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만리, 이백, 정지상, 왕안석, 노동, 허난설헌 등 시대와 저자를 구분하지 않고 중국과 한국의 고전 시가 중 64편의 명시를 뽑아 한시의 고결한 멋과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전하였다. 저자는 화려한 수사법이나 복잡한 시상을 떠올리며 구태여 시가 가진 고유의 함의에 다른 색깔을 입히기보다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감성으로 옛 시인들과 교감하여 시에 내재된 순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다.
책머리에
《水中山花影》물속엔 산꽃 그림자 _양만리 10
《山中與幽人對酌》산중의 대작 _이백 12
《夏意》여름날의 정취 _소순흠 16
《送人》님을 보내다 _정지상 18
《詠笠》삿갓 _김병연 20
《采蓮子》연밥 따는 소녀 _황보송 24
《江畔獨步尋花》꽃 찾아 강가를 헤매다 _두보 26
《牧童》소치는 아이 _정인홍 30
《客至》손님이 찾아오다 _두보 32
《游鍾山》종산에서 노닐다 _왕안석 36
《西村》술 사 들고 갈숲으로 _곽상정 38
《雨過山村》비 지나간 산촌 _왕건 40
《田家行》보릿고개 _이달 42
《無題》우여, 너를 어찌할꼬! _항우 44
《白鷺鷥》백로 _노동 48
《鞦韆詞》그네뛰기 _허난설헌 50
《婦人挽》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 _이계 54
《狎鷗亭》압구정에 갈매기 날아오지 않고 _이수광 56
《晨興卽事》새벽에 일어나 지은 시 _이색 60
《山中》산속의 쪽빛 하늘 _왕유 62
《禾熟》벼 익는 들판 _공평중 64
《春日訪山寺》봄날 산사를 찾다 _이규보 66
《箜篌引》공후에 실은 노래 _여옥 68
《爲人賦嶺花》고개 위에 핀 꽃 _박제가 70
《梅花塢坐月》달빛 쏟아지는 매화 언덕 _옹조 72
《磧中作》사막 길 _잠삼 74
《田家良婦》현모양처 _신혁식 76
《桃源圖》무릉도원을 그리다 _심주 80
《柳枝詞》버들가지 _설장수 84
《題溫處士山居》온처사의 산거에서 _전기 86
《春夜喜雨》봄밤에 내리는 단비 _두보 90
《還自廣陵》광릉에서 돌아오는 길에 _진관 94
《暮歸》밤길 _권필 96
《寧越懷古》영월에서의 회고 _박영선 100
《歸田園居》전원에 돌아와 살다 _도연명 102
《王昭君》왕소군 _이백 106
《春遊》봄놀이 _왕령 110
《豆江》두만강 송어 잡이 _홍양호 112
《村婦》시집살이 _이양연 114
《秋思》고향 집으로 부치는 편지 _장적 118
《江頭》자라를 낚으려고 _오순 120
《漏屋》비 새는 집 _이건초 122
《奇息影庵禪老》식영암 노선사에게 _이암 126
《折花行》모란꽃 꺾어들고 _이규보 128
《題友人江亭》벗의 강가 정자 _성몽정 132
《庚子正月五日曉過大皐渡》새벽 나루 _양만리 134
《傷春》봄앓이 _신종호 136
《梁州客館別情人》이별 _정포 138
《送靈澈上人》영철 스님을 보내며 _유장경 140
《絶句》아이야 촛불 켜지 마라 _최충 142
《夫子於山陽買田數頃勤力稼穡妾作農謳數篇》
농부의 아내가 부르는 노래 _삼의당 김씨 144
《禮城江阻風》예성강에 바람 불어 _이곡 148
《路上有見》길에서 보고 _강세황 152
《棄官歸鄕》귀향 _신숙 156
《竹》대나무 _진여의 158
《逢雪宿芙蓉山主人》눈보라 치는 밤 _유장경 160
《慵甚》노년의 게으름 _이첨 162
《百年心》백 년의 마음 _김부용당 운초 164
《京師得家書》금릉에서 집 편지를 받고 _원개 166
《送舊宮人入道》불문(佛門)에 들어가는 옛 궁인을 보내며 _홍서봉 168
《寒江獨釣圖》겨울 강의 낚시꾼 _당숙 170
《溪亭偶吟》솔바람 소리 시끄러워 _허장 172
《春晩》봄이 저물다 _진화 174
《述志》한가한 삶 _길재 176
역자 후기
신경주
1954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남.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한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함. 옮긴 책으로는 한시문집 『석암집』이 있음.
