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세상 밖으로 나온 사육 곰 ‘빠삐용’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은 그림책. 불법 사육 농장을 탈출한 반달가슴곰 뉴스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그림책이다. 뉴스 형식의 텍스트는 사람의 관점을, 곰의 동선을 따라가는 이미지는 탈출한 곰의 관점을 대조적으로 보여 주며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연출한다.
강렬한 색감과 역동적인 선, 속도감이 느껴지는 구도는 그림책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단순한 사육 곰의 탈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철창' 안에 살고 있는 무수히 많은 동물들의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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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 농장을 탈출한 반달가슴곰 뉴스를 보고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을 떠올렸습니다.
그 곰도 자유를 찾아 탈출한 건 아닐까 상상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갑자기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는 ‘어느 날’이 있으니까요.
평생 철창 안에서 살아야 했던 사육 곰들과 한때 지리산을 누볐던 KM-53을 기억합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한 입만!》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철창 밖으로 나온 사육 곰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어느 날 밤, 반달시 근처 야산에 있는 불법 사육 곰 농장에도 천둥과 번개 동반한 세찬 비가 내립니다. 뜬장에서 태어나 철창 밖으로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사육 곰들. 갑자기 내리친 벼락에 녹슨 뜬장의 쇠문이 열립니다. 쭈뼛쭈뼛 철창 밖으로 나온 어린 곰 두 마리. 그들은 본능적으로 사육장 밖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이내 곰 두 마리가 탈출했다는 뉴스 속보가 방송되고, 경찰은 포수와 수색견을 동원해 곰들을 쫓기 시작합니다. 시민들에게 되도록 외출을 자제하라는 재난 문자도 발송됩니다. 시민들은 점점 공포에 떨기 시작합니다. 한 마리는 인근 야산에서 발견되자마자 사살되고, 나머지 한 마리는 계속 추적합니다. 하지만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밤이 깊어져 수색은 잠시 중단됩니다. 야생 동물 전문가들은 탈출한 곰이 먹이를 찾아 도시로 내려올 수 있다며 최대한 빨리 곰을 포획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음 날, 경찰은 헬기와 드론까지 동원해서 수색 작업을 확대합니다.
며칠 동안 수색 작업은 계속되지만 곰의 자취는 어디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신출귀몰한 모습 때문에 유명한 탈출 영화의 주인공 ‘빠삐용’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처음에 공포에 떨던 사람들은 관심도 점점 사라지고 다시 평범한 일상을 보내게 됩니다. 과연 빠삐용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한 생명으로 태어나 마땅히 누릴 자유, 그리고 안전한 공존을 이야기하다
지리산을 누비던 반달가슴곰 KM53, 일명 ‘오삼이’를 기억하나요? 반달가슴곰은 국제 멸종 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되어 보호받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300여 마리의 ‘사육 곰’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 ‘사육 곰’은 좁은 철창에서 웅담(곰의 쓸개)을 채취하기 위해 기르는 곰을 말합니다. 1980년대 정부가 농가 소득을 늘리기 위해 곰을 사육을 허가하였으며, 믿기지 않겠지만 여전히 곰 사육과 도살은 합법입니다. (다행히 2026년부터 곰 사육 금지법이 전면 시행될 예정입니다.) 사회적 반감이 커지면서 곰 사육 농장은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고 있으며, 사육 곰은 방치되어 철창 안에서 한 번도 나오지 못하고 죽거나, 낙후된 시설로 탈출했다가 사살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빠삐용》은 2021년 불법 사육장에서 벗어나 5개월 동안 잡히지 않아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얻은 실제 ‘사육 곰’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그림책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육 곰 탈출 사건은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담론이지만, 사육 곰 자체는 철저히 인간의 이기적 욕심 때문에 탄생한 비극입니다. 사육 곰뿐 아니라 오락, 관광, 보양식, 옷의 재료, 실험 도구 등 그저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유린당하는 동물은 수없이 많습니다. 부모를 잃고 혼자 지내다 스트레스로 동물원에서 탈출해 도시를 배회한 얼룩말 ‘세로’, 농장에서 탈출해 겨우 20m 앞에서 서성이다 사살된 암사자 ‘사순이’까지… 최근 철창에 갇혀 있던 동물들의 가슴 아픈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됩니다. 이제 인간과 동물이 안전하게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때입니다. 《빠삐용》은 단순한 사육 곰의 탈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철창’ 안에 살고 있는 무수히 많은 동물의 ‘자유’와 인간과의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짙은 먹구름과 세찬 장대비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다
《빠삐용》은 ‘사육 곰 탈출 사건’에 대한 양면성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텍스트와 이미지 서사를 대조적으로 구성하였습니다. 텍스트는 ‘탈출 사건’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평범한 날씨 뉴스에서 시작해 곰이 탈출했다는 속보가 이어지고, 사건은 점점 다급하고 중대하게 묘사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사그라집니다. 한 사건에 대해 과열되었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사람들의 군중 심리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이미지는 도망칠 수밖에 없는 곰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세찬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 쭈뼛쭈뼛 철창 밖으로 나온 곰은 영문도 모른 체 경찰과 수색견에 쫓기면서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곰이 떨어진 이후, 곰은 더 이상 쫓기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자유를 찾아 떠나는 주체적인 존재로 바뀌게 됩니다. 어느새 모험을 즐기듯 공간을 넘나드는 곰의 여정을 응원하게 됩니다.
《빠삐용》은 주제뿐 아니라 장면마다 펼쳐지는 화려한 색감과 과감한 구도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오랫동안 어린이책 일러스트 작업을 했던 김선배 작가는 한 장면마다 미묘한 색감과 선의 변화를 시도하며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곰이 쫓기는 초반에서는 어둡고 무거운 파란색, 초록색, 보라색 등이 배경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후반에는 하늘과 바다 배경에서는 밝은 파란색과 흰색이 주조 색을 이루며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 변화를 주었습니다. 구도에서도 초반에는 우상향 구도를 활용하여 계속 쫓기는 곰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비, 먹구름, 바위, 능선, 파도 등에서도 역동적인 선과 거친 질감이 표현되면서 이미지의 서사를 더욱 극적으로 연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