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탄신 100년을 맞은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70년 정치 인생에서 언론매체와의 회견과 대담, 국회·정당 등 각종 회의석상의 발언, 유세장이나 대중 집회의 연설 등에서 엄청난 ‘말’을 쏟아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말을 잘하고 많이 했던 정치인’으로 국민에게 각인되어 있다.
1964년 4월 20일, 정부는 회기 만료 하루를 앞두고 ‘국회의원(김준연) 체포 동의 요구의 건’을 국회에 제출하고 당일 이를 가결하려고 시도하였다. 민정당과 삼민회, 두 야권 교섭단체는 합동 의원총회를 열어 본회의에서 의사 진행 변경 발언으로 시간을 끌어 김준연 의원의 회기 중 구속을 면케 하자고 결의하고, 김대중 의원에게 대한민국 국회 최초의 필리버스터 임무를 맡겼다.
오후 2시 37분에 시작하여 저녁 7시 56분에 끝난, 장장 5시간 19분에 걸친 김대중 의원의 이 필리버스터는 그야말로 ‘연설의 전설(Legend of Speech)이자 연설의 정석(Art of Speech)’이었다. 김대중 의원의 이 필리버스터 국회 발언을 책으로 기획·편집하고 주석과 해제를 붙인 김학민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은 야권 지도자 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집을 여러 권 엮어낸 바 있다.
일러두기 _
김대중 의원의 5시간 19분 국회 발언 전문 _
주석 _
5시간 19분 필리버스터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회고 _
관련 자료 _
1. 국회의원 체포 동의 요청의 건 (수신 법무부장관 민복기)
2. 국회의원 체포 동의 요청의 건 (수신 검찰총장 신직수)
3. 국회의원 체포 동의 요청의 건 (수신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서주연)
해제 _ ‘김대중 연설’의 기술 또는 예술 _김학민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 5·6·7·8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의회민주주의자.
5·16쿠데타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과 전두환 폭압정권 하에서 납치·테러·사형선고·투옥·망명·가택연금·도청 등 온갖 탄압과 고초를 겪었으나 독재정권에 끝까지 맞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고,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민주 인권투사로 널리 알려졌다.
1971년의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향토예비군 폐지, 미·일·중·소 4개국에 의한 반도전쟁 억제 보장, 노사공동위원회 설치, 남북한 사이의 단계적·비정치적 교류, 대중경제론 등 획기적인 공약으로 선풍을 일으켰으나 박정희 후보 측의 관권·불법·부정선거로 패배하였다.
이후 3차례 더 대통령직에 도전한 끝에 1997년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미증유의 국가경제위기를 무난히 수습하였으며, 한국의 IT 산업, 한류 문화 융성의 초석을 깔았다. 2000년 6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남북의 평화적 교류와 화해를 모색해 대외적 명성을 높였다.
2000년에는 남북의 화해 분위기 조성, 한국 및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2002년 노무현 정권의 창출은 그의 생애에 있어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 탄신 100년,
60년 전 40세 김대중 의원의 5시간 19분 필리버스터 전문 최초 공개!
올해로 탄신 100년을 맞은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70년 정치 인생에서 언론매체와의 회견과 대담, 국회·정당 등 각종 회의석상의 발언, 유세장이나 대중 집회의 연설 등에서 엄청난 ‘말’을 쏟아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말을 잘하고 많이 했던 정치인’으로 국민에게 각인되어 있다.
‘말’은 ‘글’로 변환되지 않으면 바람처럼 흘러가, 주장하고자 하는 본질은 잊히고 현장의 이미지만 남는다. ‘정치인 김대중의 말’도 마찬가지다. 그의 모든 ‘말’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이미지가 아니라, 숱한 노력과 숙고의 결정체가 들어있다.
곧 그의 ‘말’ 속에는 정치 인생 수십 년 동안 고뇌해온 국가 운영의 철학과 원칙, 제반 사회정책 및 그 아이디어 등의 귀중한 알갱이들이 차곡차곡 챙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을 ‘글’로 읽는 작업은 ‘김대중 바로 알기, 김대중 깊이 읽기’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다.
연설은 ‘주장’을 펴서 다중을 ‘설득’하는 것이 요체다. 김대중 대통령은 ‘훌륭한 연설자’로서 가져야 할 조건과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는 강렬하게 자기주장을 펴서 청중을 부드럽게 설득한다.
첫째로 폭넓은 지식이다. 이는 청중에게 깊은 믿음과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는 각계각층의 청중에게 맞춤형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
둘째로 통찰력이다. 그는 연설 시점의 정치·사회적 정황, 청중이 갈구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통찰하고는 확신에 찬, 그리고 당당한 어조로 그 대안과 해결책을 논리적으로 제시하여 공감을 유도한다.
셋째로 언어의 소구력(訴求力)이다. 그는 고전 명저의 명구(名句)와 속담·고사를 인용, 비유하고, 서민의 언어와 유머를 적절하게 구사하여 자연스럽게 청중과 소통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훌륭한 연설자’로 만든 것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표현되는 그의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이다. 말만 앞세우고 행동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의 연설에 박수를 보낼 사람은 없다.
