교구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성모신심이 남달랐던 최 주교는 1973년 부산교구장에서 은퇴 후 1975년 한국외방선교회를, 1986년에는 한국외방선교수녀회를 창립했다. 하느님과 서구교회로부터 받은 도움과 은혜를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의 가난한 나라에 되갚기 위해서였다. 한국외방선교회와 한국외방선교수녀회는 어느덧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성장한 한국가톨릭교회의 얼굴이 되었다. 지금도 80여 명의 선교사제와 선교수녀들이 파푸아뉴기니·대만·모잠비크·방글라데시·중국 등지에서 한국가톨릭교회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해외선교에 헌신하고 선교의 풍성한 열매를 위해 기도하던 최 주교는 2008년 6월 3일 부산 성모병원에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