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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직계후손들이 만주와 대륙정벌을 추진했다?!
1만 9천명의 세종대왕 최정예 후손들이 만든 조선의 역사!
『세종대왕 가문의 500년 야망과 교육』. 이 책은 세종대왕 직계후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들이 꿈꾸었던 야망과 교육을 보여준다. 북쪽으로의 대륙의 꿈을 키웠던 세종대왕의 만주와 대륙정벌은 후대에서도 이루어졌으며, 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며 정치에 참여하였다. 이와 더불어 그들만의 수준 높은 교육법도 알아본다.
세종대왕 직계 엘리트 후손들이 만주와 중국대륙 정복을 추진했다. 조선이 청나라와 일전을 벼르던 효종과 숙종 연간. 당시 정국을 주도하던 백강 이경여 집안은 대대로 북벌을 꿈꿨다. 세종대왕 후손 중 최정예 엘리트 집단이었던 이경여 집안. 그는 10만 정예병 육성을 외쳤고, 아들 이민서는 이순신 김덕령 등 민족영웅 발굴 작업을 통해 북벌의식을 고취시켰다.
역사를 주도한 이 집안에서 임금을 보는 시각은 강한 군주, 도덕성 있는 군주였다. 그리고 그들은 허약하고 도덕성을 잃었다면 백성의 안위를 위해 교체도 가능하다 보았다. 세종의 아들인 밀성군은 강력한 왕권을 추진한 세조를, 밀성군의 아들이자 세종의 손자인 운산군은 실덕한 연산군을 과감하게 교체한다. 세종대왕 이후 500년 동안 이어온 그들이 어떻게 정치에 참여했으며, 역사를 만들어 갔는지를 보여준다.
축간사_3
격려사_5
여는 글_8
1. 임금을 교체하라_15
세종의 손자, 덕을 잃은 왕을 내쫓다:운산군_17
충성할 임금은 현 국왕이 아니라 전 국왕이다:이건명_23
허수아비 왕, 세상에서 가장 허망한 질문을 하다:이이명_28
한 선비의 드라마틱한 삶, 고대소설의 모델이 되다:이봉상_34
세상에서 가장 바르게 산 철학자 입을 열다:이수록_46
명문의 자제, 평생 이름 없이 살다:이길명_54
2. 청나라로 진격하라_64
죽음을 앞둔 정승, 효종과 북벌을 논의하다:이경여_66
평안감사, 무예천하지대본을 외치다:이헌구_73
북벌의 가업, 민족영웅을 발굴하다:이민서_80
병조판서, 12만 화포병 양성을 계획하다:이사명_89
한 편의 지도, 북벌을 말하다:이이명_96
3. 서양 학문을 공부하라_102
조선의 왕, 국민 투표를 실시하다:세종대왕_104
조선의 가요 왕국화를 꿈꾸다:이영유_109
조선 선비 서양과자 카스텔라를 먹다:이기지_117
4. 아내를 정성껏 모셔라_126
세종대왕의 여인,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다:신빈 김씨_128
사대부의 여인, 임금에게 감사의 한글 편지를 쓰다:정경부인 김씨_139
사대부의 여인, 임금에게 항의의 한글 편지를 쓰다:정경부인 김씨_150
세상에서 가장 슬픈 혈시를 읊다:숙부인 정씨_157
스토리텔링 교육법을 도입하다:정경부인 임씨_163
명문가는 여성이 만든다:정경부인 해평 윤씨_167
5. 톡톡 튀는 효도를 하라_173
문형, 정조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큰 칭찬을 듣다:이휘지_175
매화꽃을 통해 작고한 장인과 대화하다:이이명_180
쉰 살의 유학자, 열 살 철부지 행동을 하다:이민장_185
재상의 어머니, ‘부모보다 임금, 백성이 먼저’:정경부인 진천 송씨_193
3대의 여인이 상복을 입고 책을 읽다:숙부인 안동 김씨_197
6. 장원급제의 비법을 전수하라_202
시간은 빨리 가고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이경여_204
선비의 아내, 굶어도 책은 팔지 않는다:숙부인 덕수 장씨_216
모범 학자, 하루에 30번 책을 읽다:이인상_221
대기만성한 재상, 어린 아들에게 선택과 집중을 가르치다:이관명_226
장원급제한 천재, 1등하는 비결을 말하다:이민적_231
7. 벼슬은 포기하라_234
정직한 재상, 노비로서도 모범을 보이다:이관명_236
무릇 사람이면 세 가지를 하여야 한다:이병인_240
우의정, 과거시험에 손을 내젓다:이건명_247
잘 나가는 재상, 아내에게 잘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다:이관명_251
8. 논리로 말하고 감성으로 설득하라_259
대담한 판서, 임금의 경연 중에 잠을 자다:이민서_260
고관의 양자는 책을 읽지 않아야 한다:이병문_265
현명한 재판관, 완전범죄를 무산시키다:이관명_268
15세 소년, 명나라 사신의 두 손을 들게 하다:이경여_273
설득의 달인, 병자호란의 주역 김상헌과 최명길을 화해시키다:
이경여_281
서얼 학자, 그림으로 도를 깨우치다:이인상_287
9. 인생철학을 가져라_292
젊은 부제학, 조선 최대의 과거시험 부정을 파헤치다:이건명_293
대쪽 선비, 열 살 왕세자의 결혼을 반대하다:이민적_299
너무 깨끗해서 정승 후보에서 탈락하다:이민서_305
노론 학자, 남인이 사는 남촌에 가지 않다:이인상_308
세종의 아들, 축첩 대신 돈을 모으다:밀성군_311
10. 부록-책 속의 책_320
