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 말 궁정 안팎에서 고려양이 유행했던 양상과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이며, 고려양 유행의 배경이 되었던 많은 고려 사람들의 몽골행에 얽힌 이야기이다. 동시에 이는 몽골과의 관계를 통해서 접하게 된 세계 속에서 고려 사람 들 개개인이 꿈꾸게 된 성취에 대한 욕구, 그리고 그러한 성취를 가능하게 한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이 13~14세기를 살아갔던 고려인들에게 몽골과의 관계가 어떤 의미를 가졌을 것인지에 대해 조금은 더 ‘복잡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고려 스타일, 몽골에서 붐을 이루다
‘고려양의 유행’은 단지 고려-몽골 간 문화적 교류라는 의미를 넘어 당대 사회상과 사람들의 지향을 보여 준다. 이미 ‘성취’를 이루어 낸 개인에 대한 선망 혹은 시기와 질투, 나도 그러한 성취를 이루어 내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개개인이 그러한 성취를 이루어 내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고려-몽골 관계의 면면들. 이제 13~14세기 몽골의 등장으로 형성된 세계 질서 안에서 다양한 기회의 순간을 맞이했던 고려인들에 대해 살펴볼 차례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자발적인 동기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내가 원해서, 혹은 어쩔 수 없어서
몽골은 이전의 중국 왕조들에 비해 그 범주가 확장되기도 했거니와, 그와 정치적 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들과도 경제적인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다. 대도는 다양한 문화권으로부터의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들어온 문물과 재화가 모이는 곳이었고,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몽골제국과의 정치적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흘러든 사람들도 있었으나, 개인의 성취를 위해 자발적인 의지로 몽골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고려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고려와 몽골, 그리고 결국 사람들
이 책은 원대 말 궁정 안팎에서 고려양이 유행했던 양상과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이며, 고려양 유행의 배경이 되었던 많은 고려 사람들의 몽골행에 얽힌 이야기이다. 동시에 이는 몽골과의 관계를 통해서 접하게 된 세계 속에서 고려 사람 들 개개인이 꿈꾸게 된 성취에 대한 욕구, 그리고 그러한 성취를 가능하게 한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이 13~14세기를 살아갔던 고려인들에게 몽골과의 관계가 어떤 의미를 가졌을 것인지에 대해 조금은 더 ‘복잡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의 말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기가 무섭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중국이 러시아에 ‘올림픽이 끝나기 전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는 소문은, 근거가 있어 보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원래 한 민족’이라거나 ‘원래 정당한 옛 영토 수복’, ‘나토의 동진 위협’ 등이었다. 급기야 이런 명분들이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 모자라 보이자 ‘우크라이나는 나치’라는 주장까지 내놨다. ‘한 민족’이라는 명분에 의한 병합, ‘고토수복’, ‘생존권’ 타령이 오히려 그 ‘나치’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은 차치하도록 하자. ‘고토수복’이라는 명분에 대해 사람들은 ‘몽골군 캬흐타 근처 배치’와 같은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몽골인들이 수십 년간 루스인들을 지배한 ‘타타르의 멍에’가 떠오른다는 이야기이다.
칭기즈칸의 등극과 함께 성립된 예케 몽골 울루스, 즉 몽골 제국은 세계로 뻗어 나가며 많은 나라를 정복하였고, 그중에는 고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몽골 제국 간의 관계는 제외하고, 고려와 몽골 간의 관계를 단순히 지배-피지배의 이분법만으로 보기에는 두 국가 사이의 관계가 복잡다단하다. 고려의 왕실은 몽골 황실의 부마로서 부마국의 지위를 누렸고, 쿠릴타이에 고려 왕이 참가하기도 했으며, 발언권이 아주 약한 편도 아니었다. 수많은 고려인이 몽골로 끌려가는 비극을 겪기도 했지만, 자발적으로 몽골에 간 고려인도 있었으며, 몽골을 통해 얻은 권력으로 패악질을 벌이는 부원배도 있었지만, 고려에 도움이 되는 간언을 한 몽골 관료도 있었다. 몽골은 세계제국이었으며, 그 세계제국에서 무역하며 이득을 본 고려의 상인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복잡한 두 나라의 관계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문제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 중에는 힘겹고 슬픈 운명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어쨌든 몽골은 고려를 침략하였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끌려가야만 했다. 죽은 게 내가 아니더라도, 끌려간 것 또한 내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은 내 가족, 친구, 더 나아가 이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극의 역사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고자 했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비극적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여 기회로 삼았고, 어떤 사람은 순응했으며, 어떤 사람은 최대한 저항하고자 했다. 나라 간의 관계가 으레 그러하듯이 결국 고려와 몽골의 관계는 고려인과 몽골인의 관계였다. 이 책은 그러한 고려-몽골 관계를 사람과 문화를 중심으로 써 내려간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고려와 몽골, 그리고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흔히 역사를 일컬어 ‘거울’이라고 한다. 역사는 시간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거울이 권력의 상징이었지만, 현재는 누구나가 다 원한다면 손거울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란 ‘거울’ 역시도 마찬가지다. 《세창역사산책》 시리즈는 사람들의 일상과 깊이 연관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역사란 ‘거울’로 비춰 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역사란 이름의 작은 손거울을 선물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