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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싶다

자고 싶다

문득
14,000 원
  • 저자 :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 옮긴이 : 이상원
  • 출판사 : 스피리투스
  • 출간일 : 2021년 06월 10일
  • ISBN : 9788997870516
  • 제본정보 : 반양장본

도서 분야

단편소설의 선구자이며, 단편소설만으로 ‘대문호’라 평가받는 안톤 체호프의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관리의 죽음>, <베짱이> 등 체호프의 대표작뿐 아니라 현실 고발적 작품부터 인간의 위선과 삶의 속됨을 비판한 작품까지 엄선해 수록했다. 또한 <자고 싶다>, <삶에서 하찮은 일> 등 더없이 ‘체호프적’인 작품이지만, 대개의 ‘체호피언’이 아직 만나보지 못했을 작품까지 찾아 더해 ‘체호프라는 세계’의 전모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체호프를 현대 단편소설을 완성한 작가로 평가하는 이유는 이렇듯 유머와 풍자를 통해 역설과 아이러니가 뒤범벅되어 있는 인간의 삶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그토록 짧은 작품에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성찰을 확인하는 일이 체호프를 읽는 진정한 즐거움이며, 이 즐거움이 백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체호프를 읽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최고의 작가, 그리고 최고의 번역가가 일구어낸 최고의 작품들
단편소설의 선구자이며, 단편소설만으로 ‘대문호’라 평가받는
안톤 체호프의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달이 있다고 말하지 말고 깨진 유리조각에 비치는 한줄기 빛을 보여줘라.”

기 드 모파상,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꼽히는 안톤 체호프는 ‘문학의 변방’이었던 단편소설을 가장 중요한 문학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게 한 작가다. 막심 고리키, 나딘 고디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어니스트 헤밍웨이, 블라디미르 나르코프 그리고 또 다른 체호프라 불리는 레이먼드 카버와 앨리스 먼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가 체호프의 작품에게 배웠거나 영향을 받았다. 단편소설의 선구자이자 완성자이며, 단편소설만으로 ‘대문호’라 평가받는 체호프는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어로 이루어진 간결한 문장 안에 웃음과 비애, 체념과 전복을 동시에 담은 ‘가장 위대한 단편’들로 인간과 삶에 대한 더 없이 깊은 통찰을 보여준 ‘칼날처럼 날카롭고도 우아한 빛줄기’였다.
러시아어 원전 번역으로 체호프의 문장을 더 정확하고 더 생생하게 구현한 《자고 싶다》는 <관리의 죽음>, <베짱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등 체호프의 대표작뿐 아니라 <우수>, <반카> 등 현실 고발적 작품부터 <6호 병동>, <상자 속의 사나이> 등 인간의 위선과 삶의 속됨을 비판한 작품까지 엄선해 수록한 한편, <자고 싶다>, <삶에서 하찮은 일> 등 더없이 ‘체호프적’인 작품이지만, 대개의 ‘체호피언’이 아직 만나보지 못했을 작품까지 찾아 더해 ‘체호프라는 세계’의 전모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문득은 공명의 문학 브랜드 스피리투스가 야심차게 소개하는 문학 시리즈다. 시대를 초월해 문학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들을 다시 호출해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글文을 얻을 수 있는得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득 시리즈는 이상과 프란츠 카프카에 이어 에드거 앨런 포, 김유정, 그리고 체호프 등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지만 한 번도 읽을 수 없었던 그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새로운 장이 되고자 한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 《자고 싶다》의 내용 및 특징

사소한 일상에 유머와 풍자를 더해 ‘비극적 유머’로 승화시킨 현대 단편소설의 선구자이자 완성자

“나는 거짓과 모든 형태의 폭력을 증오한다. 내게 가장 신성한 것은 사람의 육체, 건강, 지혜 영감, 사랑, 그리고 모든 형태의 거짓과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위대한 예술가라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강령이다. 간결함은 재능의 자매다. 요점이 있고 간결해야 잘 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잘 쓴 이야기를 읽는 일은 한잔의 보드카를 마시는 것과 같다.”