조선의 명문가_320
천하의 문형_322
3대 연속 문형에 오른 4대 명문 집안_324
조선 최고 명문 밀성군파의 형성_325
백강 가문의 화려한 혼맥_328
좌의정 이관명 집안_331
좌의정 이건명 집안_332
참고문헌_335
이상주_ 李相周
20여 년 동안 글을 쓰고 있는 신문기자다. 한국의 역사와 인물들을 깊게 연구해 정보와 흥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인물들의 사상 및 정치철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에 정열을 쏟고 있다. 또 역사 인물들의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또 자료를 찾는 일을 제일의 과제로 삼을 정도로 탄탄한 고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세종대왕 직계의 500년 가문사를 통해 조선 상류층 흐름을 이해하게 하는 이 책도 집안에 내려온 가첩과 문집은 물론이고 많은 자료를 찾아 시대의 외침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지은 책으로는 \"이 경기장에선 내가 최고다\", \"두려움만 정복하면 당신도 스피치의 달인\", \"설득은 안타도 홈런을 만든다\", \"자녀를 리더로 이끄는 아빠의 대화법\" 등이 있다. 현재 스포츠조선 체육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세종대왕 왕자인 밀성군의 19대손이다. 족보 이름은 이형구李馨九이고, 호적명은 이상주李相周다.
이상주_ 李相周
20여 년 동안 글을 쓰고 있는 신문기자다. 한국의 역사와 인물들을 깊게 연구해 정보와 흥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인물들의 사상 및 정치철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에 정열을 쏟고 있다. 또 역사 인물들의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또 자료를 찾는 일을 제일의 과제로 삼을 정도로 탄탄한 고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세종대왕 직계의 500년 가문사를 통해 조선 상류층 흐름을 이해하게 하는 이 책도 집안에 내려온 가첩과 문집은 물론이고 많은 자료를 찾아 시대의 외침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지은 책으로는 \"이 경기장에선 내가 최고다\", \"두려움만 정복하면 당신도 스피치의 달인\", \"설득은 안타도 홈런을 만든다\", \"자녀를 리더로 이끄…
- 한국판 뿌리, 세종대왕 500년의 가문사는 한국사다
- 가문의 역사로 조선 상류층을 읽는다
- 1만9천명의 세종대왕 최정예 후손들이 만든 조선의 역사
세종은 아들들을 이렇게 키웠다
세종가문인 밀성군 집안의 독서관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인으로 가는 수련의 과정이었다. 이경여는 큰 아들 이민적에게 `네 나이 열다섯인데 아직 학문을 이루지 못했으니 크게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시간은 덧없이 빨리 흐르고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청소년기에 공부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는 질책이었다.
둘째, 굶어도 책은 팔지 않는 것이었다. 이인상의 아내는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책 만큼은 지켰다. 이인상이 시와 서 그림에 모두 능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목숨처럼 여기는 가풍 덕분이었다.
셋째, 부단한 노력이었다. 문과에 장원한 이민적은 아들에게 지독한 독서를 시켰다. 밥을 먹은 뒤 소화가 되기만 하면 책을 읽게 했다. 자신이 장원급제에 이어 큰아들 이사명의 장원급제 손자 이기지의 장원급제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벼슬에는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
우의정 이건명은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기 전 유언에서 \'글을 열심히 읽어 마음을 닦되 출세에는 연연하지 말라\'고 했다.
이건명의 형으로 좌의정을 지낸 이관명도 노비로 전락하고 아내에게도 신경을 써 주지 못한 것은 벼슬 때문이라고 후회했다.
이병인은 아예 과거를 보지 않고 독서를 하며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벼슬길은 필히 정쟁에 휘말리고 이는 자신의 삶도, 가문에게도 누를 끼칠 수 있다는 현실을 바로 본 것이다. 그래도 이 가문에는 벼슬은 하지 않되 글은 게을리 읽어서는 안된다는 철학은 분명했다.
하지만 출사를 하면 목숨을 걸고 바른 말을 멈추지 않았다.
