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수필집. '아바나의 불빛', '쿠바에서', '키 푸드(key food)만 찾으면', '페루1―리마의 밤길', '페루 2―실종과 귀환', '묻는다', '집을 모은 여자 등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목차없음.
충청남도 온양에서 태어났다. 내 고향은 언제부턴가 그 이름조차 아산이라고 바뀌었지만 내겐 여전히 ‘다사로운 빛고을’ 온양이다. 그곳을 떠나온 것은 열여섯 살의 봄. 내 생의 4분의 1을 그곳에서 지냈을 뿐인데 여전히 내 뿌리는 그곳으로부터 생명의 수액을 끌어올린다. 결혼하여 들어간 시댁은 남양주였으니 이곳 또한 풀어보면 ‘남쪽 빛고을’이 된다. 남양주에선 7년을 살고 서울로 분가하였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마치 출퇴근하듯 그곳을 오갔다. 나는 향일성 식물임에 틀림없다. 내 생은 온통 빛과 볕을 향해 있었다. 1992년 『수필공원』(현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하고 줄곧 글을 쓰지 않았다. 구태여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다 결국은 썼다. 글을 쓰는 동안 지나온 생과 앞에 놓인 생이 조금 더 맑아지고 조금 더 싱싱해지는 듯했다. 글쓰기도 내겐 햇살과 같다.
내 글은 내 경험과 세월의 정직한 문양 나는 칠십인 요즘이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칠십까지 살았기에 이런 날이 찾아왔다. 진즉 저 세상으로 갔다면 이런 평화에 이르러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칠십이 되어서야 일흔 살 먹은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또 팔십까지 살아봐야 칠십에 몰랐던 여든 살의 심경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