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의 영향력은 일본 사회에 깊게 침투해 있다. 메이지 유신 초기 사무라이의 후예들은 국가건설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 되었다. 연구에 의하면, ‘1881년에는 전체 인구의 5.3퍼센트였던 사무라이와 그 가족들이 공직의 40.9퍼센트를 차지했다. 게다가 1885년에는 중앙정부 국장 이상의 고관 93명 중 88명이 전 시대의 사무라이였다. 새롭게 설치된 초등학교 교직의 상당수도 전 시대 사무라이가 차지했다. 그러므로 사무라이 역사의 사회적, 문화적 특질을 파악하는 것은 전통적 일본뿐만 아니라 현대 일본의 성립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New School 교수가 밝히는 ‘사무라이의 문화와 근대 일본의 탄생’
일본인에게는 개인성의 결여되어 있다고 자주 말하는데 이 말은 일본인이 보여주는 유연한 적응력이나 과거의 역사 속에서 때때로 나타나는 사회 변화를 향한 대담한 움직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일본이 새로 선진공업국의 지도적 입장에 들어선 지금 순종적이고 몰개성적인 일벌들이 새까맣게 벌집에 몰려 있는 이미지만을 떠올려서는 세계 시장에서 일본이 갖는 강한 경쟁력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일본 사무라이의 문화 발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저자 서문 중-
이 책은 일본이 어떻게 서구와 다른 경로로 근대화를 달성했는지 하는 의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는 책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역사학자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대학에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
저자는 역사사회학의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의 문제, 사상의 역사, 심리학, 문학에 걸쳐 종횡무진 논리를 전개한다. 이 책의 풍부한 통찰은 일본의 특수한 신화를 둘러싼 분분한 논의를 일거에 정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주제 : 사무라이의 ‘명예형 개인주의’와 일본의 모더니티
이 책은 일본 사무라이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사무라이의 무술과 영웅담은 아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일본 역사를 1000년 동안 지배해 온 사무라이 계급의 형성과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현대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심성을 밝혀내려는 책이다. 방대한 사료와 최근의 논문 결과를 바탕으로 하면서, 일본인의 심성과 문화 바탕에 깔려 있는 명예 개념을 메스로 하여 일본이 쌓아 올린 문화의 층을 하나하나 벗겨내어 일본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는 일본 역사에서 폭력과 소유의 길들이기라는 사회 구조를 바탕으로 해서 ‘명예’를 중심으로 한 사무라이 문화의 변모 과정을 파헤치고 있다. 일본 명예 문화의 현대적 형태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중세의 사무라이는 폭력적이고 자기 주장이 선명한 개인주의적 명예문화를 가졌다. 중세 사무라이들의 몹시 거칠지만 개인적 긍지와 자립을 강조하는 문화는 그들의 ‘소유(토지를 소유한 영주)’와 ‘폭력(전문적인 무사 계급)’의 지평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것이 마침내 할복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문화 - 신체를 소유해서 그 죽음의 순간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자기를 소유하는 것이라는 신화적 의식(儀式) - 를 낳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중세의 일본 사무라이 계급은 도쿠가와(德川 1603~1867) 시대로 이행하며 큰 변모를 겪는다. 사무라이는 확고하고 세습적인 지위와 수입을 보장받는 대신 이전과는 매우 다른 여러가지 엄격한 조건을 받아 들여야만 했다. 사무라이는 성내 마을에서 살아야 했고 자기 토지의 직접 지배에서 유리되었다. 그들의 사회적 역할은 자립적이고 기력 왕성한 마상(馬上)의 무사에서 믿을 수 있는 관료로 큰 변화를 겪어야 했다.
도쿠가와 정부는 사무라이를 국가 차원의 신분제적 관료 조직의 틀안으로 단단하게 묶는 한편, 독립적이고 폭력적인 사무라이 계급의 문화와 제도를 순치시켜 갔다.
