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언제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로 인간을 맞이한다. 풀꽃은 작지만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늠름한 나무에서는 의연하게 살아갈 용기를 배울 수 있다. 어떤 관계보다 나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준다. 지구 전체가 위기에 처한 요즘, 식물이 해온 일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절박한 일이다.
지구의 주인인 식물, 제대로 알아야만 제대로 사랑도 가능하다. 작가가 식물원에서 일하며 경험하고 탐구한 식물에 대한 진실을 전한다. 단지 자연과학의 대상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의 역사와 문화, 민속과 정서에 지배적인 존재임을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밝히며 식물을 인문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승격시킨다.
1부 식물을 안다는 것
식물을 아는 것이 교양 / 식물 이름 붙이기 / 식물을 가꾸는 마음 / 씨앗이 싹터 큰 나무가 된다는 것 /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식물들 / 성장을 기록하는 나이테 / 꿀, 벌이 식물로부터 만든 음식 / 식물 진화의 두 가지 방향, 난초와 국화 / 억새든, 갈대든 / 시베리아, 극한의 원시림 / 나무의 최저생계비
2부 자연과 닮은 조경문화를 꿈꾸다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 식물 신비로움 없애기 프로젝트 / 자연을 닮은 조경문화 / 토종 식물은 추억과 감성을 지닌 정서식물 / 식물 터부에 대한 이야기 / 무궁화를 아름답게 피우려면 /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지닌 나무들 / 아까시나무를 위한 변명 / 나무껍질이 지닌 매력 / 더운 날 시원스러운 수국 / 관주도에 묻혀버린 원예생활 / 태화강국가정원 십리대숲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3부 텃밭과 먹거리
메밀꽃 필 무렵 / 원래는 고구마가 감자 / 자양강장의 상징인 마 / 잡초의 과학 / 식물로부터 얻은 단맛 / 음식 맛을 돋우는 양념과 향신료 / 야생 식물 종자와 돌연변이 / 우리나라 주식이 옥수수라고요
4부 식물의 신비로움
지진을 감지하는 식물 / 음악과 노래, 그리고 청각을 가진 식물 / 불사의 생명체 / 병 주고 약 주는 식물의 약성 / 식물이 가진 약성, 양보다는 질 / 태양광발전은 식물광합성의 아류
5부 식물로부터 배우는 인문학
수많은 상징체인 ‘꽃’ / 이팝나무 노거수는 기상청 슈퍼컴퓨터보다 낫다 / ‘오동’이라 불리던 나무들 / 가시가 있는 나무 / 정원, 개인의 밀실이자 파라다이스 / 종교 속 나무 / 나무가 가진 신화성 / 정서적 유대를 잃은 우리들 / 나무 한 그루와 동무
이동고
경남 합천, 한적한 산골에서 태어나 자연과 하나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도시 속에서도 언제나 자연을 그리워했고 풀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이를 좋아했다. 울산 태화강 민물고기 조사 활동과 전시를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후 기청산 식물원에 근무하며 식물을 깊고 새롭게 보게 되었다. 식물원에 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이 자연환경을 파괴해 지구에 위기까지 온 것은 식물생명체의 존귀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짧은 기자생활은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지구생태계를 먹여 살리는 어미 같은 식물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한다.
식물은 사람에게 어떤 존재일까
거대한 나무가 천수를 누리는 기간에 비해 인간이 살아가는 생은 짧다. 수억 년간 지구 위에서 잎을 내고 꽃을 피운 그들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면 누가 자격이 있다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도시 문명 속에서 식물의 지위는 전과 같지 않다. 식물원을 벗어나면 보잘것없는 취급을 받는다. 가로수는 전선 아래에서 제 키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잘려 나간다. 건물 사이 나무는 준공 허가의 불가피한 조경 요소로 심겨 방치되어 있다.
