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태어나 1991년 서울신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함명춘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종』이 걷는사람 시인선 112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전작 시집 『지하철엔 해녀가 산다』에서 “현대의 일상 속에 그림자처럼 살고 있는 신화적 무한을 직시”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인간의 세속에 깃든 근원적 힘에 주목한다. 큰 비유나 장치 없이 여백을 두고 담박하게 써 내려간 시들은 한결같이 “담고 넣고 채우기 위한 가방이 아니라/꺼내고 버리고 비우기 위한 가방”(‘시인의 말’), 즉 ‘바람의 가방’을 자처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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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 『무명시인』 『지하철엔 해녀가 산다』를 냈으며,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걷는사람 시인선 112 함명춘 시집 『종』 출간 “고드름의 전생은 추위와 배고픔에 얼어 죽은 나무뿌리였으리” 가장 어두운 곳부터 별이 뜨는 것을 기억하는 ‘바람의 가방’을 닮은 시 춘천에서 태어나 1991년 서울신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함명춘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종』이 걷는사람 시인선 112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전작 시집 『지하철엔 해녀가 산다』에서 “현대의 일상 속에 그림자처럼 살고 있는 신화적 무한을 직시”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인간의 세속에 깃든 근원적 힘에 주목한다. 큰 비유나 장치 없이 여백을 두고 담박하게 써 내려간 시들은 한결같이 “담고 넣고 채우기 위한 가방이 아니라/꺼내고 버리고 비우기 위한 가방”(‘시인의 말’), 즉 ‘바람의 가방’을 자처하는 것만 같다. 평범 속에 비범이 있고, 평범 속에 신성(神聖)이 있다는 듯이 시인은 웅장하고 거대한 존재들에 눈 맞추기보다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것, 고독한 것, 그리고 이름 없는 것을 향하여 서 있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보다는/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의미 없는 것들을 위해/온종일 빛을 뿜어 줄/햇볕 닮은 시를 낳고 싶다”(「등대집」)라는 다짐이야말로 이 시집에 배어 있는 가장 깊은 정서일 것이다. 시인은 세상으로부터 “뜯기고/베이고 할퀴이고 던져지고/쫓겨 온 것들”(「비 갠 후」)이 어떻게 우리 삶의 뿌리가 되는지,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지 내내 증언한다. 그리하여 이 시집 속에 놓인 시들은 온몸으로 읊는 기도인가 하면,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 울림을 주는 ‘종소리’를 닮았다. 이러한 시인의 인식으로 인하여 어느 산골 후미진 식당에서 먹는 국수는 ‘신선국수’로 명명되고, “상처를 받고 때론 상처를 준 나에게도/배신을 하고 때론 배신을 당한 나에게도/한 그릇의 따뜻한 국수를 먹여”(「신선국수」)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리라. 이렇듯 시인은 우리가 놓쳐 버린 것, 간과한 것들을 사뭇 극진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 시선 속에서 눈송이는 “소신공양하듯”(「소신공양」) 내리고, 놀이터의 시소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수평선”(「후예」)처럼 여겨진다. 물론 시인에게도 ‘승진’이나 ‘고층 아파트’ 같은 욕망이 꿈틀대지만 그는 “맘속 소의 고삐를 붙들어 매 달라”고 빌고, “극락이 별거더냐”(「봉은사」) 소리치며 자신을 옭아매는 것들을 벗어던지기 위해 묵언하고 기도한다. “제 눈물의 뿌리를 향해 다시 돌아”(「비상」 )오는 ‘새’, “날개가 있어도 얼마 못 가/다시 돌아오는 가슴이 작은 새들”(「돋보기」)이라는 표현은 세속화된 고통의 고귀한 결실을 보여 주며, 시인 함명춘이 추구하는 비어 있음으로써의 수사학을 가장 잘 성취해낸다. 장정일 시인이 해설에서 쓴 것처럼 함명춘은 “세속적 고통은 현실에 붙박은 ‘뿌리’를 감싸안”음으로써, “현실로부터의 도피(극복)는 ‘날아오름’으로 묘사”함으로써 살아갈 의미와 용기를 찾는다. 독자들은 “나는 나를 꽉 껴안았다/늘 바람 잘 날 없는 나무의 품속 한 귀퉁이에서”(「물방울」) 같은 구절을 통해 뿌리의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그런가 하면 장마기에 불어난 물 때문에 지붕 위에 올라간 소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 「지붕 위에 소」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재해라는 속수무책의 상황에서 결국 소의 꿈이 이뤄지는 장면을 통해 자유와 해방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추천사를 쓴 김민정 시인은 시집 『종』을 “모두 다 울고 웃는 얼굴일 적에 저 홀로 울지 않고 웃지 않는 얼굴일 적에 무표정한 무채색의 시집”이라고 평하며, 함명춘의 새 시집이 종(鐘)을 닮았다고 표현한다. 시집을 펼치면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종 이야기」) 또 낮추는 종, 최대한 힘을 빼었기에 그만큼 멀리 퍼지고 또 멀리 달아나는 종소리의 미학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