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삶을 견디기 위한 책읽기. 『엄마가 있는 서가』는 책의 힘을 빌려 자신의 삶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정은정 저자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책들을 통해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사건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발견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지만, 학위를 마치지 못한 그가 주부, 엄마, 학생, 직장인으로 살아오다가 사서자격증을 따고 도서관에서 배가와 책수선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이 ‘나자’를 만나듯, 작가는 우연히 마주치는 책들과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사람과 삶, 존재의 의미를 발견해 간다.
의지할 것이라곤 그렇게 찾은 책밖에 없었기에 그 목소리를 등불 삼아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나간다. 글에 이끌려 가보니 엄마의 외로움이 시작된 어떤 사건에 이르게 되었고, 그 이야기는 차마 다 하지 못하지만, 오래된 상처를 발견하며 비로소 애도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에셔의 <손을 그리는 손>처럼 서로 소통하고 덮어 주고 지탱하고 있는 엄마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치유할 기회가 된 것이다.
프롤로그. Somewhere in Time
아줌마, 나를 그리다
로실드의 바이올린
아카풀코에 대한 희망
우리가 뭔데
가족이라는 착각
엄마와 병아리콩
너의 마음속엔 강이 흐른다
봄날의 물김치
당신과 나의 레시피
청바지 가랑이가 터진 날
그래 좋아
착각 시리즈
꽃이 피지 않는 목련의 운명
구멍 뚫린 상자 속 양 한 마리
In un'altra vita또 다른 삶에서
말하다 그리고 간직해 두다
책에도 운명이 있다
위대한 유산
나만의 자동기술
일이 너무 하고 싶어요
폴 세잔처럼
내가 그림이 되다
할머니 담배 ‘태던’ 시절에 대하여
경멸과 증오가 유산이 되지 않게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아직도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
꽃, 별 그리고 나의 멜랑콜리
에필로그. Life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오렐리아의 멜랑콜리아 시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앙드레 브르통의 ‘객관적 우연’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다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한국 프라도 사제회의 직원으로 7년을 근무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그림을 그리며 혼자된 엄마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시댁에서 주부로 살다 보니 늘어나는 책을 감당할 수 없어 파괴스캔을 하다가 오히려 책과 도서관 세상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았다. 사서자격증을 따고 도서관에서 배가와 책수선 봉사를 하게 된다. 글이 완성되어 출판되면 직접 책을 엮어 엄마에게 선물할 꿈으로 예술책 제본을 배우고 있다.
『엄마가 있는 서가』는 엄마와 책 사이를 ‘있음’이 매개하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엄마라는 단어는 가장 사랑스러운 단어이지만 실제로는 엄마, 여자, 딸, 아내를 뭉뚱그려서 부르는 아줌마라는 호칭 속으로 타자들에게는 쉽게 수렴되는 연약한 단어이다. 아줌마라는 호칭 속에는 분명 상대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단정 짓고자 하는 경멸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 정은정은 기혼 여성이 된 후 자신의 일상 속에서 가해지는 작은 폭력들을 쉽게 소화해 내지 못해서 그 폭력들을 자꾸 되새김질했다. 소처럼 뱉어 내고, 되씹고, 일하고, 잊으려 애쓰고, 납득하고 받아들이려 애썼지만, 그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가 몸과 마음이 아파졌다. 그 폭력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것은 책이다. 그래서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이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배가와 책수선 봉사를 하면서 책 곁에 있으려고 애썼다. 책은 자꾸자꾸 작아지고, 지워지는 ‘위대한’ 인간을 놓지 않는 힘을 준다. ‘위대한’이란 관형어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가 책 읽는 저자를 부르던 따스한 호칭에 불과하다. 책은, 그 책이 꽂혀 있는 서가는 해변에 써진 ‘위대한 인간’이라는 글자가 지워지지 않게 버텨 주는 방파제 같다.
책의 다른 이름은 음악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하고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가 쓴 서평이나 예술평이 아니다. 저자 삶의 작은 순간에 책들이 개입하면서, 무시되는 삶에 의미를 되돌려주고 폭력에 노출당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는 책읽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읽는다. 저자는 책을 읽고 쓰는 일을 “온종일 불린 병아리콩을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서 가족들과 먹는 것”이라 부르고 싶어 한다. 따듯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그러므로 아버지가 자신을 불렀던 ‘위대한’이란 농담의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오래전 불문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으나 학위를 끝내지 못해서, 문학으로 밥벌이를 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긴 시간을 문학과 함께 견디며 숨을 쉬며 하루하루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서 그렇게 ‘살아간다.’
나의 자존을 지키며 살아가는 과정은, 엄마 삶의 자존을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낳아 준 엄마로부터도, 길러 준 엄마로부터도, 납득하지 못하는 아픔들을 감내해야만 했던 엄마의 삶을 곁에서 바라보면서, 저자는 쓴다. 엄마의 이야기를, 그러므로 나의 이야기를 책의 자리인 ‘서가’에 불편한 웅크림 없이 편안하게 ‘있게’ 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