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돌아봄으로써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명나라 300여 년을 살아간 17명 문인들의 이야기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스펙을 쌓아 좋은 직장을 얻고 승진하는 것이 현대인의 일이라면, 명(明)대는 천하를 경영하고 국정을 잘 다스려보겠다는 '천하사무'의 원대한 이상을 품고 관직에 오르는 것이 사대부들의 사명이었다. 이렇게 관료제도 속으로 들어간 사대부들은 어떤 운명과 마주쳤을까? 과연 천하사무라는 꿈을 제대로 펼칠 수 있었을까?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강직하게 살면 당대 권세에 핍박 받고, 뜻을 굽혀 아첨하면 후세에 멸시 당한다."라는 동한(東漢) 시대에 유행하던 동요의 한 구절처럼 명대 사대부들도 기로에 부닥치곤 했다. 즐거움과 환희의 순간보다는 억압과 불편한 현실에 고민하던 이 책에 소개된 17명 명대 문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엿봄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천하사무'라는 큰 뜻은 아니더라도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벼슬길은 부침이 심하고,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본서는 명대 사대부들의 평탄하지 않은 삶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인 판수즈 선생은 “책에 언급한 명사들은 대부분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다가 결국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이들의 기록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깊은 회한을 느꼈다.”라고 하였다. 그는 50여 년 동안 《만명사(晩明史)》, 《국사16강(國史十六講》), 《장거정과 만력황제(張居正與萬曆皇帝) 》등을 통해 이미 많은 독자들의 환영을 받은 바 있다.
이 책에 소개된 17명의 명대 문인들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기상을 가지고 뛰어난 학문적 성취로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한 인물들이다. ‘천하사무’라는 원대한 이상을 품고 군주를 보필하여 천하를 제패하거나 통치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상적이라 믿었던 군신 관계는 본래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군주의 사랑은 한시적이고 수시로 변하여서 결국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맺은 채 청사(靑史)에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 책을 통해 명대 전반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그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들과 사건에 대한 기록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 결론적으로 명대 문인들의 일생은 즐거움과 환희의 순간보다는 억압과 불편한 현실에 고민하는 측면이 더 많았다. 이를 교훈으로 삼으면 오늘날의 지식인들, 그리고 관료들의 삶의 지침서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명대 문인들의 운명을 통해 본 지식인들의 삶과 벼슬살이의 어려움
오랜 시간, 중국의 전통 사대부들은 유가(儒家) 사상의 영향을 받아 “뜻을 가지면 천하의 백성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맹자·진심장구상(孟子·盡心章句上)》라는 이상을 품고 정치에 참여하였다. 특히 명대(明代) 사대부들은 전 시대인 원대(元代)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천하를 경영하고 국정을 잘 다스려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조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실 여건상 자신의 이상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고 화를 피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불행한 최후를 맞거나 혹은 쫓겨나 강호를 떠돌며 세상 규범에 구애받지 않는 생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이렇게 고상한 이론으로 무장한 뒤 진출한 관료제도 속에서 사대부들은 어떤 운명과 마주쳤는가? 그들은 과연 천하사무라는 꿈을 제대로 펼칠 수 있었을까?
전통사회에서 군권(君權)은 절대적이고 최후의 것이었으며, 관료들의 신권(臣權)은 그로부터 파생한 것이었다. 즉 정치와 행정이 분명하게 분리되지 않던 시대에 정치적 이상은 관료들의 행정조직을 통해 전국 각지의 말초 단위에서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유가(儒家)는 자칫 무한정으로 발휘될 듯한 군권에 대해 높은 이상적 가치를 부여하고 교육을 통해 모범적인 황제를 만들어 잘못된 군권 행사를 제한하려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정치에서 보여준 직접적인 성취보다도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따라서 유무형의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군권의 행사는 항상 관료제도의 강한 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성현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높은 이상과 절개를 가졌던 신하들은 정형화된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군권 행사에 대해 관직을 걸거나 때로는 목숨까지 내버리며 강하게 저항하였다. 수많은 천하사무 참가자들이 현실 정치에 좌절한 뒤의 비극적인 삶과 비참한 최후가 관료사회뿐 아니라 민간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성군시대에 훌륭한 신하로서 좋은 정책을 실행하였더라도 권력싸움에서 실패하거나, 혼란한 시대에 충언과 절개로 죽음을 불사하며 후세에 롤 모델이 되었던 사대부들의 삶이 특히 그러했다.
강직하면 권세에 핍박 받고, 아첨하면 후세에 멸시 당한다!
“활시위처럼 강직한 사람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아 시체가 길가에 버려지게 되지만, 갈고리처럼 구부러지며 권세에 아부하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올라 온갖 부귀를 누리며 산다.”(直如弦, 死道邊; 曲如鉤, 反封侯.)
동한(東漢) 시대에 유행하던 동요의 구절로, 《후한서(後漢書)》에 기록되어 있는 말이다. 이처럼 중국의 전통 사대부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강직하게 살면 당대 권세에 핍박 받고, 뜻을 굽혀 아첨하면 후세에 멸시 당한다.”는 선택의 기로에 부닥치곤 하였다.
명대 300여 년 동안에도 이와 같은 삶을 살다간 사대부들이 끊이지 않았다. 강직하거나 아첨하는 것은 모두 사대부들의 가치관과 도덕적 선택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전통 사대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목표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문이 뛰어나다고 해서 정계에 나아가 성공한 관료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뜻을 세우고 천하의 백성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상을 품고 정치에 참여하였지만 대부분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다가 결국 비극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
명말 청초 문인으로 《국각(國?)》을 지었던 담천(談遷)은 “관리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훗날 관직에 나가려는 많은 이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벼슬살이의 어려움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시대를 리더하는 지식인, 고위 관료에의 꿈을 지닌 인재들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경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