이 책의 표제작이자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작품일 <자고 싶다>는 가볍게 느껴지는 제목과 달리 안톤 체호프가 증오한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한 신성한 ‘사람의 육체’의 처절한 저항과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을 그 어떤 작품보다 극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처럼.
‘열세 살 먹은 어린 애보기’ 바르카는 너무 너무도 자고 싶다. ‘두 눈이 감기고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하지만 아기는 자지 않고 계속 칭얼댄다. 몽롱해진 바르카.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가 죽어가던 순간도 보인다. 순간, “이런 망할 것이 있나! 아이가 우는데 잠을 자!”, 주인이 귀를 아프게 잡아당긴다. 아기의 요람을 흔들며 노래를 흥얼거리지만 바르카는 금세 다시 혼미해진다. 새벽이 오자 안주인이 그런 바르카에게 일을 시키기 시작한다. “바르카, 난로에 불 피워!” “바르카, 차를 준비해!” “바르카, 주인님 덧신을 닦아!” “바르카, 계단을 닦아!” “바르카, 맥주 사 와!” 종일 바쁘게 움직이며 일한 바르카. 그런 그녀에게 그날의 ‘마지막 명령’이 내려진다. “바르카, 아기 좀 흔들어 재워!” 바르카는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자기 팔다리를 붙잡아 매고 내리누르며 못살게 구는 그 힘이 무엇인지’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마침내 적을 발견한다. 그 적은 과연 누구일까? 바르카는 그 적을 어떻게 했을까?
<관리의 죽음>은 ‘기침’이라는 사소한 사건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에 길이도 극도로 짧은 소품이지만, ‘자신이 던진 돌에 맞아죽는 개구리’의 비극을 유머러스한 상황 묘사와 대사로 그려낸 ‘비극적 유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따분한 일상의 희미한 바다에서 비극적 유머를 드러낼 수 있는 작가”라는 막심 고리키의 평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관리의 죽음>이 아이러니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면, 어린 아이와의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버리는 어른의 이야기를 스피디한 문체로 전하는 <삶에서 하찮은 일>은 패러독스에 기댄 작품이다. 거짓 혹은 거짓말 두 개가 엉켜 진실을 드러내는 한편, 아이의 천진함(childlike)과 어른의 유치함(childish)이 엉켜 현실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인데, 그 진실과 부조리를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자란 귀여운 여덟 살짜리 꼬마’가 오롯이 감당해야만 하는 결말에 이르면, 아이와 눈물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또 하나의 역설을 말이다.
흔히 현진건을 한국의 체호프라 한다. <우수>을 읽다 보면 그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 앞에 놓인 인물의 비참한 현실과 내면을 치밀하고 섬세한 사실주의적 묘사로 전하는 것이 무척이나 닮았기 때문이다. 다만 <운수 좋은 날>이 감정적 개입을 최소화한 차가운 시선으로 이야기했다면, <우수>는 인물의 내면과 하나가 된 뜨거운 목소리가 이야기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또한, 영화 <올드보이> 덕분에 더욱 유명해진, 엘라 휠러 월콕스의 시 <고독>의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자고 싶다>의 바르카처럼 <반카>의 반카 역시 아홉 살짜리 아이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고된 일상과 가혹한 삶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 반카를 견디게 해주는 것은 ‘오로지 할아버지뿐’이다. 아니 할아버지와 관련한 기억뿐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너무도 목가적이어서 반카가 처한 현실의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게, 따뜻한 유머가 흐르는 기억과 냉기, 아니 살기 가득한 날카로움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담담하게 전하면서도 체호프는, 페이소스 가득한 유머로 삶의 비극성을 꿰뚫어 보여준다.

