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윤 장편소설『섣달 그믐밤』. 소설의 형식을 빌린 가족사의 기록이기도 하고, 한 가족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가족사를 시대 배경과 밀착시켜 보편적인 시대사로 풀어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시대를 관통하며 보편적인 민중의 삶으로 이어지고, 그 삶은 다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제 강점기부터 6ㆍ25를 거쳐 현대까지 이어지는 이 소설은 힘겹게 살아가는 그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의 삶을 통해 당시 민중들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전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한 단면을 제공한다.
1부
땅띄기
젖냄새
밥
비밀
허기
소년 가장
땅띄기
물세
만주행
슬픈 이름들
뿌리와 사랑
2부
갈대의 노래
길
흔들리는 갈대
전쟁과 형제
이상한 대학
귀향
꿈
새
첫기억
유행가
박정희
DNA
저자 이기윤(李基潤·54·육사 33기)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현역 대령인 동시에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육군박물관장이자 육사 국문학 교수인 그는 고교 때부터 시를 습작하여 사관생도 시절이던 1977년 \'태릉무림기\'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이후 같은 해 \'시와 시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고, 99년에는 \'자전거와 바퀴벌레\'라는 시집을 냈다. 그리고 2008년 첫 장편 소설인 『섣달 그믐밤』을 출간했다.
<섣달 그믐밤>은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쓴 가족사의 기록이기도 하고, 한 가족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기도 하다. 전자의 경우 실제 민중이 살아온 구체적인 삶의 충실한 기록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후자의 경우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보편적 형상화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섣달 그믐밤>은 논픽션이면서 픽션이고, 구체이면서 보편이며, 개인의 삶의 기록이면서 우리 근대민족사이기도 하다.(이남호/고대교수, 문학평론가)
섣달 그믐밤은 분명 할아버지 세대부터 현재의 나의 세대까지 이어지는 가족사이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이 겪는 일들은 당시의 민중들의 삶으로 이어지며 소설로서의 보편성을 지니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제 강점기 때의 만세 운동과, 농지 개척, 6·25의 비극, 이 모든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윗세대들의 삶이었다.
아버지가 입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으로 가는 현재부터 시작되는 소설은 아버지를 두고 밥을 먹는다는 슬픔에서 옛날의 기억으로, 그리고 다시 그 기억 속에서 더 옛날로 들어가 힘겹게 살던 할아버지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온다.
할아버지의 시간으로 들어온 소설은 그의 힘겨운 모습에서 당시의 시대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삶은 아버지로 들어와 연이어 터지는 시대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천천히 처음 이야기가 시작되는 현재로 돌아온다.
그 시대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소설 속에서 보편적 민중상이 되어 흘러간다. 만세 운동 이후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좋아하던 술도 입에 대지 않던 할아버지, 일본인 소유의 땅에서 소작인으로서 땅띄기를 하던 아버지, 전쟁으로 군에 가게 된 셋째 삼촌, 전시 체제 하에 생긴 연합대학. 이 모든 것들이 당시의 시간을 선명히 알려주며 당대를 살아간 이들에게는 공감과 향수를, 그 후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윗세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