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201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이수 소설가의 장편소설 『시작된 일』이 걷는사람 소설 열세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예술을 동경하는 인물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다난한 여정을 두루 살피는 박이수의 작품은 꿈꾸는 중년의 고독하고도 찬란한 방황을 하드보일드하게 파고든다.
박이수가 창조한 이 세계엔 소설가를 꿈꾸는 지실, 시인이 되고 싶은 정선, 가수라는 꿈을 위해 어떠한 무대도 마다하지 않는 혜영이 있다. 소설은 ‘등대집’이라는 공통된 유년의 기억을 공유하는 인물들이 중년이 된 지금 꿈을 향해 힘껏 달려 나가는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날카로운 문장과 내밀한 서사를 통해 질긴 현실을 타파하려는 인물들의 갈망과 갈증까지도 녹여낸다.
소설은 지실이 운영하는 공간 도래옥을 아지트로 삼은 ‘고마리’ 회원들이 떠난 뒤의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정선과 혜영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오륙십 대 지망생들로 구성된 고마리의 회원들은 늙고 초라해졌다는 이유로 위축되고 주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자신의 꿈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책임지려는 이들로 가득한 이곳에서만큼은 자기 작품을 떳떳하게 선보이고 명예롭게 상을 받는다.
목차없음.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201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컨테이너」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부표의 전설』 『혼자라면』을 냈다.
걷는사람 소설 13 박이수 『시작된 일』 출간 “여기서 보니 저 골목 불빛들 참 이쁘다, 그치?” 꿈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이며, 꿈은 이루어지는 것인가 순정한 아웃사이더들이 부르는 꿈의 연가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201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이수 소설가의 장편소설 『시작된 일』이 걷는사람 소설 열세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예술을 동경하는 인물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다난한 여정을 두루 살피는 박이수의 신작은 꿈꾸는 중년의 고독하고도 찬란한 방황을 하드보일드하게 파고든다. 박이수가 창조한 이 세계엔 소설가를 꿈꾸는 지실, 시인이 되고 싶은 정선, 가수라는 꿈을 위해 어떠한 무대도 마다하지 않는 혜영이 있다. 소설은 ‘등대집’이라는 공통된 유년의 기억을 공유하는 인물들이 중년이 된 지금 꿈을 향해 힘껏 달려 나가는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날카로운 문장과 내밀한 서사를 통해 질긴 현실을 타파하려는 인물들의 갈망과 갈증까지도 녹여낸다. 소설은 지실이 운영하는 공간 도래옥을 아지트로 삼은 ‘고마리’ 회원들이 떠난 뒤의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정선과 혜영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오륙십 대 지망생들로 구성된 고마리의 회원들은 늙고 초라해졌다는 이유로 위축되고 주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자신의 꿈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책임지려는 이들로 가득한 이곳에서만큼은 자기 작품을 떳떳하게 선보이고 명예롭게 상을 받는다. 꿈을 가졌다는 이유로 “어쩌다 우린 이렇게 됐을까?”라고 자문하게 만드는 세계에 쉽게 지지 않으려는 인물들이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그러니 “노인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동시대의 뜨겁고 다급한 사회적 징후”(문종필, 해설)까지도 천착해내는 이 작가를 신뢰하지 않을 길이 있을까. 고마리 회원들의 시상식은 의식을 치르는 당사자에게 회원 일동이 회원의 지망 분야를 인정해 주자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말하자면 시를 쓰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소설가. 어느 분야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그게 바로 시인이자 소설가 또는 가수라는 응원의 메시지 전달이었다. ―「지실이」, 114~115쪽 혜영은 애자 언니와 트로트 가요제에서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희망과 자신감으로 눈빛이 반짝거리던 그 시절은 아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다. 그때 애자 언니가 대상을 받았고 혜영이 최우수상을 받았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뿐이었다. 거기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지역 축제장과 심지어는 환갑잔치, 나중엔 전국에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떴다방을 돌아다녔다. ―「정선이와 혜영이」, 139쪽 “덧없이 계절은 변하고 사랑했던 사람은 모두 떠나갔지만 그 후로도 삶은 지속”되듯이(이기호, 추천사), 박이수의 인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어떤 일들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라는 쌉싸름한 진리를 온몸으로 체감한다. 메아리가 되돌아오듯, 만날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고야 마는 이상하고 신비한 섭리는 이곳에서 환하고 슬픈 우연으로 발생하며, 박이수의 소설은 삶의 불확실성에 기인한 절망을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물의 삶을 묘파한다. 삼각형도 아니고 사각형도 아닌 애매한 모양새를 가진 고유한 삶들이 유연하게 얽히고 헤어지는 풍광은 꿈을 향한 열망을 하나로 결집하는 과정으로 기능함으로써 불확실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 작은 위로를 안긴다. 해설을 쓴 문종필 문학평론가는 “박이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장자리에 놓인 아웃사이더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끝까지 자신의 꿈과 길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이라는 핵심을 짚어낸다. 동시에 이 소설이 쓰인 당위가 “이들의 꿈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파하며, “그럼에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꿈의 모습”을 잘 작가가 녹여내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막 시작되었으나 어쩌면 이미 오래전 시작되었을지 모르는 일, 골목의 아웃사이더들이 모여 각자의 최선을 다해 서로의 곁을 보듬는 이야기가 이곳에 있다. 깜깜한 골목을 밝히는 불빛처럼, 어두운 현실에서조차 가장 자기다운 자그마한 빛을 내는 인물들과 그 곁에 서면 오롯이 감지되는 은은한 온기를, 박이수의 소설이 잠재한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