양만리, 이백, 정지상, 왕안석, 노동, 허난설헌 등 시대와 저자를 구분하지 않고 중국과 한국의 고전 시가 중 64편의 명시를 뽑아 한시의 고결한 멋과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전하였다. 저자인 신경주는 “어설픈 저자보다는 즐거운 독자가 낫다고 여겨온 오랜 생각이 흔들렸다. 잘 만들어진 한시 번역서들을 반갑게 읽으면서도 ‘구두를 신고 발바닥을 긁는’ 듯한 어떤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였다. 예쁘지 못한 손톱으로 가려운 맨발바닥을 나름대로 후련하게 긁어 보았다. 그 시원함이 한해 여름쯤은 나의 더위를 감당해 주리라 믿는다.”라고 말하며 시집 출간에 대한 기쁨을 드러냈다.
저자는 화려한 수사법이나 복잡한 시상을 떠올리며 구태여 시가 가진 고유의 함의에 다른 색깔을 입히기보다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감성으로 옛 시인들과 교감하여 시에 내재된 순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백, 정지상, 왕건, 항우, 이규보, 박제가 등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생동감 넘치는 고인들의 언어를 그대로 담아내어 한시의 정갈한 멋과 고유한 운율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시의 각 편마다 감상을 덧붙여 시의 내용을 더욱 깊고 세밀하게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다.
浮浮我笠等虛舟 떠다니는 내 삿갓 물결 위의 빈 배 같은데
부부아립등허주
一着平安四十秋 한 번 쓰니 그 아래서 사십 년이 평안했네.
일착평안사십추
牧竪行裝隨野犢 소 치는 아이 차림으로 들 송아지 따라가고
목수행장수야독
漁翁本色伴江鷗 어옹의 행색으로 강 갈매기 벗하네.
어옹본색반강구
閒來脫掛看花樹 한가하면 목에 걸고 꽃가지 구경하고
한래탈괘간화수
興到携登咏月樓 흥이 일면 벗어 들고 달 읊는 누각에 오른다.
흥도휴등영월루
俗子衣冠皆外飾 속인(俗人)들 의관은 모두 다 겉치레니
속자의관개외식
滿天風雨獨無愁 비바람 몰아칠 때면 나홀로 근심 없어라.
만천풍우독무수
삿갓과 함께 한 허허로운 방랑생활이 속기(俗氣)를 벗은 시정(詩情)에 실린다. 길 위를 떠가는 내 삿갓은 물결따라 흘러가는 빈 배를 닮았다. 얼굴도 이름도 없어진 내가 삿갓이 되어 발길 닿는 대로 세상을 둥둥 떠다닌다. 이 삿갓을 쓰고 떠돈 지 어느덧 사십 년, 그 아래서 치욕과 울분을 삭이고 거친 세상의 비바람을 피하니 그 작은 그늘이 평안한 나의 집이다. 부귀영화나 입신양명이야 어차피 내 몫이 아닌 것을, 헛된 세상에 아부(阿附)해 백 년 못 되는 인생을 구차히 살 까닭도 없다. 바람이 되어 먼지 가득한 세상을 휩쓸고, 물이 되어 유유히 흐를 뿐이다. 어느 땐 목동인 양 들판의 송아지 따라 들길을 가고, 어느 땐 어옹인 양 강가에서 갈매기를 벗하기도 한다. 마음이 한가하면 삿갓 젖혀 목에 건 채 꽃가지를 구경하고, 흥이 나면 벗어 들고 누각에 올라 달을 읊는다. 좋을 때도 삿갓은 정다운 벗이지만, 길 가다 풍우(風雨)를 만날 때면 더욱 미더운 동행이 된다. 세상 사람들 점잖은 의관이야 보기엔 좋아도 비바람 만나면 낭패(狼狽)를 보지만, 나는 삿갓을 쓰고 있으니 비바람 몰아쳐도 아무 걱정이 없다. 삿갓 쓰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사는 내가 겉치레와 온갖 잡사(雜事)에 매여 사는 속인(俗人)들보다 낫지 않은가?
-본문의 20~24쪽에서-
책에 삽입된 여러 개의 도판 자료들은 한시의 세계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저자의 시 감상을 읽으며 그림의 여백을 만끽하는 즐거움은 시 속의 인물들과 배경이 눈앞에 아른거리면서 배가 된다.
비교적 잘 알려진 중국과 한국의 옛 문인들의 시를 소개하여 고루하고 따분한 느낌을 없애고 친숙함을 느끼게 하였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이러한 한시의 아름다움에 곧 매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