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진 소설가의 첫 시집이다. 5부로 나뉜 63편의 시는 자연을 통해 얻게 되는 침묵과 고요, 이타적 사랑과 기쁨을 담고 있다.
완전한 것은
언제나 고요하다
도시는 고요하다. 광고와 뉴스가 넘쳐 살아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속삭이는 말조차 광고의 문장이고, 영혼 없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도시엔 커다란 전광판이 사람의 말을 대신해 밥을 먹고, 인사하고, 포옹을 한다. 어쩌다 진심인 듯한 속삼임도 결국 죽어가는 말의 환영일 뿐이다.
그런 도시에 사는 시인의 입 속에는 혀와 수많은 개구리가 산다. 주체하기 힘든 긴 혀가 무서워서, 입을 열기만 하면 순식간에 밖으로 튀어나와 지껄이는 개구리가 무서워서 시인은 입을 꼭 다문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만나는 새벽이 오고, 시인은 고요와 입 맞춘다.
자연은 고요하다. 종잡을 수 없는 구름의 마음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생이라는 게 고작 한 번 움츠렸다가 한 번 길게 몸을 펴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자벌레는 편안하게 누워 별을 본다. 바다 대신 눈물 흘리는 거북의 울음은 소리가 없다. 적요의 아침이 오고, 소리 없는 비 한 방울에 온 우주가 떨린다.
그대 카덴자여!
용기를 잃어버리고 두려움에 떠는 영혼이여!
이제 숲에서 빠져나와 드넓은 광야로 나아가라!
광야에 홀로 우뚝 서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대 영혼이 어디로 가려는지 깨닫게 될 테니
(「카덴자의 노래」 중에서)
고요에 귀 기울인 시인은 침묵으로 오는 우주의 노래를 듣는다. 인간이 지구 위의 딱새나 박새쯤 되는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물처럼, 향기처럼, 사랑처럼 투명하게 스미는 고요는 달콤하다. 시인은 홀로 우뚝 서서 비로소 영혼이 어디로 가려는지 깨닫는다. 길을 잃고 숨은 영혼, 카덴자에게 깨어나 위대한 영혼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권효진 시인은 《한국소설》에 단편소설 「사냥의 추억」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2020년 소설집 『좀마삭에 대한 참회』를 출간하며 자연의 생명력으로 치유받는 인간에 대해 다루었다. 이번 시집 『카덴자의 노래』에서는 소설가가 아닌 시인 권효진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인은 언어 이전의 마음에 가닿고자 하는 바람을 꽃과 나무, 바다와 거북 등 자연을 통해 표현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내면의 고요함을 구하고, 고요 속에서 얻게 되는 기쁨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인은 그 내적 성찰의 여정을 언어적 기교나 꾸밈 없이 시에 그대로 담았다. 자연을 통해 얻게 되는 침묵과 고요, 이타적 사랑과 기쁨이 담긴 시는 잔잔하면서도 다정하다.
홀로 등불 하나 들고 가는 이 외롭지 않네
그의 뒤에는 내가 있고,
내 뒤에는 또 누군가가 있으니
서로가 그런 줄 알면서 가는 길
아무도 외롭지 않네
(「한 사람이 등불을 들고 가네」 중에서)
우리가 햇빛의 씨앗이기에 오늘도 해가 뜬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인은 어린 새싹을 보듯 거울 속의 자신을 본다. 사랑하는 별을 닮은 환한 꽃이었다가 어느새 빛나는 사과 한 알이 된다. 시인은 달콤하게 잘 익다 보면 언젠가 나무가 될 것이라 말한다. 고요의 기쁨을 좇아 힘차고 자유롭게 걸어가는 시인은 외롭지 않다. 이 시집을 펼친 독자들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카덴자의 노래를 듣고 시가 사랑인 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