숙종 때 이민적은 열 살 왕세자의 혼례추진에 대해 강하게 비판을 했고, 경연을 자주 거르는 현종에게 비판의 강도를 높이면서 \'운동\'을 청하기도 했다. 임금의 허약은 운동부족에서 온다는 비판이었다.
암행어사로 나간 이관명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신은 숙종을 분노케 했다가 한 자리에서 3계급 특진이라는 훈장으로 돌아온다는 야담을 낳게 하기도 했다.
이관명은 어전의 재판에서도 감성이 아닌 논리로 접근해야 해야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해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세종의 직계 엘리트들의 혼맥
세종의 아들인 밀성군 집안을 통해 조선 상류층의 혼맥도 살펴볼 수 있다.
밀성군파의 현달한 인물은 백강 이경여 집안에 집중돼 있다. 상신 6명에 3대 대제학, 8판서가 모두 이경여 가문이다. 세종대왕의 고귀한 기품이 백강 집안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백강 집안은 세종의 직계 후손이라는 명망과 함께 처족의 화려함으로 더욱 빛났다.
백강 가문의 처 집안은 원두표 장 유 김만중 김창집 등 당시 사회의 최상류층이 총망라되었다. 처의 증조부까지 포함한 정2품 이상의 처가는 덕수장씨, 안동김씨, 광산김씨, 풍천임씨 ,경주김씨, 연안이씨, 기계유씨, 안정나씨, 은진송씨 등 30여개 성에 이른다.
여러 성씨 중에서도 핵심은 청음 김상헌의 후손인 신안동 김씨였다.
이경여의 5대손으로 정조 때의 인물인 이영유는 자신의 문집인 운소만고에서 \'우리 집안은 신안동 김씨와 200년 동안 도타운 정을 나누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100여 년 동안 신안김씨와 백강 가문은 깊은 혈연관계를 유지한다. 조선 중기부터 근세까지 300년 동안 겹사돈 관계를 맺으면서 정국과 조선의 사상을 주도한 것이다. 문장가가 많은 광산김씨도 주요한 처족이었다. 이민장의 사위가 대제학 김진규이고, 이이명의 아내가 역시 대제학 김만중의 딸이다.
백강 이경여 가문은 30여 성씨 중에서 정2품 이상의 품계에 있는 집안에서 50여차례 규수를 데려왔는데, 이중 13차례를 신안김씨 가문에서 배필을 맞았다. 다음이 4차례인 대구서씨이고 광산김씨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배위의 직계 3대 선대의 대표 벼슬은 판서로 18곳이나 된다. 다음이 상신 9곳으로 영의정 6곳, 좌의정 2곳, 우의정이 1곳이다. 백강 가문 중에서도 좌의정 이건명 집은 28차례나 정2품 이상의 집안과 혼인을 했다.
스토리텔링 교육으로 손자 4명을 정승과 판서로 만든 할머니
인격체로서 대우 받은 이 가문의 여성은 스토리텔링에 의한 논리성 함양 교육으로 자녀를 양육해 명문가문의 밑그림을 그렸고, 의로운 일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남편이 과감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경여의 아내 풍천임씨는 손자들을 스토리텔링으로 교육해 3명의 정승과 1명의 판서로 만들었다.
또 3대 연속 문형을 만들었다. 그녀가 항상 무릎 위에 앉히고 옛이야기와 할아버지의 일화를 대화식으로 들려주었던 손자중에 이사명이 병조판서, 이미명과 이관명, 이건명이 각각 좌의정에 오른 것이다.
특히 아들인 이민서 손자인 이관명 증손자인 이휘지가 3대 연속 문형에 오른 청사에 빛날 업적을 남겼다.
그녀의 교육법은 백강공묘비에 적혀있다.
첫째가 근면함이다. 스스로 일찍 일어났고, 어린 손자라도 늦게 일어나면 꾸중을 했다.
둘째가 여색 경계다. 자식이나 손자가 술을 마시거나 부녀자와 가까이 하면 엄히 훈계를 했다. 옛 고사를 인용해 이해의 폭을 넓혔다. 요즘 말로 단순훈계가 아닌 스토리텔링을 함으로써 쉽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셋째가 실천궁행이다. 그녀는 출산 후 10일 만에 손님을 맞았다. 또 겨울에 손등이 얼어터지도록 일을 했다. 시아버지와 남편을 찾는 이에게 성의를 다하기 위함이었다. 그게 집안을 일으키는 힘이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 손주와 자식이 조그만 태만하면 질책을 멈추지 않았다. 큰 인물이 되려면 자신을 닦아야 함을 역설하곤 했다.
넷째. 독서다. 임씨부인은 손주들에게 할아버지인 이경여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줬다. 나랏일에 바쁜 이경여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무에 임했다. 매일처럼 피로했겠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책을 읽었다. 손주들에게 책 읽는 모델로 할아버지 이경여를 제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