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면서도 익숙한 판타지의 세계!
이 그림책 『용이 지키고 싶은 소중한 보물』은 용과 공주, 보물과 기사가 나오는 전형적인 판타지 동화입니다. 그러나 보물을 찾아 용의 동굴로 뛰어든 용감한 기사 이야기가 아니라 보물을 지켜야 하는 용의 이야기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물의 주인으로서, 또한 수호자로서 교육을 받아 온 주인공 용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보물을 욕심 사나운 인간들로부터 지켜야 하는 일을 삶의 의무이자 목표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여러 용의 왕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은 보물을 물려받은 주인공 용은 그러나 다른 용들과 달리 황금이나 보물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별난 용이었습니다.
용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많은 보물을 물려받았지만, 산속 동굴에서 혼자 지내면서 보물을 훔치러 오는 얼간이 인간들만 상대해야 하는 자신의 따분한 처지를 비참하게 여겼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우울증에 걸린 용은 보물 지키는 임무를 잠시 접어 두고, 수 년 동안 깊은 잠을 자기로 결심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후에는 지독한 삶의 무기력증에서 빠져나오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용이 지키고 싶은 진정한 보물!
그런데 용이 깊은 잠에 막 빠져들려는 순간, 정체 모를 소녀가 조심스레 다가와 용의 콧등을 살짝 건드립니다. 이 단 한 번의 부드러운 접촉이 딱딱하게 얼어붙은 용의 마음을 마법처럼 스르르 녹여 처음 보는 소녀에 대한 우정의 감정을 샘솟게 합니다. 마르고라는 이 소녀는 보물을 탐내서 찾아온 다른 침입자들과는 달리 용의 보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여자아이는 자신이 책에서 읽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 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목말랐던 용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합니다.
용은 마르고를 위해 황금과 보석으로 집을 지어 주고, 연못과 수영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숨바꼭질 놀이를 하거나 함께 산등성이를 산책하면서 매일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가 천년처럼 느껴졌던 지루한 시간들은 마르고로 인해 즐거움과 행복감으로 가득 찬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마르고는 왕국의 성에서 탈출한 공주였습니다. 왕을 속이고 왕비가 된 사악한 새엄마에 의해 성탑 꼭대기에 갇혀 살던 마르고는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주의 능력을 이용해 세상에서 제일 큰 권력을 갖고 싶었던 왕비는 마르고를 성의 꼭대기에 가두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황금 동굴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서!
마르고가 용의 동굴에서 숨어 지내던 어느 날, 사악한 왕비가 최고의 용 사냥꾼인 기사 지그프리드와 어마어마한 군대를 이끌고 동굴로 쳐들어왔습니다. 이제 용은 무엇보다 소중한 친구를 적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사명감에 불타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무기를 든 왕비를 피해 뒷걸음질치던 공주가 얼떨결에 손으로 벽을 짚는 바람에 동굴 안은 몽땅 황금으로 변하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무너져 내리는 황금 동굴을 벗어나기 위해 용은 마르고를 등에 태우고 온 힘을 다해 공중으로 날아오릅니다. 마침내 동굴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용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자유다! 드디어 보물지기라는 내 운명의 사슬을 벗어났다.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마르고와 함께 갈 것이다.”
황금의 손이라는 마법의 저주와 보물지기라는 정해진 운명을 깨부수고 진정한 보물을 찾아 날아가는 마르고와 용의 힘찬 날갯짓을 보면서 독자들은 큰 감동에 사로잡힙니다.
없음
지은이 막심 드루앙(Maxime Derouen)은 프랑스 보르도에 살고 있습니다. 철학을 전공한 후, 오랫동안 글을 쓰다가 뒤늦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습니다. 마리오 라모스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그는, 2014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최우수상 수상작인 『코마 프리마 Coma Prima』의 공동 저자이기도 합니다.
『환상적인 동물학Le Bestiaire Fabuleux』, 『나의 정원Mon jardin』, 『상상 속 동물들의 알파벳Abécédaire d’animaux imaginaires』, 『거짓말이야!C’était pour de faux!』, 『위험한 동물들 Animaux dangereux』 등을 펴냈습니다.
옮긴이 이성엽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불번역과를 졸업하고, 파리 3대학 통번역대학원(ES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그림책, 해석의 공간』, 『세계 그림책의 역사』(공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그림책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 『숲으로 간 코끼리』, 『나의 아틀리에』, 『나야 나!』, 『위대한 뭉치』 등을 프랑스어로, 프랑스 그림책 『할아버지의 빨간 모자』, 『생일 도둑』, 『살금살금 까치발…』, 『나일악어 크로커다일과 미시시피악어 앨리게이터』, 『쿼크, 별 그리고 아이』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이 그림책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공주가 사악하고 불길한 존재로, 정의로운 기사는 황금을 훔치는 탐욕스러운 악당으로 묘사됨으로써 실재 세계의 뒤집힌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중심과 주변, 안과 밖이 뒤집힌 이 환상 세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실제 세계와 연결되어 같은 현상의 다른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어린이들의 인식과 사고의 지평을 확장시킵니다.
그로테스크한 그림과 시적인 글이 창조한 새로운 환상의 세계!
이 그림책을 읽다 보면 사진관에서 보았던 옛날 사진기가 떠오릅니다. 그 사진기의 화면 속에는 피사체의 모습이 거꾸로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부 묘사는 실제 모습과 똑같습니다. 막심 드루앙이 창조한 뒤집힌 세계는 엄밀하면서도 논리적인 사고체계를 보여 주는 글의 내용과 정교한 세부 묘사로 인해 긴장감 있는 현실감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은 신비한 판타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극적인 장면의 위기와 전환의 효과를 한층 끌어 올립니다.
『엄지 동자 이야기』, 『마이다스의 손』, 『데미안』의 ‘아프락사스의 새’ 등을 패러디한 막심 드루앙의 재치 있는 현실 풍자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웃음을 머금게 하며, 읽는 재미를 배가시킵니다. 상황에 맞게 재해석되어 인용되는 경구와 시적인 운율을 지닌 절제된 글은 잘 짜여진 기승전결의 완결된 구조를 갖추어, 불안정한 판타지 세계의 바탕에 내재된 안정성을 담보함으로써 어린이 독자들에게 반복 고조되는 긴장과 이완의 즐거움을 선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