“많은 인물을 그려내는 건 필요하지 않아.
중력의 중심은 두 사람 안에 있어야 해. 그 남자와 그 여자.”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중력은 대개는 사랑을 동반하지만, 가끔은 서로를 밀어낸다. 끊임없이, 그리고 가차 없이. 사랑이 대개는 환상이고, 가끔은 속물적인 것이기도 하기에. 아니, 어쩌면 사랑은 대개 속물적인 것이고, 가끔 환상적인 것이기에.
<베짱이>의 올가 이바노브나는 다양한 재능을 갖춘 예술가(라고 주위에서 속삭이는 것을 듣는, 예술가가 되고픈 열정까지는 없는 예술가)다. 그런 그녀 주변에는 출중한 재능이 있는(사람이라고 올가가 믿고 싶어 하는) ‘유명 인사’들로 늘 북적인다(정확히는 북적이게 하고 싶은 것이 올가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유명 인사’가 아닌, 다만
‘선량하고 겸손한’ 의사인 ‘디모프’와 결혼한다. 하지만, 그 결혼이 ‘하지만’을 전제하고 있었기에 올가는 다른 행복을 찾는다. 그 행복은 유명 인사를 찾는 것. 매번 새로운 유명 인사를 찾는데 열중하던 그녀는 이윽고 재능 있고(사실은 재능 있다고 믿게 된), 앞날이 유망한(실은 그럴 리가 없지만) 화가 랴보프스키와 사랑에 빠진다. 그럼에도 남편, 디모프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아파할 뿐, 그녀를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가는 그런 남편을 “관대함으로 날 짓누르는 사람이야”라는, 그 자신 ‘무척 마음에 든’ 표현으로 ‘자기 연애 사실을 아는 화가들 앞에서 남편 애기를 할 때마다’ 힐난한다. 하지만 랴보프스키와의 사랑은 오래지 않아 끝난다(아니 랴보프스키의 사랑이 끝난다). 올가는 그 사랑의 끝을 ‘질투, 분노, 모멸감과 수치심’과 함께 견딘다(아니 발광한다). 그리고 그 무렵, 남편 디모프카 디프테리아에 걸린 소년을 치료하다(아니, 소년의 ‘디프테리아 딱지를 대롱으로 빨아들여’) 감염, 죽을 지경에 이른다. 올가는 그제야 디모프야말로 “비범하고 드문 사람이라는 것, 자기가 아는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떠올리게 하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결혼 생활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 된 ‘참으로 순결하고 정숙하며 순진한 젊은 여인’ 안나가 ‘남편에게 아프다고 하고’ 휴양지 얄타에 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미친 여자처럼 쏘다’니던 중 같은 곳에서 권태로운 일상을 보내던 ‘나이가 두 배나 많은’ 바람둥이 구로프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경멸할 만한 천박하고 타락한 여자가 되어버렸’다고 자책하는 한편 끊임없이 ‘자기를 존중하지 않고 전혀 사랑하지 않으며 추악한 여자로 여긴다는 점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안나의 사랑과 ‘존재의 고위한 목적과 인간적 가치를 망각한 채 우리가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들을 빼고 나면 실상 세상 모든 것이 훌륭하지 않을까.’라고,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채’ 생각하는 구로프의 사랑이 같은 것일 수는 없다. 결국 휴양지에서의 같지만 다른 사랑은 곧 끝나고 안나는 집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면 안나 세르게예브나도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다른 여자들이 그랬듯 어쩌다 꿈속에서나 애틋한 미소를 지을 것이라 생각했’던 구로프는 ‘어느새 기억은 소망이 되고 과거가 미래와 섞여들’자 결국 안나를 찾아 무작정 도시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둘은 ‘밀회’를 시작한다.
<베짱이>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체호프의 말마따나 ‘중력의 중심’에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있는,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과는 결이 다른 작품들이다. 두 작품은 모두 한낱 불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체호프의 세계에서 그런 전락은 일어나지 않는다. 두 작품 모두 겉으로는 가장 통속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정작은 인간의 허영과 사랑의 속물성, 그리고 ‘미망과 광기’의 다른 이름이 되곤 하는 사랑의 환상성에 대한 더 없이 가차 없는 진실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통해 인간 삶과 인간 존재의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처럼 말이다.

인간과 삶에 대한 더 없이 크고 깊은 성찰을 ‘단편소설’이라는 작고 얕은 그릇에 담아낸 ‘대문호’
체호프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는 <6호 병동>은 고결한 지성을 가진 의사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6호 병동의 정신병 환자 이반 드미트리치를 만나 교류하는 과정에서 자신 역시 정신병 환자가 되어 6호 병동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이 작품은 체호프의 다른 작품에 비해 그리 단순하지 않다. 고결한 지성이 사라진 현실에서 만난 단 한사람의 지성 이반 드미트리치가 정신병 환자라는 이유로 그와 교류한 또 다른 지성 안드레이 예피미치를 정신병 환자로 전락시키는 과정과 결말이 당시 러시아 사회와 정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6호 병동>이 단순한 현실 비판적 작품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비판 속에 그보다 더 깊은 인간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철학이,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자 속의 사나이>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아주 좋을 때도 솜을 넣은 두툼한 외투에 방수덧신을 신고 우산을 챙겨 다녔기 때문에 남들의 이목을 끄는 사람’이었던 벨리코프는 주위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할 정도로 고리타분한 희랍어 선생이다. 동료 교사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 그런 그를 두려워한다. 심지어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되는 것조차 꺼려한다. 하지만 자신들을 억압하던 벨리코프가 죽고 ‘채 한 주가 지나기도 전에’ 주의 사람들의 “삶은 이전과 똑같이 단조롭고 힘겨우며 무의미하게 흘러”간다. 그렇다면 그들을 진정 억압하고 있었던 것, 아니 그들을 진정 억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상자 속의 사나이>는 이 물음에 대한 철학적 되물음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체호프의 다른 작품이 그렇듯, 유머와 풍자, 역설과 아이러니를 통해.
체호프를 현대 단편소설을 완성한 작가로 평가하는 이유는 이렇듯 유머와 풍자를 통해 역설과 아이러니가 뒤범벅되어 있는 인간의 삶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그토록 짧은 작품에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성찰을 확인하는 일이 체호프를 읽는 진정한 즐거움이며, 이 즐거움이 백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체호프를 읽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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