우선 모든 사적 폭력을 금지하고 바쿠후(幕藩)만이 무력과 형벌권을 독점했다. 사적 폭력은 이유를 불문하고 금지했는데, 어느 마을에서 수로를 둘러싼 분쟁이 일어나자 다툼의 양 당사자는 물론 중재에 나선 자까지 포함해서 64명을 모조리 죽일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면서 사무라이에 대해서는 복수의 이유를 바쿠후에 신고한 후 허락을 받도록 하는 신고 복수 제도를 설치해서 그들의 명예 관념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제도는 도쿠가와 체제에 의해 사무라이를 순치시켜 나간 정치 이데올로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 맞춰 도쿠가와의 유교는 ‘효’보다 ‘충’을 앞세우는 쪽으로 재해석되었다.
명예 폭력을 제한하는 전략의 또 하나의 예는 할복자살 관행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할복자살은 전장에서 패배한 무사가 개인의 명예를 표명하기 위해 행하던 자살 형식에서 발달했다. 그런데 할복 자살이 사무라이 계급에서만 행해지는 사형의 제도적이고 의식적인 형태로 확립된 것은 도쿠가와 시대였다. 도쿠가와의 수많은 판례집에 의하면 할복자살은 사무라이 계급에만 적용되었다. 즉, 할복자살은 이미 더 이상 개인의 긍지를 외부에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도쿠가와의 형벌체계 속에서 사무라이 계급의 명예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도쿠가와 중기 무렵 완전하게 제도화됨에 따라 그 실제 절차는 자살이라기보다 참수의 한 형식이었다. 심지어, 사무라이에게 주어졌던 칼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사례도 있어 피고인 앞에 놓여졌던 칼은 목제 모조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의식을 위한 물체가 무기의 모조품도 아니고 상징적인 물건인 부채였던 일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명예는 무장한 토지소유 영주라는 지위를 지켜나가기 위한 중세의 폭력적이고 자립적인 개념에서 국가 체제에 대한 순응의 틀 속에서 개인의 내면적인 성찰과 자존감을 지키려는 쪽으로 바뀌어 나갔다. 한마디로 명예로운 개인성의 발휘와 명예로운 순응이라는 두 바람 사이의 긴강과 대립 속에서 일본 모더니티의 특질이 형성된 것이다.
일본의 정신 세계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소개
이 책은 1000년 가까이 일본을 지배했던 사무라이들의 대서사시이다. 9세기 경의 소소한 등장부터 19세기 중반 메이지 유신으로 무대에서 사라지기까지를 사무라이의 명예 심성에 초점을 맞추어 그렸다. 초기의 사무라이의 형성의 시대부터 가마쿠라 바쿠후, 중세 전국 시대, 도쿠가와 바쿠한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이 어떻게 변화되어갔고, 또 이러한 변화에 당시 사무라이 개개인들이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통해, 일본 사회의 면면에 흐르는 문화적 상징의 해석을 시도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세계화의 폭풍이라는 현재의 구조적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가를 멀리서 시사하려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상처가 있어 일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른 주장과 목소리는 높다. 틈틈이 나오는 과거 청산 문제,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 보통 국가를 목표로 하는 일본 우익 세력의 헌법 개정 움직임에서 비롯된 독도 문제 등. 동시에 한편으로는 음악과 게임, 드라마, 문학 등 어느새 우리 곁에 가까워진 일본 대중 문화와 서로 깊숙이 엮여 있는 경제 구조 등을 생각하면 일본에 대한 우리의 대처가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이이다. 이 책은 그런 일본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드문 책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사회학적 접근의 고전
중세부터 근대를 거치는 일본의 국가형성은 일본 제도사 전문연구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의의 중심 과제이다. 그러나 저자와 같은 사회과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이야말로 일본의 경험의 중요성을 최근 20년간 풍부해진 비교역사학사회학의 성과 사이에 본격적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저자가 세계 역사에서 중세봉건제부터 초기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대한 비교역사연구의 맥락 속에서 일본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고민을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로버트 벨라, 루스 베네딕트, 찰스 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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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가미 에이코 (池上英子) - 뉴스쿨 대학교 대학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사회학부 교수이자 같은 대학 사회변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 도쿄 출생, 오차노미즈여대 국문학과 졸업. 일본경제신문사를 거쳐 쓰쿠바대학 대학원 지리연구과 석사과정 수료. 하버드 대학교 사회학부 박사과정 수학 후 1989년 Ph. d 취득.1999년부터 현직에 이름. 역사사회학, 사회이론, 문학사회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