1964년 4월 20일, 정부는 회기 만료 하루를 앞두고 ‘국회의원(김준연) 체포 동의 요구의 건’을 국회에 제출하고 당일 이를 가결하려고 시도하였다. 민정당과 삼민회, 두 야권 교섭단체는 합동 의원총회를 열어 본회의에서 의사 진행 변경 발언으로 시간을 끌어 김준연 의원의 회기 중 구속을 면케 하자고 결의하고, 김대중 의원에게 대한민국 국회 최초의 필리버스터 임무를 맡겼다.
오후 2시 37분에 시작하여 저녁 7시 56분에 끝난, 장장 5시간 19분에 걸친 김대중 의원의 이 필리버스터는 그야말로 ‘연설의 전설(Legend of Speech)이자 연설의 정석(Art of Speech)’이었다.
첫째, 김대중 의원은 사건의 근원적 발생 원인을 정확히 짚었다. 당시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이 밀실에서 이뤄져 국민은 물론 야당 국회의원조차 그 교섭 내용이나 과정을 알지 못해 이런저런 풍설이 흘러나오게 될 수밖에 없음을 질타하고, 이는 집권 정부 여당의 책임임을 분명히 했다.
둘째, 김대중 의원은 발언 내내 의회민주주의자임을 견지했다. 국회의원 하나하나는 헌법기관으로서 국민을 대변하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의회와 관련해서는 1차 의회가 조사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김대중 의원은 어떠한 경우라도 인권이 보호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구속 동의 대상자인 김준연 의원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 하의 독립운동 투신과 투옥, 정부 수립 시의 공헌, 민주주의 확립에 대한 기여 등을 들어 수차례 구속의 부당함을 주장하였다.
넷째, 김대중 의원은 역지사지의 사례를 들어 집권세력을 이해하고 다독이면서 대승적으로 결단하도록 유도했다. 장면 정권하의 소급입법을 반성하면서 군사정부의 정치정화법을 비판하며, 모든 사안을 역지사지의 시각으로 협의하여 국가발전을 이뤄 나가자고 주장했다.
다섯째, 김대중 의원은 행정부와 의회, 여당과 야당이 국가발전의 공동운명체임을 설득하는 한편, 정부 여당의 독선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지적했다. 당시 학생시위가 격화하는 상황에서 야당을 배려하지 않고 집권세력이 독선으로 치닫는다면 파국이 올 것을 엄중하게 경고했다.
김대중 의원의 이 필리버스터 국회 발언을 책으로 기획·편집하고 주석과 해제를 붙인 김학민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은 야권 지도자 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집을 여러 권 엮어낸 바 있다.
주해 / 김학민
말, 연설, 웅변
모든 동물 중에서 사람만이 ‘말’을 한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도 말을 하게 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전적 의미로서 ‘말’은 ‘사람의 생각을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로 정의된다. 사람에게 그리도 중요한 ‘말’이 이렇게 당연 하고도 간단한 구절로 정의되지만, 사람의 일생에서 목숨을 지키는데 필요한 공기와 음식을 빼놓고 말 만큼 사람의 삶과 밀착된 것도 없다. 한마디로 말이 없는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연설Speech, 演說은 사람의 사회생활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꼭 필요한 ‘말의 묶음’이다. 곧 연설은 ‘불특정 다수 또는 소규모 공동체 성원들 앞에서 자신의 견해나 주의, 주장 따위를 얼개를 세워 조리 있게 정리하여 말하는 행위’이니, 사회적 동물인 사람으로서는 모두가 나름의 ‘연설’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 고 웅변Oratory, 雄辯은 듣는 이들 앞에서 자기의 주의, 주장을 당 당한 몸짓과 유창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호소하는 보다 ‘기능화 된 연설’이라 할 수 있다.
연설은 궁극적으로 ‘설득’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과의 관계를 살피고, 그 반응에 즉각적으로 조응해야 한다. 그래 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문학작품과는 달리 연설은 도구적·실용적인 목표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훌륭한 연설자’ 는 당대의 정치사나 사회사를 대변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수사학修辭學은 그러한 ‘훌륭한 연설자’가 되기 위한, 곧 효과적으로 ‘말’을 사용하는 기술을 연마·습득하는 고전적 웅변술의 이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구한말 개화기에 독립협회가 종로 네거리에 서 만민공동회를 연거푸 열자, ‘자기표현’에 관심을 가진 개인 들이 속속 나타났다. 수백 년 봉건체제 아래서 ‘자아’를 드러낼 수 없었던 대중이 ‘연설’에 뛰어들었고, 그 바람을 타고 연설 방법에 관한 서적도 발간되었다. 『금수회의록』을 지은 안국선이 1907년에 펴낸 웅변입문서 『연설법방演說法方』이다. 이 책은 연설자의 태도, 연설의 역사, 연설 준비 등에 대하여 동서양의 명연 설문을 인용하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웅변가의 최초’, ‘웅변가 되는 법방法方’, ‘연설자의 태도’, ‘연설자의 박식’, ‘연설자의 감정’, ‘연설의 숙습熟習’, ‘연설의 종결’ 등으로 나누어 웅변술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말미 에는 ‘청년강습회의 연설’, ‘낙심落心을 계戒 하는 연설’, ‘정부 정 책을 공격하는 연설’, ‘단연연설斷烟演說’, ‘학교의 학도를 권면하는 연설’ 등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연설 예문도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