‘식물이 주인’인 공간, 기청산식물원에서 식물의 성장과 변화를 관찰하고 보살피던 이동고 작가는 식물에게서 보람과 위안을 얻었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에 생태활동가, 환경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하며 식물에 대해 경험하고 탐구한 것을 글로 쓰고 사진으로 남겼다. 단지 자연과학의 대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역사와 문화, 민속과 정서를 엮어 인문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제대로 깊이 이해하기까지
아까시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낙엽교목으로 성장력이 대단하다. 원산지에서는 20~30미터나 자라고 지름이 2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 ‘아까시’란 가시가 있다는 뜻으로 붙인 우리말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아카시아Acacia는 열대성 관목을 가리키는 라틴어 속명으로 다른 식물이다. 진짜 아카시아는 열대성 관목이기에 우리나라 자연상태에 심어 키울 수 없다. 동요인 <과수원길>의 노랫말에 ‘아카시아’로 나오는 바람에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이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나무로 잘못 알고 있다.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죽는다’는 속설은 감나무에 함부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 만들어졌다. 감나무 가지가 겉보기보다 너무 잘 부러지기 때문이다. 실제 감나무는 까치가 둥지를 짓지 않는 나무다. 가지도 날카롭게 찢어져 올라갔다가는 크게 다치기 쉽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위험성을 알고 속설을 퍼트린 것이다.
‘덩굴이 벽을 타고 올라가면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말은 실질적인 피해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예전 집은 목구조 뼈대에 황토흙을 발랐으니 덩굴나무가 타고 올라갔다간 벽에서 흙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반대로 ‘능소화 꽃을 만지면 꽃가루 때문에 실명한다’는 속설은 신분 차별 때문이라 짐작할 수 있다. 빛깔이 곱고 품격이 있어 ‘양반꽃’으로 부르며 평민은 못 심게 했기에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이 거리를 두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 밖에도 원래 감자라 불렸으나 이름을 빼앗긴 고구마 이야기, 작물의 경계를 넘어 구황식물로 쓰이던 잡초의 비밀, 야생 돌연변이와 GMO 옥수수, 풍토병과 그 치료제로 쓰이는 지역 식물까지 다양한 식물을 넘나들며 안다고 생각했던 오해를 바로잡아 주고 제대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기상청 슈퍼컴퓨터보다 나은 이팝나무 노거수와 그 시절 노동의 피눈물 어린 모시풀 이야기는 전승할 옛이야기와 전통 가치가 식물과 함께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던진다.
씨앗을 뿌려 나무를 키우는 경험을 해본 이는 생명 하나 다루는 데 얼마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세상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생명을 잘 돌보고 키우는 일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는 ‘반려식물’ 하나 들여 보고 싶어진다. 이동고 작가는 식물을, 생명을 돌보는 일을 통해 식물이든, 주변 생활환경이든, 공원이든, 이웃이든, 친구든,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삶의 궁극 목표도 지구의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인간 문명의 원천이자 생명 유지를 가능케 했던 식물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식물에게 배우는 인문학』을 통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식물에 대해 제대로 탐구하고 이해해 보길 바란다. 묵묵히 수억 년간 해온 방식대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위안이 될 것이다.
[추천사]
물고기는 물을 떠나 잠시도 살 수 없듯이 인간은 ‘초목의 바다’를 벗어나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근원적 샘’인 초목을 정복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인간은 결코 인간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거대한 생존의 관계망 속에서 서로의 몸을 나누며 존재한다. 그 관계망 속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우열을 가릴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우월적 지위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한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우리의 존재는 전혀 다르게 결정될 수 있다. 자연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전도된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 인간의 시선에서 자연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일이다.
우리가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비인간들의 시선으로 인식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야 한다. 이동고 작가가 여느 자연보호주의자와 다른 점은 바로 인간주의적 시선을 철저히 비판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히 자유란 자연으로부터 지배를 받던 인간이 자연을 지배함으로써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연에는 그 어떤 존재든 다른 존재를 지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자유와 풍요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 책은 작가가 생태활동가, 환경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해 온 결과물이다. 이제 그를 자연주의의 사제(司祭)라고 불러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백무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